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오래 흔들렸다.
"참 따뜻한 양반이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내가 들었던 말이다. 그냥 지나가는 할머니의 짐 보따리를 보고 "제가 들어 드릴게요"라고 한 것뿐인데, 할머니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난 따뜻한 양반이 되었다.
나는 사람 마음에도 온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온도 따라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어떤 사람은 '차갑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냉정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사람은 말을 통해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 옆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은 늘 혼자다.
어떤 사람은 햇살 같다고 말한다. 따뜻한 정오의 햇살처럼 얼굴이 밝다. 쳐다만 봐도 기분이 좋다. 그 사람 옆에는 늘 사람이 따라다닌다. 마치 겨울날 태양 빛을 좇아 따뜻한 곳을 찾아가듯이 그 곁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사람 말을 들으면 에너지를 얻는다.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내가 아는 그녀는 혼자다. 오랫동안 그녀는 혼자로 지냈다. 그녀는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혼자 모시느라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이따금 길에서 마주칠 때도 고개만 숙일 뿐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인사를 하면 인사를 받는 척,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동네 할머니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학교 다닐 때는 참 밝았어, 잘 웃고, 얼마나 씩씩했는지 몰라." 그게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차갑게 보인다. 그늘이 내려 보이고, 어둡기만 하다. 그게 그녀의 온도였다.
한 줄기 빛은 이걸 말하는가. 그녀에게서 아무런 온도의 느낌도 느끼지 못할 때 우연이라는 게 불쑥 찾아왔다. "계세요?" 그녀가 수줍게 내민 것은 조금만 접시에 담긴 떡이었다. 엄마 생일이라 오랫동안 찾아 드리지 못하다가 찾아드리면서 떡을 했다고 하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미소 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게 아니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온도가 다르다. 때문에 온도를 보고 등을 돌리기도 한다. 때로는 차갑게 대하기도 한다. "난, 따뜻한데 저 사람은 왜 그래"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도 차갑게 한 사람에게 차갑게 대한 적도 있다. 마치 바이메탈처럼 감정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온도가 달라졌던 것이다.
따뜻한 그녀들은 차가움이 뭔지를 안다.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느낀다. 그 차가움 때문에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쉽게 그 차가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사람들의 편견이 마음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녀들 스스로 따뜻함을 나타내기 어렵다.
그녀들은 괜한 말 한마디에도 흔들린다. 그녀를 미워한 것도 아닌데, 작은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상처는 그녀를 주눅 들게 만들고, 약하게 만든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다른 사람의 눈빛에 몇 날 며칠을 혼자 얼어붙는다. 그리고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하며 스스로 자책한다. 그렇게 혼자 마음 졸이며 이유를 찾기까지 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발열하는 장소다. 그녀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줄 용기, 따뜻함을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가 찾아왔을 때 따뜻함을 나누지 못했다면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겨울을 지닌 채 지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못했다면 나는 차가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나에게서 들어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서 온기를 얻게 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말을 다 들어주는 사람,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 안아 줄 줄 아는 사람, 말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나에게서 따뜻한 불씨를 얻어갔다면 참 다행한 일이다. 가끔 나에게 그런 행운도 있다. 누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불씨라도 있다는 게 참 행복하다. 부디 그녀에게 전해진 그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훨훨 타서 큰 불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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