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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02. 2023

어쩌자고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봤을까

다큐멘터리 <수라> 리뷰 1.

영화를 좋아하지만 선뜻 보지 못하는 장르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다. 무섭고 잔인한 영화는 볼 생각도 안 하지만 가끔은 가상의 세계보다 더 괴롭고 힘든 장면을 마주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를 볼 엄두를 낸다. 자연의 경이나 우주의 신비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황홀한 경험을 남기지만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품들도 많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계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나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마주하고 쩔쩔매면서 봤던 영화들이었다 . 보고 나면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지곤 했다. 그러니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편한 자세로 보지 못한다.


<수라> 또한 그랬다. 영화 한 편 보고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진 적이 있나 싶다. 이 글은 하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다 보고 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쓴 글이다.

2주 동안 매일 <수라> 리뷰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20년 넘게 갯벌을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7년이라는 작업 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 겨우 두 번 영화를 보고 무슨 글을 쓰겠나 싶어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면서도 안 본 척, 모른 척 하고 있는 사이 마지막 남은 수라 갯벌이 사라질까 봐 애가 탔다.

2020년, 군산에 강의를 갔다가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선유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바다 위에 놓인 길을 달릴 때, 구름 사이로 찬란한 빛내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드문드문 다니는 차들이 달리는 길은 생경할 만큼 넓고 길었다. 그 길을 빠르고 편하게 이동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던 기억. 하지만 잠시 스쳐간 생각이었을 뿐 나는 바다 위에 관광객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다리에 어민들의 절규가 스며있고, 생때같은 생물들의 목숨이 묻힌 곳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날, 부끄러웠다.


영화가 끝나고 부유하는 생각들 속에 문득 떠오른 말은 '유해한 존재'였다. 더 빠르게 이동하기를 더 편해지기를, 더 시원하고 쾌적하기를, 더 따뜻하고 포근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내게 무해한 세상이기를 바라는 존재. 사람들 사이에서도 무해한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나. 그러는 동안 나는 누구보다 유해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서늘한 자각에 짓눌렸다.


연일 뉴스에서 접하는 사건과 사고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와는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하며, 누적되는 상실감과 온갖 걱정 근심에 질식할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왜 컴컴한 극장 속으로 들어가 <수라>를 보고 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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