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힘차게 나이 들며

계속 자랄 예정입니다.

 2020년 50세를 기념하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마흔아홉, 홀로 독일 여행을 하며 기념으로 산 고풍스러운 노트를 꺼냈다.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특별히 기념하고 싶은 올해의 일기장으로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책으로 삶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북 코디네이터의 정체성에 맞게 매일 책을 읽고 사유하며 삶을 가꾸는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 늙어간다, 나이가 든다, 이렇게 쓰지 않고 '계속 자라는 중이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깨닫고, 수정하고, 깊어지는 중이다. 나이 듦에 더 예쁜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주름이 늘어가고, 뱃살이 출렁이고, 관절이 삐그덕 거려도 여전히 내 안에 아이 같은 순전함과 사그라들지 않는 뜨거운 사랑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50대는 성장과 확장의 절정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건 어느 연령대이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50대는 저절로 달라지는 삶의 태도가 있을 게다. 놓치고 사는 것들이 조금은 더 잘 보이고, 사소한 일들에서 중요한 가치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쁨에 겨울 때가 많을 거라 믿는다. 주어진 시간을 젊을 때보다는 훨씬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될 테고.

아끼는 후배들이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 어린 엄마들이 조금은 여유로워 보이는 나를 부러워하는 것도 알고 있다. 50대의 삶이 조금은 괜찮아 보일 수 있도록 잘 살고 싶다. 나이 들어가는 게 우울한 일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이 들어갈수록 좋아지는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 전해주며 기대감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정겨운 길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주기도 하고, 성큼성큼 앞을 향해 나아가다 저 앞에 무엇이 있는지 탐험한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가끔 돌아보다 힘들게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저 멀리 보이면 부리나케 뛰어가 손 잡아 일으켜주는 선배가 되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올 한 해 열심히 쉰의 나이를 살아보려 한다. 쉰 번째 봄을 잉태한 겨울은 혹독하고 슬픔에 겨웠지만 병원을 오가며 마주 잡은 손길은 더없이 따스하고 정겨웠다. 남편은 아직 거센 눈보라를 헤치며 봄을 향해 가고 있다. 내 봄을 그에게로 쏟아붓고 싶다.

  별일 없이 출근하고, 평소처럼 학교 가고, 아무 때고 카페에 둘러앉아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일상의 다른 이름이 축복이고 기적임을 알게 해 준 처연한 이 봄도 이제 곧 눈부시게 피어날 거라 믿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성의를 다하고, 내 앞에 존재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온 마음 다해 살고 싶다. 그건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내 삶을 가꿔나가는 일이고, 여전히 자라는 일이다. 쉰 번째의 봄을 잉태한 겨울 이야기는 이렇게 맺는다. 이제 봄처럼 사랑하겠다. 부지런히 읽고 쓰고 나누면서 말이다.  여름이 찾아올 무렵, 반짝이는 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