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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02. 2023

<수라>를 본 죄. 목격한 사람의 의무

다큐멘터리 <수라> 리뷰 10

영화 전반을 흐르는 정서는 '기록과 기억에만 의존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영화관에서 화면으로만 봐도 눈물이 철철 흐르는데, 살면서 매일 봤던 이들이 잃고 나서 느낀 상실감과 공허감은 어떨지. '아름다움을 본 죄'라는 말이 너무 마음 쓰렸던 이유다. 그 아름다움이 무너지는 자리에 서 있던 이들의 눈물 앞에서 나는 감히 슬퍼할 자격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해수 유통이 시작되고 서서히 회복되는 갯벌 앞에서 그들이 보여준 순전한 기쁨과 경이에 찬 표정에 안도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온전하진 않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생명력 넘치는 갯벌의 아름다움이 놀라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감정을 기반으로 한 사랑은 약하고 변하기 쉽다. 사랑은 태도이고 의지여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 <수라>를 보는 내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사랑하게 된다는 건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시큰거렸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다 여기는 대상, 특히 자연에 대한 나의 얄팍한 애정이 내내 부끄러웠다.

인간은 얼마나 유해한 존재인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문장이었다. 멀쩡한 바다에 바위와 흙을 쏟아부어 무해한 생명체들을 내쫓고 죽이는 인간.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며 작은 어촌 마을의 생계는 짓밟는 나라. 수년간 꼼꼼하게 현장에서 기록한 생태 자료와 환경 영향 평가 자료는 묵살하고 위조된 자료에 위헌 요소가 없다고 판결 내리는 정부. 성직자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시민이 삼배일보로 목숨을 걸고 항의해도 꿈적도 않는 위정자들.

저렇게까지? 하는 의아함 끝에서 늘 확인하는 자본주의의 명암과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캄캄해진다.

하지만 유해한 욕망과 은폐된 진실 반대편에는 자연 앞에 무해한 존재가 되려 애쓰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진심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생명들이 있었다.


 '수라는 이미 죽었고 육지화돼서 더 이상 보존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뒤집기 위해 지금도 법정 보호종의 생존 여부를 살피며 증거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은 영화에서 감독은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 생명의 터전인지를 보여주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는 나는 목격자이자 증인의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수라'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이어지는 내레이션.

이제 남은 일은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말없는 생명체들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되어 그들이 본래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일 테다.


'수라'는 미군의 땅이 아니라 고라니의 영토

'수라'는 일곱 빛깔 모습으로 변신하는 칠면초의 영토

'수라'는 개개비의 영토

'수라'는 겨울을 나기 위해 몽골에서 내려온 잿빛개구리매의 영토

'수라'는 쇠제비갈매기의 영토

'수라'는 매일 아침 물고기를 먹으러 출근하고 오후엔 잠잘 곳으로 퇴근하는 가마우지의 영토

-영화 <수라> 내레이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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