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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켈란 Jul 01. 2024

에세이 [딩크] 정거장과 이화동

청춘일지-2

오빠 찾아 헤맸던소녀의 밤들 @맥켈란



맑았던 고1시절 등굣길이 설레었다.

매일 아침 8시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5 정거장이 지나 이화동에서 석이 오빠가 버스에 오르면 오늘 하루도 럭키다.


혜화동에 있는 혜화여고를 다녔는데, 이성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최적의 입지였나 싶다. 앞 뒤로 남고가 두 군데. 방과 후 HOT오빠들이 자주 와서 유명해진 분식집을 시작으로 오락실 노래방 카페 대학로 놀거리. 통금시간이 유일한 18 청춘의 제약이었다.


석이 오빠는 길 건너 마주한 동성남고에 다녔고, 고3 수험생이었다. 당시 활동했던 한별단에서 주최한 대면식에서 석이 오빠를 보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짝 스쳤는데 두근두근 심박수 어쩔티비.


여름 교복이 잘 어울렸던 석이 오빠는 지루하지 않게 생겼다. 차분한 분위기를 가졌지만 친구들에게 다정했고 한 번씩 짓는 미소가 무지개다. 밝고 예뻐서 ‘석멍’하게 돼버린다.


서클 선배도 짝사랑했던 분이라 고백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시작했다. 종일 석이였다. 국어선생님이 들어와도 수학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도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할 때도 내 시간은 오빠에게 갇혔다. 사라져 주라 좀.


밤새 끙끙 대는 가슴앓이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어쩜. 운명인가. 인연일까. 매일 만나. 자연스럽게 오빠가 이화동 주민이란 걸 알게 됐고,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은 채 반듯하게 서있는 오빠의 옆모습을 몰래몰래 훔쳐봤다.


비가 톡톡 내리는 날이었다. 뭐 이 정도야 맞아도 될 듯싶어 우산 없이 버스를 탔고 날이 흐려서였을까. 빗줄기가 그어지는 창문에 기댄 채 스르륵 잠에 빠졌다. 톡톡. 빗소리가 아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눈 떠보니 앞에. 어머. 석이 오빠다!


“이제 내려야 해요” 오빠가 웃는다.

두리번두리번. 학교 앞 정거장이다. 그렇게 나란히 둘이 내렸는데, 하늘이시여! 고맙게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우산 없는 내게 키다리 우산을 편 오빠가 옆에 섰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꿈결인가 싶다. 다정한 오빠는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내 마음은 더 커져버렸다.


그 후 오빠랑 버스에서 만나면 가볍게 목 인사하는 정도만큼 만한 귀여운 사이가 됐다. 끝내 고백은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짝사랑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오빠가 살고 있는 이화동 구석구석을 뒤졌다. 우연히 오빠와 마주칠 수도 모른다는 기대는 매번 꺾였다.


정거장에서 추억을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 짝사랑은 졸업을 했고 더 이상 버스에서 볼 수가 없었다. 매일 밤 많이도 울었고 매일 아침 설렜던 뒤늦은 사춘기.


TOY 김형중 오빠가 부른 ‘그랬나 봐’를 참 많이도 들었던 시절이었다.


많은 친구 모인 밤 그 속에서

늘 있던 자리에 네가 가끔 보이지 않을 때

내가 좋아했던 너의 향길 맡으면

혹시 네가 아닐까 고갤 돌려 널 찾을 때

우연히 너의 동넬 지나갈 때면

어느새 니 얼굴 자꾸 떠오를 때

그랬나 봐 나 널 좋아하나 봐

하루하루 네 생각만 나는걸

널 보고 싶다고 잘할 수 있다고

용기 내 전활 걸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돼 바보처럼


입을 떼지 못한 바보는 어느새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생겨 손깍지 끼고 대학로를 누볐다. 오빠 잘 지내시죠? 가슴앓이 감사합니다. 근데 오빠도 알고 있었죠? 자꾸 웃어서 무너지고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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