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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02. 2023

갯벌의 주체적인 서사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

다큐멘터리 <수라> 리뷰 8


갯벌을 대상화하며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통과 상실에 집중하는 다큐였다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 같다. 영화가 남긴 무게감과 깊은 마음의 울림은 갯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관객인 나에게 제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수라>는 문제를 들이대며 어떻게든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압박을 주는 방식이 아닌 천천히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깊은 한숨을 쉬면서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되고, 갯벌 문제는 모른 척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가는, 서서히 생기는 '관계'를 인지하게 되었달까.

이길보라의 책에서도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에서 카메라를 든 사람과 피사체 사이의 관계 맺음이 중요한 요소'(78)라고 강조하는 내용이 나온다. '듣고, 보고, 묻는 태도로 이루어지는 관계 맺음'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를 만든 의도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영화와 관객 사이에도 관계 맺음의 양상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다.

문제를 제시하고 극복해야 한다,라는 식의 당위로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면 이 영화를 이토록 마음 깊이 품었을까? 그저 부담과 죄책감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아름다운 모습이든 처참한 모습이든 갯벌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여주는 영화 <수라>는 내게 특별한 다큐멘터리다. 무엇보다 관찰자로 사람들의 행보를 따라가던 감독이 어느덧 당사자가 되어 더 절실한 마음으로 갯벌을 아끼는 모습에서 깊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영화를 지켜보는 동안 관객 중 하나인 나도 과정 속의 일부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어느덧 그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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