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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인이다.

인생 첫 트라이애슬론 도전기.  #2019설악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


7월 7일 이른 아침의 속초 앞바다는,


마치 힘차게 수면 위로 솟구치려는 수백 마리의 연어 떼처럼, 차례차례 출발 신호와 함께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먼 바다를 향해 헤엄쳐나가는 철인 선수 무리들로 가득하다.    


4분 간격으로 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30여 명씩 그렇게 나아간다.   내가 속한 조의 선수들도, 우리 차례를 알리며 묘한 흥분을 일으키는 경적(Horn) 소리와 함께,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는 듯 함성을 지르며 더 큰 무리의 연어 떼로 돌변한다.   


나는 그 무리에 섞여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기 직전, 손목에 찬 순토(Suunto, 시계 모양의 개인 계측기)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나의 첫 트라이애슬론 경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앞 조의 출발을 바라보며, 첫 대회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다음은 우리 조다.


수영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에게 나 같은 초보는 방해가 된다.   서로가 엉킨 초반 구간은 혼돈 그 자체다.   뒤따라 오는 선수의 팔 동작에 내 발이 걸리는 것은 다반사인 데다, 뒤통수도 한대 세차게 얻어 맞고 숨을 쉬러 내밀던 고개는 그만 가라앉는다.   동해 앞바다 짠물을 한 사발 즈음 들이킨다.   머지않아, 앞서 출발했던 조의 뒤처진 선수들과 만나면서, 나는 앞이 막히뒤를 기는 처지가 된다.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정신을 겨우 차릴 때 즈음, 이번엔 앞 선수의 발에 얼굴을 맞고 수경이 겨질 뻔한다.   조금 전 멀리서 바라본 멋진 모습의 연어 떼의 물 밑에서의 모습은 그랬던 거다.  


동해 바다의 너울은 또 어떤가.   훈련을 위해 건너 다녔던 한강의 고요한 수면과는 사뭇 달랐다.   호흡 타이밍에 밀려온 파도에 물을 먹기 일쑤다.   게다가, 아직 오픈워터에 숙련이 덜 되다 보니 방향을 잃고 좌우로 헤엄치다 선수들과도 충돌하고 경계선으로 쳐 놓은 줄에도 팔이 걸린다.   


그런 혼돈 속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헤엄치는 것이다 보니, 호흡은 막힐 대로 막히고,  생존하려는 신체적 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헤엄은 허우적거림으로 바뀐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추슬러 근육을 이완시키고 장거리를 헤엄쳐가야 함을 되뇌어보지만, 앞뒤로 충돌하기를 반복하며 정신줄만은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뿐이다.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던 첫 번째 랩(Lap)을 마치고 해변에 설치된 반환점을 돈다.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두 번째 랩을 마쳐야 사이클링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워터 영법을 익히기 위해 처음으로 한강에 뛰어들었을 때, 훈련과 실제 경기가 얼마나 다를지 가늠할 수 있었다면, 이 순간 실제 경기의 혼돈 속에서는 그간의 훈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여기게 만들어버린다.   이미 너무 많은 체력을 써버렸고, 호흡은 아직 트이지 않아 꽉 조이는 슈트 안에서 가쁜 숨을 힘겹게 뱉고 살아남으려 다시 들이켜 마신다.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모래사장에 올라서니, 바닥에 설치된 센서가 발목에 감아놓았던 내 계측 칩을 인식하고는 "삑" 소리를 낸다.   적어도 내 대회 활동 계측은 정상 동작 중인 모양이다.   노란 부표를 돌아 섰다.


아~  세상에!  


저 바닷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다니...   게다가, 시간 내에 마쳐야 할 3 종목 10개의 랩 중  이제 겨우 1개 랩을 마쳤을 뿐이다.






철인 3종 경기.

정확하게는 트라이애슬론(Triathlon, Tri) 경기 코스 중 표준코스로 불리는 "올림픽" 코스다.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휴식 없이 이어서 진행하게 되는데, 대회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3시간 30분의  컷오프(제한시간) 내에 경기를 마쳐야 한다.   코스 설계에 따라 종목별로 다수의 랩(Lap)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트라이애슬론 경기코스는 표준코스 외, 각 종목별 거리가 표준코스의 절반 정도로 짧은 "스프린트" 코스와 2~4배 이상 긴 "장거리" 코스(철인 코스로도 불린다)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 장거리 코스를 완주한 이들을 "철인(Iron man)"으로 칭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트라이애슬론이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해서 올림픽 정식 코스(2000년, 호주)가 되고, 빠르게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어떤 코스이던 완주한 참가자들을 "철인"이라 칭하는 분위기다.

