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골목길에서

30. 디카시 & 에세이

by 조규옥
골목길1.jpeg


친구들 이름을

하나, 둘 .....

불러 보았다.

자야~~~~ 숙아 ~~~




나는 지금 고향집 마지막 골목 앞에 서 있다. 저만치 마주 보이는 저 막다른 곳을 돌아서면 다시 골목 하나가 나온다. 그 골목길 중간쯤에 우리 집이 있다. 가긴 가 보아야겠는데 선 듯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언젠가처럼 옛집으로 가는 골목길엔 잡풀이 무성할 것이다. 빈 막걸리병과 깨진 소주병이 서너 개 구르고 있을 것이다.


이 골목길을 찾아들었던 몇 년 전, 이 골목길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잃어버린 골목길이었다. 더 이상 길이 아닌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었다. 바람 한줄기 골목길에 일렁였다. 메말라 뼈만 남은 강아지풀들이 호반이네 대문 앞에서 무성하게 자라며 내게 아는 체를 했다. 우리 집 대문이 있던 자리에는 높다란 시멘트 담이 삐딱하게 쳐다보며 ‘넌, 누구냐?’ 하며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낮이 설었다.


내가 마주한 그 골목길은 반갑고 정답기보다는 스산했다. 그 흔한 개발바람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버려진 골목길엔 적막함만 가득했었다. 집 옆에 있던 논밭들도 개발 바람으로 빌딩들이 들어서고 저택들이 들어섰다. 골목길로 나있던 대문들도 빌딩이나 저택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나마 살고 있는 사람들도 더 이상 이 골목길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죽임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고맙다.’ 해야 하는지 그저 망연자실 서 있었다.


골목길도 사람처럼 늙나 보았다. 아무도 찾는 이 없으니 시름거리다 급기야 누워 버린다. 시멘트 담벼락마다 검버섯이 피어나고 말라, 한 줌 모래알로 흩어질 몸뚱이를 비스듬히 뉘인 채 가뿐 숨만 쉬고 있었다. 칠이 벗겨진 숙이네 쪽대문에 찬바람이 들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아는 체 했다. 그 삐걱이는 쪽대문 소리를 들으며 너도 관절통이 온몸에 자리 잡았나 보다 했다. 사람만 관절염이 생기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흐르며 어느 것이나 낡고 삐걱거리게 돼 있다. 하물며 돌덩이라도 말이다.


그런 골목길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일터로 나가시던 어른들이 있었고, 양지바른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 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소소한 먹을거리가 생겨도 앞뒷집 서로 나누어 먹던 어머니들을 발걸음이 부산했다. 대문은 늘 열려 있었고 개들이 짖는 소리나 닭울음소리가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화려하진 않아도 되바라지지도 않은 정다운 골목길이었다.


이 골목길은 숨바꼭질의 달인이었다. 한두 번 온 사람들은 앞에 보이는 막다른 골목길 앞에서 난감해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봐도 막다른 골목길인데, 찾을 집은 찾지도 못했는데, 길이 끝난 모습에 진땀을 흘리곤 했다. 중앙시장에서 들어서는 골목 어귀야 그래도 컸지만 상엽이네 시멘트 블록 담벼락 너머로 감나무 가지가 넘어온 골목길을 찾아들면, 그 순간 골목길은 이리저리 갈라져 갔다.


여기다 싶은데 돌아보면 아니고, 저기다 싶은데 돌아보면 엉뚱한 곳이었다. 순간, 순간 숨어버리는 골목길을 몇 번이고 돌고 돌아야 겨우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보여 주었다. 골목길은 숨바꼭질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골목길을 뱅뱅 돌며 헤매는 게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골목길이 숨바꼭질을 좋아했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것이 유독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남루한 살림살이나 뒷집 할아버지가 늘 달고 살던 기침소리, 헐벗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산비탈 한쪽 공터에 모여 노는 모습들을 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골목길은 그리움이다. 낮은 처마 밑을 지지대로 삼아 반쯤은 썩어가는 낡은 각목에 매달려있던 30촉 흐릿한 백열등 아래,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머문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한 잔 술에 거나해진 아버지가 눈사람으로 변해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부르시던 노랫가락도 여기에 머문다. 평소에는 노래 한 자락 부르지 않던 그 근엄한 아버지가 술 한 잔에 녹아들어 유독 이 백열등 밑에 오시면 노랫가락을 풀어놓으시곤 했었다.


골목길은 늘 가난했다. 그 세월에는 가난해도 가난하다는 것을 모르고 산 시절이었다. 삼시 세끼 다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어쩌면 그 시절 괜찮게 살았다고 얘기할 수 도 있겠다. 아침저녁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워 올랐고 밥 냄새, 된장 찌개냄새가 골목길로 흘러넘쳤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어른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흘러넘쳤다. 호박전 한 개도 혼자 먹는 법이 없었다. 콩 반쪽도 서로 나누어 먹던 시절. 가난했어도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살풍경해 보이는 골목길에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재빠르게 사뿐히 창열이네 집 담벼락 위에 올랐다. 익숙하게 뛰어오르더니 다 허물어져가는 시멘트불록 담 위에 앉았다.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힐끔 거린다. 경계심 보다 호기심이 먼저였던 모양이다. 왠 낯선 이방인이냐는 듯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면서도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가 안전한 거리였던 모양이었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반가웠다. 아직은 살아있는 누군가가, 그게 고양이라도 말이다. 이 골목길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고양이이면 어떠랴. 아직은 숨이 멎지 않은 골목길에 감사함을 느끼며 돌아서는데 멀리서 종소리가 울리더니 ‘두부 사려~~~ 두부!’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사라져 갔다.


언젠가 다시 오면 이 골목길을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 골목길에서 까르르 넘어가며 소꿉놀이에 빠졌던 친구들과 만날 수 있을까?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던 골목길에 서서 새벽녘 들리던 소리 ‘부~~ 새우 사려~~~’라고 외치던 아낙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가 있을까? 생각에 잠기다 울컥하고 무엇인가 올라 왔다. 서울로 가기 위해 이 골목길을 떠나 던 날, 다시는 이 골목길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던 아집과 오기가 슬며시 스러져 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의지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