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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그를 부르자 그가 대답했다.

by 이대영

거울을 보다가 가만히 멈췄다. 거울에 비친 내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번 웃어 본다. 똑같이 웃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인상을 지어본다. 역시 똑같이 인상을 짓는다. 그런데 조금 전 순간 나는 왜 낯설게 보였을까?


거울에 비친 그는 나 같지 않았다. 미소를 지어도 미소 짓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감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미소는 거기까지였다. 조금 전 미소 짓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냥 거울 속에 있는 웃는 사람에 불과했다.


나는 거기에 없었다. 거울에 비친 건 내가 아니었다. 딴 사람, 내가 본 것은 나와 닮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난 줄 알고 착각한 것이다. 나는 나를 보지 못했다.


아무 감정 없이 그냥 웃는 날. 마음에 없이 그냥 지어내는 웃음. 어처구니없어하며 픽 웃는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다. 그냥 웃음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은 조용히 식어가는데 겉으로 표정만 웃는 것처럼 보인 것뿐이었다.


웃는 얼굴 뒤에는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마음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겁을 잔뜩 먹은 그는 나무 뒤에 숨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 나가도 돼?" 그 말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네가 거기 왜 있어?" 그 말에 그는 나무 뒤로 다시 숨었다. 내가 나오라고 재촉하자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잡아보는 손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제 어디 가지 마." 그 말에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숨은 게 아니었다. 내가 그를 숨게 만들었다.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선을 그어 놓고,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도록 꼭꼭 막았다. 그는 거기서 오랫동안 숨겨져 살았다. 숨겨져 있는 그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입을 막았고, 그가 나오면 그를 잡아다가 다시 울타리 속으로 집어 넣었다.


나는 웃었고 그는 울었다. 나는 그를 모르고 지냈다. 모른 채 했다는 말이 맞지 않을까? 나는 거울에서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무뎌져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웃는 나는 잘 훈련된 연기자였다. 내가 웃을수록 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자신을 숨겼다. 나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쳐다보지만 내 속에 있는 나는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이유없이 그를 미워했다.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그가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 괜찮은 게 아니야. 나 정말 힘들었어."


나는 그 순간에도 웃고 있었다. 울어야 할 때도 울지 못하는 것이다. 눈물이 나올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메말랐던 것이다. 웃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면 나를 잊은 것이다. 그건 나를 찾아 달라는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 그를 잡은 손이 허전하게 느껴질 때, 나를 그를 찾으러 가야 한다. 그때 숨어있었던 나무 숲으로 가서 그를 불러야 한다.


"내가 잘 못 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나무 뒤에 숨어있는 나를 만나면 당신은 기뻐할 것이다.


"봐 봐, 나 웃었어!"


그게 당신 모습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웃어야 합니다. 감정은 그렇게 조금씩 회복됩니다. 억지로 웃는 웃음이 아니라, 내가 웃는 웃음을 웃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와 낯선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늘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치 신부가 신랑을 쳐다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사랑해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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