참고로, 장거리 코스도 다양하지만, 장거리 풀 코스는 수영 3.9 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인데, 와우~! 진짜 '철인'인 셈이다.



도전의 시작


대회 1년 전.   소싯적  대표급 수영 실력과 대회 경력을 소유한 아내(실제로 당시 메달 리스트다.)와 집 근처의 수영장에 들렀다.  평소 사이클링으로 기본 체력을 유지하며 활동적이었던 나에 비해, 어릴 적부터 고된 훈련으로 "운동"을 접했던 아내는 지금은 운동을 멀리한다.   그나마 억지로라도 하는 운동이 수영이다 보니, 그날도 그렇게 몇 번을 달래고 부추겨서 함께 풀(Pool)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영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고작 25미터 풀 반대편까지 헤엄치는 일도 호흡이 끊어지며 힘겨웠던 반면에, 수영장 풀이 너무 좁기라도 한 듯이 쉬지 않고 턴(Turn)하며 수백 미터를, 아니 오래도록 인어처럼 헤엄치는 아내가 신기하기도  부러웠다.   그게 동기가 되었었는지는 몰라도 그날, 아내를 따라 처음으로 800여 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했다.   어설프기 이 없는 자유형과 평영을 섞어가며, 오로지 수영장 바닥에 발을 닿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 말이다.   가여울 정도로 어설픈 몸짓으로 장거리 수영을 완수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던 듯한데, 게 중엔 '철인!, 나도 할 수 있겠구나'도 있었다.   사실, 그동안 농담 삼아 철인 대회에 도전해보겠다는 둥, 아내는 이왕 하려면 철인 정도는 해야 한다는 둥, 어처구니없다고 여겨온 농담들이 은연중 기억 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


내가 만난 철인경기를 들어보거나 경험해 본 이들은 하나 같이 "일반인들에게 철인 입문의 가장 높은 진입장벽은 '수영'이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장거리 수영이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을 수밖에.   그 둘째 장벽이 바로 사이클링을 위한 장비, 즉 고가의 자전거인데, 수영의 높은 벽에 가려 자전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수고는 덜한 편이다.   또한, 이미 사이클링을 해오던 나에게도 역시 수영이 가장 힘든 난관이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게 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작정하고 결심하는 것이다.   그게 없이는 시작도 쉽지 않겠거니와 그 이후 끈질기게 이어갈 수도 없으니,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그 결심을 실행할 수 있도록 '불'을 당겨 주고 끝까지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연료는 결국, 내 주변 사람들이다.   그것도 그들의 ''이 아닌 '행동'과 '실천'인데, 그들을 바라보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본다.


아내의 지지가 그랬고, 함께하는 동료들과 매 훈련을 함께 하지 못해도 온라인으로 서로의 훈련기록을 모니터링하며 보내는 소리 없는 응원이 그러하다.   


두번째 한강 오픈워터 수영훈련 후, 마라톤 훈련.  나와 동료들은 스트라바(Strava)앱을 통해서 서로의 훈련 과정을 항상 지켜본다.


작년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훈련일 수를 세기 시작했는데, 훈련 94일째 되는 날이 이번 대회 당일이니, 평균 이틀에 한 번은 훈련을 한 셈이다.   


훈련일 수 70% 이상을 수영훈련으로 채웠고, 사이클링은 평소의 라이딩 습관(주 1~2회 40~100 km) 유지하며, 막바지 2개월 정도를 앞두고, 마라톤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대회 한 달 전에는 거의 매일 훈련이 이어졌고, 종종 2개 이상의 종목을 이어서 나의 신체와 근육이 철인경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필요한 때마다, 선험자들과 새벽 수영강습의 강사님께서 과외시간을 들여 자세를 교정해주고,  꿀팁을 나누어 주셨는데, 반년 동안이나 발전될 낌새조차 보이던 '100미터당 2분 46초'의 초보 수영 실력이 대회   달 전부터 10초 이상 줄어든 까닭은 그런 연유일 것이다.




