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그림책에서 파다

그림책으로 힘내기

by 이화정



힘들다는 말을 꿀꺽 삼킨다. 겨우 힘을 내어 발걸음을 떼었는데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아 커다란 바위가 쿵 떨어져 앞을 가로막았다. 그 바위가 무엇이냐, 누가 그런 거냐, 얼마나 크냐, 바위는 왜 나타난 걸까, 누구한테 따질까, 어떻게 피해 갈까.... 온갖 생각과 씨름하다가 '얼음!'상태가 되었다.
불현듯 찾아드는 무력감이 제일 무섭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얼음벽에 갇힌 느낌. 지켜보는 사람도 무기력할 게다. 스스로를 가뒀다고 여길 확률이 크니까.
무엇이 '땡!' 나를 풀어줄까.

아무리 의지가 투철한 사람도, 긍정적이고 활달한 사람에게도 이 봄은 너무 가혹하다. 고생하는 의료진이나 격리치료 중인 사람들, 과로로 숨진 택배기사, 극한의 업무를 수행 중인 공무원들을 보면 죄책감이 심해진다. 내가 힘들어하는 건 말이 안 돼, 하면서. 마음에 나쁜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요즘은 무한 반복되는 밥하기와 설거지에 어느 한순간 접시를 내동댕이 칠까 봐 겁이 난다. 힘드니 조금만 참아라, 라는 말도 사실 위안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참 더디 흐르고, 확실한 종료 시점을 모르니 말이다.

오늘 두 군데의 책모임 단톡 방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만 해도 글이고 뭐고 다 관둘까 했는데, 오늘 나의 -구덩이 파기-는 역시나 글쓰기다. <구덩이>라는 책에 대해 주로 들었던 말은 이런 거였다. 구덩이 안에서 올려다본 파란 하늘의 평화로움, 안도감 같은 것. 그리고 나만의 구덩이를 찾아 만족하고, 스스로를 잘 다독이며 살자는 다짐.


다시 펼쳐 보는 <구덩이>에서 나는 히로라는 소년이 땅을 파는 행위가 눈에 더 들어온다. 처음에는 가볍게 흙을 뜨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가,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귀 뒤에서 땀이 흐르는 장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아늑한 구덩이도, 나비가 팔랑거리는 파아란 하늘 풍경도 아니다.
나는 파야 한다. 무엇이 되었든 '땡!'이 될 만한 것.

구체적인 행위에 집중하는 게 무기력과 회의감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걷기: 내 몸에게 움직일 기회를!
-글쓰기: 온갖 잡생각에서 빠져나올 계기를!
-정리하기: 내 맘이라 생각하고. 덕분에 말끔해지는 서랍.
-필사하기: 싱크대 앞에서 씩씩대느라 잃어버린 품위를 찾아!


오늘 구덩이 하나 열심히 파보는 건 어떨까요?

1. 오늘 무슨 책 몇 페이지 읽으실 건가요?
2. 오늘 어디에든 한 문장만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3. 겨울 옷 정리하셨어요? 전 오늘 세탁소에 옷 맡기는 게 목표입니다.
4. 아이들 읽어줄 책 - 봄 관련 책, 봄시 한 편 찾아 읽어주면 어떨까요?
5. 몇 장 쓰다 만 노트 대정리는 어떠세요?
6. 우리 집 앞에 있는 나무가 겨울나무에서 봄나무로 어떻게 변신하고 있는지 보는 건요?
제안해 주세요. 여러분이 숨통 틔우는 비법, 구덩이 파는 기술을요 ^^
저는 이제 구덩이를 파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