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Bones(하늘의 뼈)]

제187장

by FortelinaAurea Lee레아

[Sky Bones(하늘의 뼈)]



제187장 — 기억의 전쟁, 그리고 망각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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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도, 어둠도 닿지 않는 장소.
시간조차 숨을 죽인 그 공간에, 세란은 홀로 서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하늘의 뼈가 빛을 내며 진동했다.
그 빛은 나비처럼 흩날리며 공허한 어둠 속을 헤쳐나갔고,
그 앞에 서 있는 한 존재를 향해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왜 기억을 지우려 하는가?

그 물음에 대답한 것은, 망각의 신.
그는 형상이 없는 존재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안개 속 형체,
천 개의 얼굴이 중첩되어 동시에 웃고 울며,
그의 목소리는 고요와 혼돈이 겹쳐진 진동처럼 울렸다.

“기억은 전쟁의 씨앗이다. 고통의 근원이다.
인간은 기억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그 잿더미 위에 또다시 환상을 쌓지.
나는 그 무한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자일뿐이다.”


그때, 세란의 곁에 네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섰다.
켄슈이, 루엔, 이르마.
그리고 새로 나타난 방랑자 바실.
그들은 모두 세란의 기억에서 태어난 전사들이자,
이 전장이 단순한 신과 인간 사이의 전투가 아님을 아는 자들이었다.

바실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망각되지 않은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잊히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다.”


세란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하늘의 뼈를 손에 쥐고,
그 안에 감춰진 하나의 기억 조각을 꺼냈다.

그것은 그녀가 잊고 있었던 기억.
죽어가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손을 뻗으며, 부서져가던 입술로 속삭였던 문장—

“넌… 잊지 마라, 세란.
기억하는 자만이… 끝까지 인간이다.”


하늘의 뼈가 진동했다.
빛이 구심으로 모이더니, 시간의 나선을 그리며 회전했고
그 회전은 전장을 바꾸었다.


이동된 장소는 ‘에코스피어’, 기억의 전쟁터.
그곳은 무수한 기억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차원 공간이었다.
누군가의 후회는 천둥으로, 누군가의 사랑은 무지개처럼 떠올랐다.
기억이 형태를 가진 현실이었고, 이곳에선 과거와 미래의 구분조차 무의미했다.

망각의 신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만 개의 입으로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기억은 무기다.
너희는 그것을 칼처럼 휘두르며 서로를 찌른다.
나는 단지… 그 모든 혼란을 끝내는 고요를 주는 존재다.”

하지만 세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단단했다.

“고요는 죽음과 다르지 않아.
우린 아파도, 흔들려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해.”


그 말에 망각의 신이 드러낸 것은 광기였다.
그의 몸은 찢어지고 다시 재조합되며
수천 개의 입이 절규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갈라졌고, 시간의 조각들이 칼날처럼 전장에 쏟아졌다.

켄슈이가 외쳤다.
“세란! 지금이야!”


세란은 하늘의 뼈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 뼈 안에서 태초의 언어가 깨어났다.
그것은 인간이 잊은 최초의 말,
존재를 소환하고 세계를 명명했던 근원적인 음성.

그녀는 신을 향해 선언했다.
“네 이름은 없음.
하지만 우린 너를 기억하겠다.”

그 말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망각의 신의 몸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새로 흘러나온 것은—
기억의 파편도, 고통도 아닌—
가느다란 눈물 한 방울이었다.


그 눈물은, 세란의 발끝에 떨어졌다.
그녀는 망각의 신을 바라보며 조용히 걸어 나갔다.
칼을 들지 않았다.
분노도, 복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 존재를, 다시 기억 속으로 초대하려 했다.

“넌 버림받은 기억.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은 외로운 존재.
하지만 이제, 우리와 함께…
기억 속으로 돌아와.”


망각의 신의 형체가 빛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흙처럼 가볍게 날려
전장 위 모든 존재들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세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기억은 무겁지만,
그 무게만이 우리를 ‘나’로 존재하게 해.”


하늘의 뼈는 하얗게 빛났다.
그 빛은 먼 우주로,
망각 속에 사라진 고대의 문명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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