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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 디카시 & 에세이
by
조규옥
Feb 11. 2024
한 세월이 흘러간 자리에
다음 세월이 찾아와 자리 잡는 계절
함박눈 내리는 산책길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산수유 열매보다는 산수유 꽃눈이었습니다.
늘 이 길을 걸었어도 꽃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오늘은 부쩍 자라 제법 토실토실 부풀어 오른 모습입니다.
겨울에는 공원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이 성장을 멈추고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는데
땅속 깊은 곳에서는 꼬물꼬물 새로운 세대들이 눈을 뜨고
함박눈 한 번씩 내릴 때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겨울밤,
산수유 열매가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떠나고
곧 겨울이 가야겠다 마음먹을 무렵
이 때다!
산수유 꽃눈은 서둘러 노란 꽃불을 쏘아 올리겠지요.
기세 등등 하게 치마 자락을 팔랑이며
봄을 불러오고 알싸한 향기로 새들을 불러 모을 테지요.
그렇게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오는 우주의 법칙이 위대하지만
제 개인적인 감정은 좀 씁쓰름합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마냥 꽃눈에게 '대견해'라고
이야기하기엔
산수유 열매가 애잔함이 먼저 가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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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보완심(緩步緩心)이란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천천히 걸으며 젊은 시절 느끼지 못 했던 마음속 작은 일렁임들을 적어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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