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일지-3
연애 5년 결혼 12년 차 남편이 첫 남자다. 첫사랑도 있고 손을 잡고 뽀뽀를 했던 건강한 청년들을 미련 없이 만나왔지만, 성관계를 맺은 건 오빠가 유일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억울한 사연 속에는 상처를 받은 어린 소녀가 있다.
중1 사춘기 때다.
HOT 오빠들을 좋아했고 이성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거울을 자주 보고 교복치마를 줄여 입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매일 등하교를 같이 했던 효정이(가명)는 털털하고 예쁘장한 친구였다.
이성친구들과도 격 없이 지내 효정이 주변에는 영호 영수 영철 상철이가 맴돌았다. 워낙 선머슴 같았던 나 역시도 ‘효정이와 아이들‘과 놀이터도 가고 노래방도 가곤 했다.
쨍한 여름이었다.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벨소리가 울려 나가 보니 효정이었다. 빵빵하게 부은 얼굴로 나를 보자마자 울음보를 터트렸다. 어안이 벙벙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나 임신했대”
임신은 엄마들이 하는 줄만 알았던 14살 소녀에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라는 말보다 순 엉터리 같은 소리로 들렸다.
사연은 이렇다. 효정이와 사귀었던 인기 많았던 육상부 사내가 자신의 집이 비었다며 친구를 초대했는데, 힘으로 제압 당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이후 생리도 안 하고 입덧을 해 산부인과를 가봤더니 뱃속에 생명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효정인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엄마아빠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그 개새끼에게도. 결국 낙태 수술을 결심하고 돈이 필요해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놨다. 알음알음 사이에서 겨우 모은 수술비로 아이를 보냈다. 첫 번째 아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안타까웠다. 효정인 다른 남자친구들과도 집이나 비디오방에서 몸을 섞었다. 두 번째 아이 세 번째 태아도 허망하게 수술실 봉지에 버려졌다.
세상에는 비밀이 정말 없나 보다.
학교에서 동네에서 효정이는 ‘걸레’로 불렸다. 우리 엄마까지 나에게 사실여부를 물었을 정도니까 말 다했다. 화가 났다. 당한 건 친구인데 사회 시선은 ‘여자아이의 잘못된 행동거지’로 효정일 쏘아봤다. 결국 전학을 간 효정이. 상처투성이가 된 친구와는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미숙한 성교육도 미성년들의 임신과 낙태, 입양 사건을 일으키는데 한 몫했나 싶다. 양호 선생님마저 부끄러워하며 보여준 콘돔, 유교문화답게 제작된 비디오. 기억나는 건 정자와 난자뿐이다.
못 배워 무지한 혈기왕성한 십 대들을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보도는 여중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출산을 했다는 뉴스였다. 국가도 사태의 심각성을 각성했는지, 구성애 상담사가 티브이만 틀면 나왔다.
친구의 낙태는 스스로 순결주의자로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사랑을 하면 잘 법도 한데, 여행을 가서도 ‘무조건 더블룸!’ 묻지 마 내알몸!’ 그렇게 건강한 청년들을 여럿 보냈다.
트라우마는 오래오래 참아왔던 남편과의 얼레리꼴레리에서 허무하게 깨져버렸다. 남자마다 다~ 다르다는 친구들 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싶어도 이제 그럴 수 없고 그러면 나쁜 년이다.
흔히 부르는 요즘 MZ.
‘선섹후사’가 유행이란다. 썸을 탈 때 먼저 잠자리를 해보고 서로 만족하면 사귄다는 뜻이다. 피임만 잘한다면 현명한 생각일 수 있겠다는 부러운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