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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02. 2023

수라를 지키는 얼굴, 갯벌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들

다큐멘터리 <수라> 리뷰 4

"너무나도 아름다운 걸 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걸 보지 못했고, 또 몰랐다면 저도 그냥 직장 다니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죄인가. 너무 아름다운 걸 본 죄."


마지막 남은 수라 갯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증거를 채집하는 것. 시간을 쪼개 틈만 나면 갯벌로 나가 새의 개체수를 꼼꼼히 기록하는 사람들의 중심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이 있다. <수라>는 갯벌의 다양한 얼굴뿐만 아니라 갯벌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특히 오동필 단장의 얼굴에 깃든 회한과 슬픔, 분노와 낙담은 갯벌 위에서 스러지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어민들의 실상을 오랜 시간 지켜본 아픔을 대변한다. 갯벌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의 언어 대신 더 힘 있는 메시지로 남은 장면이 있었다. 저어새들의 군무를 회상하는 장면-이렇게 아름답고 이토록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소중한 생명들을 어떻게 지키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지쳐 보이면서도 더없이 맑은 얼굴에 피어오르던 엷은 미소와 환희에 찬 눈빛. 황윤 감독이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던 장면이다.


오동필 단장의 표현대로 '아름다움을 본 죄'로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어떻게든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것. 남아 있는 갯벌을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든 해보는 것. 그리고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리는 것. 황윤 감독의 글은 단단한 힘이 느껴졌고, 담담한 내레이션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수라>는 갯벌의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까이서 누리고 경험한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자연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공들여 담았다. 유승호 사진작가는 사라져 가는 새의 모습을 백 만장 넘게 카메라에 담고,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는 '명랑하기 이를 데 없던 갯벌'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기록한다. 정희정 박사, 김경완 문화인류학자의 인터뷰도 인상 깊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지난 20년간 기록한 보고서에는 정부가 축소하고 왜곡한 환경영향평가서나 멸종위기종 기록을 뒤집는 자료들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실제 주민들과 활동가들과 시민조사단의 증거들을 사법부가 부정하는 장면에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2만여 어민들이 생계를 잃고, 마을이 폐허가 되고, 눈앞에 조개와 새들의 사체가 갯벌을 뒤덮고 있어도 피해 중거가 없다는 말을 직접 들었던 이들의 심정은 어떘을까. 그럼에도 다시 갯벌로 나가 남은 새들의 개체수를 세는 오동필 단장은 말한다. 파괴되고 죽어가는 갯벌도 아름답더라고.


확성기를 대고 핏대를 올리는 주장보다 더 설득력 있고 가슴 깊이 내 가슴을 찔렀던 말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다시 갯벌로 나서는 오동필 단장도, 황윤 감독도, 걸음마 떼던 시절부터 아빠를 따라다니다 생물학을 전공하며 갯벌 수호에 힘쓰는 승준에게서도 숭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황윤 감독의 어린 아들은 두 시간의 러닝타임 속에서 훌쩍 자란다. 갯벌이 삭막한 모래 바람을 일으키고 바다가 까맣게 썩어가도 두 아이가 갯벌을 가슴에 품고 성장하는 모습은 더없이 뭉클했다.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손꼽고 싶을 만한 순간에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는 승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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