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답지 않게 수은주를 끌어올리던 날씨가 험상궂은 얼굴을 드러냈다. 추적추적 비를 뿌리더니 함박눈을 펑펑 날리게 하고 기온은 곤두박질쳤다. 바람은 덩달아 미친 듯 불어대고 사람들은 한순간에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계절이 바뀐 지도 한참인데 도대체 뭐가 불만인지 날씨는 뒤죽박죽, 들쭉날쭉 종잡을 수 없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미처 가늠을 하기도 하기 전에 냅다 뒤통수를 갈겼다. 겨울이란다. 기온은 영화 10도를 넘나들고 시베리아 바람은 선전 포고를 터트렸다.
모두들 풀 죽어 움츠리며 머리를 숙였다. 시베리아에서 몰려오는 바람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밤이면 이불을 끌어올려 잠이 들었고 뒤척였다. 오른쪽으로 누워도 왼쪽으로 누워도 편치 않았다.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나던 리듬이 깨져 버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눈을 뜨면 한밤 중이거나 동도 트지 않은 신 새벽이었다. 단잠은 저 멀리 달아나고 휴대폰을 켜고 이른 뉴스를 보거나 ‘새벽에 머리 아픈 이유’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났다. 어디도 새벽에 머리 아픈 이유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었다. 아니, 그런 내용은 아예 뜨지 않았다.
아파트 앞에 작은 야산이 있는 곳에 사는데도 공기청정기를 샀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한 낮, 아무리 추워도, 문이란 문을 다 열어 제키고 집안 공기를 순환시켰어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잠이 깼다. 가끔 가다 ‘자다가 죽었다.’더라 하는 뉴스에 불안감은 엄습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아침마다 나한테 안부를 물어달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말이야 자다 죽는 게 가장 좋다지만 마음 깊숙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는 하지 못하고 떠나기는 싫었다.
계절을 탄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바뀌는 계절에 적응치 못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아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잠이 깨는 것도 계절병이었다. 봄, 여름, 가을밤에는 잘 잤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생각도 하지 못했던 증상에 당황하게 만들었다. 늘 가는 의사에게 말해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신경성이라고 짜증까지 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 몸살을 앓듯 계절을 건너는 것으로 치부하기엔 불안감이 고개를 들어 괴롭혔다.
불안감에 잠이 들고 불안감에 잠이 깨버린 어느 날, 엎드려 더듬대며 휴대폰을 집어 들고 켰다. 불빛이 유난히 밝았다. 머릿속에서 ‘단어 나열을 좀 바꿔 보면 어때?’ 하고 속삭였다. 서둘러 새벽에 머리 아픈 이유를 찾아 단어 배열을 이리저리 바꾸다가 마주친 곳. 서둘러 읽어 내려갔다. 고혈압 약을 먹는 사람 중에는 가끔, 복용하는 약의 효능이 24시간이 못 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의사들은 환자가 이런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처방하라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일어나 혈압을 쟀다. 세상에 150이 넘었다. 머리가 안 아픈 게 이상한 혈압 지수였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고, 잠에서 깰 때마다 혈압을 쟀다. 어김없이 혈압 지수는 150이 넘었다. 일주일을 잰 뒤에 아침에 먹어야 할 혈압약을 저녁 시간으로 변경 했다. 신기하게도 새벽에 머리 아픈 증상이 사라졌다. 그 얘기를 담당 의사에게 했더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며 이건 다른 문제 같으니 심전도니 경동맥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거부 했다.
진료 의뢰서를 끊어 대학 병원에 갔다. 내 얘기를 다 들은 담당 교수님은
“혈압 약을 저녁에 드신 것은, 참 잘하셨습니다. 간혹 그런 분이 계십니다. 겨울에만 나타나는 것은 겨울엔 혈압이 좀 더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
하셨다. 고지혈도 없고, 콜레스토렐도 높지 않지만, 온몸의 동맥경화 검사를 한 번 해 보자고 하셨다. 그게 이상이 없으면 약 처방 해 주시겠다는 말을 해 주셨다. 결과는 정상이었고 처방전을 받았다. 약 봉투에 저녁 식사 후로 표기되어 있었다. 3년여에 걸쳐 겨울 새벽에 일어났던 두통도 거짓말처럼 끝났다.
누구나 병원을 찾아가는 길은 처음엔 서먹이다가, 점차 가까워지고, 결국엔 익숙해진다. 더듬대며 진료실을 찾아가고, 진료를 받고,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들르는 순서도 매끄럽게 진행된다. 나이가 들어 이곳, 저곳 탈이 나고, 어떤 것은 만성이 된다. 정기적으로 예약을 하고 정해진 날짜마다 어쩔 수 없이 병원 문을 드나들어야 한다. 멀리하고 싶어도 멀리 할 수가 없다. 고혈압이란 병으로 대학병원을 찾는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해가 간다.
“빨리 내려서 들어 와!”
버스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익숙한 병원 건물이 두 팔 벌리고 환영을 한다.
“아니야, 오늘은 친구 만나러 가, 다음에 보자.”
부드럽고 다정하게 고개까지 살짝 흔들었다. 싱거운 웃음까지 입가에 맴 돌았다. 버스는 병원 들어 갈 사람을 우르르 쏟아내고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떠나 갔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병원 문이, 병원 건물이 반가웠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였다.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서 익숙하게 되고 편안해 지는 것! 그래서 그게 반가워 지는 것, 그런 것이 우리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