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정 Aug 02. 2023

아름다움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심

다큐멘터리 <수라> 리뷰 9


이 영화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문득 지금까지 나는 좋은 영화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소비만 해오지 않았나, <수라>를 보면서 맞닥뜨린 가장 어렵고 무거운 질문이다.

그저 아름다움을 잠시 감상하거나, 나의 위안으로 삼거나, 당연히 거기 있는 존재로 치부하진 않았는지.

가마우지를 비롯한 철새의 이동 경로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CG는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감탄을 하며 봤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얼마나 처참한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잠시 쉬어갈 습지와 갯벌이 사라지고, 새끼를 낳아 기를 자리가 흔적도 자취를 감춘다면 저 많은 새들은 어떻게 되지? 현실적인 타격감이 밀려왔다.

자료를 찾아보니 자리가 보존되더라도 기후 이상으로 일찍 찾아오는 봄 때문에 애벌레와 곤충은 일찍 활동을 시작하고, 늦게 도착한 새들이 먹이가 없어 새끼들이 굶주림에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경 파괴의 참담함을 새들의 입장에서 잠시 상상해 봐도 기가 막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도 착지할 땅도, 새끼를 낳아 기를 터전 자체가 없다면....

헬렌 맥도널들의 <저녁의 비행>에서도 밤새 빛나는 인공조명 때문에 자기장의 신호에 혼란을 겪는 새들이 길을 잃기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때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특히 검은머리촉새. 승준이 애타게 찾아 헤맨 그 새 이름을 자료에서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갑자기 개체수가 줄어 2017년 국제자연보호연맹이 멸종 위급 단계로 조정을 했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중국에서 식용과 박제용으로 불법으로 대량 포획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름다움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알아갈수록 마음의 어려움도 심각해진다. 천천히 나의 시선과 태도를 점검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감상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부끄럽지만 기록해 둔다.

이전 08화 갯벌의 주체적인 서사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