대회 전 2개월


대회 두 달 정도를 앞두고는 슬슬 실감이 나면서 때때로 긴장감도 들었다.   대중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철인"은 딴 세상 사람들 얘기처럼 들리기 마련일 텐데, 애써 사서 고생이니, 야근이라도 한 다음 날엔, 새벽잠을 설치고 나서야 하는 훈련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여지없이 '무엇하러 이 고생인가 ' 하며, 후회하기를 반복하게 되는데, 수영장 풀에 몸을 담그며 선잠에서 깨어나고서야 겨우 다시 제정신이다.


좋아하는 술자리 잡담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고, 어쩌다 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10시가 되면 내일 훈련에 지장이 없게끔 귀갓길을 재촉한다.   그러다 보니, 아예 선약을 핑계로 참석조차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잦아지면서, 다음날 훈련을 위한 컨디션 유지에 신경을 쓰게 된다.   철인 장거리 풀코스 완주만 서너 차례 경험을 가진 후배는 '철인 풀코스(3.9, 180, 42.195)를 완주하게 되면 주변에 사람들이 멀어져요.' 라며 농담을 건네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픈워터 수영


대회 일정 4주 전부터는 주말 새벽을 이용하여 한강을 찾았다.  그동안 각자 따로 훈련을 해오던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실전을 위해서는 오픈워터 수영에 익숙해지는 게 관건이었다.   처음으로 한강물에 몸을 띄워 수영을 시작했을 땐, 잠시나마 공포심도 들었다.   수영장 맑은 물아래 바닥의 곧게 뻗은 타일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던 습관이나 언제든 여의치 않을 땐 발을 딛고 잠시 서서 쉬어가면 그만이던 환경에서 익힌 스킬은 여기선 전혀 쓸모가 없다.   바로 옆 가까이 붙은 친구의 몸짓만 겨우 알아차릴 뿐, 강속은 내 키를 훌쩍 넘는 깊이의 암흑 그 자체였다.   


본 대회 4주를 앞두고 첫 오픈워터 수영 훈련 (한강 잠실대교)
동호인 코스에서의 웻 수트는 필수 장비다.  오픈워터 수영 훈련 뿐만아니라 수트를 입고 벋는 요령을 익히는 것도 대회 출전에 앞선 필수 준비항목이다.
한강 반대편에 다다른다.

물속을 바라보며 나아갈 방향을 정하던 수영장 수영과는 달리, 오픈워터 수영은 물 바깥으로 눈을 내어 앞을 보며 진행 방향을 정하는데, 체력 소모가 커 오픈워터 수영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Super Sprint, Aquathlon, Aquabike


대회 2주를 남겨 놓고선, 막바지 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다음날 컨디션이 나빠지지 않도록, 장거리나 표준코스 전체를 훈련하기보다는 인터벌(짧게 끊어서, 근육 훈련과 자세교정 중심의 반복 훈련) 중심의 매일 훈련, 그리고 짧은 거리를 묶어서 하는 Super Sprint 코스(중등부 선수용 코스에 해당하는데, 표준코스의 3분의 1이나 그 보다 짧은 거리로 설계되어 있다), 두종목만을 이어서 치르는 Aquabike(수영-사이클), Aquathlon(수영-마라톤)으로 몸이 다양하고 혹독한 신체 활동에 익숙해지길 바라며.   물론, 어떤 경우에도 수영은 빼놓지 않는다.   (참고로 Duathlon은 수영이 빠진다.)


아쿠애슬론, 수영으로 한강 도강 훈련 직후, 10km 마라톤 훈련.  이날 오후 다음날  오전까지 암것두 못했다 ㅠㅠ


그리고, 속초. 대망의 그날.


속초로 떠나기 하루 전, 그동안 준비해온 몸 상태뿐만 아니라, 준비물 하나라도 빠트릴까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확인한다.   그것도 못 미더운 나머지, 리스트를 친구들에게 공유하며 크로스체크.


트라이애슬론 대회 참가 준비물 (대회 주최 측 지급 항목 제외)

웻 슈트 (입고 벗을 때 사용할 비닐, 장갑 포함), 오픈워터용 수경, 수경용 안티포그, 경기복(슈트 안에 착용하고, 경기 내내 입는다), 웨어러블 컴퓨터(개인 계측용), 바셀린(글라이드), 선크림, 수건(바꿈터에서 주로 발을 말리는 용도), 배번 벨트, 자전거, 자전거 공구, 물통, 고글, 글로브(사이클링용), 클릿슈즈, 헬멧, 내피 모자, 러닝화, 양말(러닝용, 사이클은 맨발로 클릿슈즈만 신어서 시간 단축), 러닝 모자, 슬리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에너지 보충제: 파워젤,
아미노산, 근육경련 방지제.


