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슈이의 검 끝에서 마지막 피가 떨어질 때, 하늘은 검붉은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 마가레타는 싸늘히 굳어버린 리봉왕휘의 손을 쥐고, 그의 이마에 마지막 입맞춤을 남겼다. 천지간의 이치는 비틀리고, 희생을 통해 겨우 균형을 맞춘 듯 보였지만, 그들이 지불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비익조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연리지는 뿌리 깊숙이 대지를 감쌌다. 서로 닿을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영겁의 세월을 거쳐 다시 돌고 도는 운명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고리가 조금은 느슨해진 듯했다. 희생이 만들어낸 미세한 균열이었다.
켄슈이는 검을 집어넣고 무릎을 꿇었다. "리봉왕휘의 뜻을 이을 것이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화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마가레타 공주, 이제 이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허나 천지의 이치는 아직 흐트러진 상태입니다. 왕휘의 희생만으로 완전히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마가레타는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우린 다음 세대로 이 고통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천지봉황제의 부활을 통해 이 땅과 하늘의 균형을 되찾을 것입니다."
자이랭과 취휑니, 뽕슈아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전사들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쓰러진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하늘에는 두 개의 별이 나란히 빛났다. 마치 비익조와 연리지가 서로를 바라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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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레타의 검 끝에서 번뜩이는 천뢰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파란 섬광이 일어나며, 리봉왕휘의 주위에 있던 사악한 기운을 뚫고 나갔다. 천둥이 우레처럼 울리고, 하늘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순간 갈라지더니, 한 줄기 빛이 비익조의 깃털을 감쌌다.
켄슈이는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검 끝에는 쌍둥이별의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리봉왕휘! 천지의 이치를 거스른 죄, 오늘 이 자리에서 청산하리라!"
리봉왕휘는 기이한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는 검은 빛이 소용돌이쳤다. "너희의 검과 마법이 나를 꺾을 수 있다고 믿는가? 천지봉황제가 부활하려면 균형을 다시 맞춰야 한다. 그 균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날 막겠다는 것인가?"
이때, 마가레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눈동자엔 비익조와 연리지의 애틋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우리가 원한 것은 단 하나, 서로의 세계를 이어주는 길. 리봉왕휘, 네가 말하는 균형이란 오직 파괴와 재앙일 뿐이다."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취휑니와 뽕슈아도 나란히 검을 들었다. 충신들은 마가레타의 뒤를 지켰고, 켄슈이와 마가레타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전투가 시작될 순간, 하늘에서 금빛 깃털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이 깃털은... 비익조의 마지막 희망이다." 켄슈이가 손을 뻗어 깃털을 잡았다.
그 순간, 리봉왕휘가 칼날 같은 바람을 일으켜 공격했다. 마가레타는 그 바람을 막으며 외쳤다. "지금이다! 천지의 이치를 다시 맞추기 위해, 우리의 희생이 필요하다!"
켄슈이는 깃털을 휘두르며, 비익조와 연리지의 힘이 깃든 마지막 검기를 내질렀다. 번개와 불꽃이 합쳐지며 리봉왕휘에게 달려갔고, 균열이 하늘과 땅에 동시에 생겼다.
비익조가 하늘에서 울부짖고, 연리지는 땅 밑에서 가지를 흔들며, 두 존재의 애틋함과 인연이 마지막 힘으로 폭발했다.
다음 순간, 고요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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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의 검끝이 공기를 가르며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리봉왕휘의 눈에는 화란의 일격이 오히려 은하수를 가르는 별빛처럼 빛나 보였다. 검과 검이 맞부딪치자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고, 주위의 나무들은 강렬한 기운에 부러져 나갔다.
켄슈이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뭥미킹의 옆으로 섰다. "이대로 가면 마가레타 공주님이 위험합니다!"
뭥미킹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균형이 흐트러지고 있다. 천지간의 이치가 우리를 시험하는구나."
그때, 마가레타의 주변으로 자이랭과 취휑니가 방패벽을 세우듯 검을 교차하며 적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리봉왕휘는 그들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리봉왕휘가 말했다. "나에게 시간을 벌어라. 내가 균형을 되돌리겠다."
켄슈이가 놀란 눈으로 왕휘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 금지된 기술을 쓰시려는 겁니까? 그건 당신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그러나 리봉왕휘는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희생 없이 균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천지봉황제의 이치를 바로잡지 못하면, 이 전쟁은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순간, 그의 검에 푸른 번개가 감돌며 하늘까지 닿을 듯한 기운이 뻗어나갔다. 마치 천둥과 번개가 리봉왕휘의 의지에 반응하듯, 하늘은 어두운 구름으로 뒤덮였다.
"내가 천지간의 균형을 바로잡겠다!" 그의 외침과 함께 천둥이 쏟아졌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이들의 시선이 리봉왕휘의 검끝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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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떠오른 두 개의 달이 희미하게 서로의 빛을 비추며, 천지간의 균형이 깨어짐을 알렸다. 리봉왕휘는 결연한 표정으로 무림의 고수들과 함께 운명의 전장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천년을 간직한 비익검이 빛나고 있었고, 그 검은 마치 연리지를 찾아 나선 비익조의 날개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제 때가 왔도다." 리봉왕휘의 목소리는 결연하고도 서늘했다. "천지간의 이치를 바로잡으려면, 희생이 따를 것이다."
마가레타는 그의 곁에 섰다. 그녀의 손에는 연리지가 피어났고, 나뭇잎 하나하나가 비익조의 깃털처럼 반짝였다. 두 사람의 기운이 교차하는 순간, 하늘에는 번개가 치고, 대지는 울부짖었다.
적대 세력인 천마교의 교주 뭥미킹은 비웃었다. "네놈들의 인연 따위가 이 세계의 균형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느냐?" 그는 손끝에서 검붉은 기운을 뿜으며 앞으로 나섰다.
켄슈이는 그 곁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리며 비익검을 지키는 리봉왕휘의 옆을 사수했다. "왕휘! 지금이야!"
리봉왕휘는 마가레타의 손을 꼭 쥐었다. "비익조와 연리지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이 길을 열어야 한다."
두 사람의 기운이 합쳐지는 순간, 땅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나무뿌리가 솟아오르며 하늘까지 뻗어나갔다. 그 뿌리 속에서 연리지의 기운이 천지간의 이치와 엮이며, 공중에서는 비익조의 환영이 날아올랐다.
뭥미킹은 뒤로 물러섰다. "이럴 수가...!"
리봉왕휘와 마가레타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속에서 천지간의 균형은 다시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두 사람은 환생의 굴레에 다시 묶이게 되었고,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날 인연의 고리가 조용히 연결되었다.
천지간의 균형이 되살아났지만, 인연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