24. 시골에서 온 선물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잘 살고 있다.

by 이대영

“대영아! 시골에서 편지 왔다.”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갈 무렵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가지고 웃천막으로 올라오셨다.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우체부 아저씨는 어머니가 건네시는 시원한 물 한 그릇을 벌컥벌컥 소리를 내며 마셨다.

“안에 뭔가 봐 봐라.”

“편지겠지예….”

옆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지 봉투를 뜯자 봉투 안에서는 편지 한 장과 노란색 화물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누가 보냈노?”

“시골에 할매가 보내신거네예.”

“뭐라고 하시는데?”

“좀 있어 보이소.”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영아 보아라.”

“여기 시골 할매는 몸 건강하게 잘 있다. 너도 아버지 어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기 바란다. 동생들도 잘 있느냐. 어짜든지 공부 열심히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해 입지 말고, 사람들에게 인사 잘하고,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라.

할매가 굿하고 제사하고 얻은 음식을 모아서 말려서 보낸다. 곰팡이 난 것은 잘라서 버리고 배탈 안 나게 잘 먹으라. 날씨가 좋아지면 부산에 한번 가려고 한다.(중략)”

할머니는 편지를 보내실 때면 옆방에 사는 학생에게 부탁해서 편지를 쓴다고 하셨다. 어떤 때는 볼펜으로 쓰신 편지를 보내셨고, 또 어떤 때는 비뚤 비뚤 하게 연필로 쓴 편지를 보내셨는데, 나중에 나는 시골에 갔을 때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형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지 쓰는 것을 부탁할 수 없으셨는지 연필로 편지를 직접 써서 보내셨는데 그 어떤 장문의 긴 글보다 더 할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편지 글 내용은 늘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편지 글의 내용보다 더 귀한 것은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편지라는 것이다. 비록 몇 줄 안 되는 짧은 편지 내용이지만, 편지를 받는 것만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편지와 같이 동봉해서 보내신 것은 조그만 쪽지였는데, 그것은 화물표였다. 할머니께서 크고 무거운 짐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화물로 부치셨는데 우리는 그 표를 들고 기차역에 가서 수화물을 보내고 찾는 곳에서 그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기차역 옆에 있는 화물보관 창고로 갔다. 역에 있는 아저씨가 내가 화물표를 내 보이자 나를 데리고 화물들이 내려져 쭉 열을 지어 있는 곳으로 가셔서 물건을 찾았다. 거기에는 내 이름과 주소가 크게 적혀 있었다.

“누가 이렇게 보내노?”

“할매가예.”

“할매?”

“예, 시골에 할매가 보내준 겁니더.”

“무거운데 니 혼자 들고 갈 수 있겠나?”

“예.”

“너그집 어딘데?”

“웃천막예.”

“웃천막?”

“예.”

그러자 아저씨는 나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고개를 들어서 역 반대편 멀리 산 쪽을 쳐다보았다.

“저기까지 언제 가지고 가겠노?”

“금방 갑니더.”

“…….”

아저씨는 짐을 웃천막까지 들고 간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웃천막까지 절반도 못 올라가서 옷은 흠뻑 땀으로 젖었다. 짐을 찾으러 기분 좋게 내려왔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짐은 꽤 무거웠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보내 주신 정성에 비하면 힘든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늘 부산에 있는 식구들을 위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서 보내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웃천막 동구 밖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안 무겁나?”

“괜찮아예.”

나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태연하게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매는 뭐한다고 그렇게 보내시는가 모르겠다. 몸도 불편하신데 말이다.”

어머니가 왜 할머니의 마음을 모르실까. 다 알고 계신다. 먹을 것이 귀한 때라 시골에서 보내주시는 할머니의 짐은 식구들이 며칠 동안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방 안에서 짐 꾸러미를 끌러 보니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확 풍겼다. 대부분의 음식들은 할머니께서 마을 동네 집에서 굿을 해 주고 얻은 음식과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 그리고 손수 말리고 다듬은 것들이었다. 할머니는 손주 사랑이 대단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 할머니 손에 의해 길러졌다. 할머니가 불편한 한쪽 다리로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걸을 때면 나는 늘 할머니 치마 자락을 붙잡고 그 곁을 졸 졸 따라다녔다.

“뭐한다고 이렇게 보내시는가 몰라…….”

어머니는 할머니께서 보내신 음식들을 하나하나 풀어헤치시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식에서 향냄새가 풍겼다. 아마도 굿을 할 때에 사용한 음식인 것 같았다. 어떤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배어 있었고 살짝 곰팡이가 설은 음식도 있었다. 음식은 파전, 무말랭이, 생선전, 시루떡, 고구마 부침개, 말린 나물 등,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작은 자루에 쌀도 얼마만큼 들어 있었다. 음식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음식 때문에 우리는 여러 날 몇 날 며칠 동안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중에도 음식을 잘 다듬어서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동구 밖에서 놀고 있는데 동구 밖 아래 계단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위에 대영이냐?”

“…….”

“대영아!”

“예?…”

고개를 빼들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할머니께서 하늘색 스카프를 머리에 쓴 얼굴로 나를 부르고 계셨다.

“할매!”

나는 친구들과 놀던 놀이를 멈추고 한 걸음에 아래로 내달렸다.

“할매 언제 왔어예?”

“시방(지금) 오는거여.”

“지금예?”

“오냐. 그동안 잘 있었냐?”

“예.”

“엄마, 아버지는 잘 있고?”

“예.”

할머니는 한쪽 다리가 없는 불편한 몸으로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해서 겨우 우리 동네 아래까지 오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숨이 차신지 계단에 앉으신 채로 숨을 몰아 쉬셨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셨다. 내가 손으로 땀을 훔쳐드리자 할머니는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웃으시면서 내 엉덩이를 토닥이셨다.

“할매, 내가 업으께.”

나는 할머니 앞에서 뒤돌아서서 무릎을 구부리고 등을 내밀었다.

“뭐하냐? 괜찮혀.”

“어서 업으세요.”

“괜찮다니께.”

할머니는 업히기를 한사코 사양하셨다.

그러다가 겨우 할머니는 내 등에 업히셨는데, 나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나무 지팡이를 다리 아래로 바치고 한 걸음씩 떼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초등학생인 내 등에 업힌 할머니의 몸은 보기보다는 무거웠다. 그렇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등에 업힌 할머니는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짓고 계실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한 할머니의 마음. 나는 힘이 들었지만 더 많이 더 오래 할머니를 업고 싶었다. 멀리,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