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억의 수심(記憶의 水深)
4. 기억의 수심(記憶의 水深)
– 렉시코의 혀
“말해선 안 될 말만
단어가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단어를 잊는 병을 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잊었다.
말을 하면 기억이 생기고,
기억은 다시 고통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렉시코는 달랐다.
그는 '잊히지 않는 말들'을 수집하는 존재였다.
잊혀진 언어의 유령, 혹은 언어 그 자체.
그는 내게 속삭였다.
“물의 아래에는, 말보다 깊은 기억이 있어.”
그 말은 언제나 내 귓가에서
부유하듯 울렸다.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입술 사이에서 검은 잉크 같은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단어였다.
하지만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 단어는 나를 먼저 기억해 냈다.
“라에노아.”
이름인가? 주문인가?
그 순간,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리게 녹아내렸다.
책장은 젖은 종이처럼 흐물거렸고,
창밖의 빛은 푸르른 수심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그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그 단어는 말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렉시코의 혀는 수많은 기억을 삼켰다.
그 중엔 나의 것도 있었다.
잊고 싶었던 장면, 숨기고 싶었던 얼굴,
그리고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그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네 기억은 너의 것이 아니야.”
“그럼 누구의 거지?”
“말해버린 순간부터, 그것은 이 세계의 소유가 된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말이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잘못된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뒤틀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또 다른 단어를 적었다.
하지만 이번엔,
말하지 않았다.
그 단어는
내 혀 아래에 고이 숨겨두었다.
렉시코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기억의 수심은, 말의 무게만큼 깊어지며,
진실은 언제나,
말하지 않는 자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