대회 하루 전 속초에 도착한 우리는 대회 주최 측에서 마련한 수영 공식 훈련 시간을 활용해 첫 바다 오픈워터 수영을 익힌다.   물론, 대회 참가자들과 뒤엉킬 내일 아침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대회 하루전, 수영대회장 전경.  750미터 코스를 두바퀴 헤엄치는 코스다. 노란색 부표와 경계선이 보인다.
청초호 엑스포타워.  타워 바로 아래서 대회접수와 검차가 이루어졌다.
검차 후 바꿈터(사이클 --> 마라톤)에 자리잡은 내 자전거와 친구 태호의 오렌지 색 멋진 S- Work가 보인다.
바다 수영을 마치고, 사이클 경기를 위해 바꿈터로 진입하는 길목엔 몸을 세척할 수 있는 분무 시설이 있다.   여기선 수트를 벗고 소금물을 씯어내며 달린다.





수영 두 번째 랩은 첫 번째보다는 수월해졌다.   코스도 익힌 데다, 짧은 순간 터득한 요령과 적어도 여기서 죽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몸이 확신을 가진 모양인지 호흡도 안정을 찾으면서 한 스트로크 (Stroke)씩 물살을 가를 때마다 두 번째 랩이 끝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변에 도착하면서 손이 모래에 닿자 두발로 뛰어나간다.   


이번에 울리는 "삑" 소리는 첫 종목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의미는 가장 어려운 코스를 무사히 끝냈다는 의미이자, 내가 가장 익숙한 사이클링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순토(손목시계형 계측장비)가 표시한 수영 완주 기록(나중에 알았지만, 방향을 잡지 못해 허비한 거리까지 총 1.6킬로미터를 수영했다)은  38분 50여 초.   내 최고 기록인 데다  50분 컷오프를 한참 따돌린 기록 인 셈이고, 덕분에 사기까지 오르니, 지칠 때인데도 힘이 솟았다.


수영 1.5킬로미터를 완주하고, 사이클링을 위해 수트를 벗으며 바꿈터를 향해 뛴다.

사이클링은 즐겼다.   속초시와 대회 주최 측은 훌륭하게 코스를 설계했고, 일요일 오전 속초시를 관통하는 코스인데도, 교통통제를 훌륭히 해낸듯하다.   물론, 이 때문에 불편해했을 관광객이나 속초시민의 지푸린 미간이 그려지긴 했지만, 기대 이상 안전하고 넓게 확보된 사이클 주행로는 참가 선수들 간의 멋진 속도경쟁을 한껏 북돋았다.   



종목 간 전환 중에는 사이클에서 마라톤으로의 전환이, 수영에서 사이클의 그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신나게 페달을 저어 경쾌한 속도감을 즐긴 대가는, 이미 피곤한 두 다리를 이끌고 맨바닥을 차며 10킬로미터를 뛰어야 하는 마지막 코스로 다가온다.   


대회 8번째 랩(마라톤 4~5킬로미터 지점)부터 양쪽 내측광근(무릎 위 안쪽 근육)에서 근육경련이 오기 시작했고, 9번째 랩을 시작할 때 즈음엔 통증이 심해져서 대회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지난해 장거리 업힐 라이딩에서 양쪽 다리 동시에 찾아왔던 다리 근육 경련을, 페달링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푼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그렇게 완화되길 기대하는 것 외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행요원이 들고 있던 근육 이완 스프레이를 빌려 통증이 가장 심한 곳에 한껏 뿌리고는 마지막 랩을 향해 달렸다.   


근육 경련으로 달리기 정말 힘들었던 지점이다.   카메라 앞에선 엄지를 들어보이는 여유를 부리긴 했지만.
파란색 카펫위를 달리며 3종목 10개 랩의 완주 순간을 즐긴다.


누군가, "100미터 경기가 이미 끝났는데, 힘이 남으면 어떡하냐. 경기 중에 다 써버려야지." 라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그렇게 묘사하는 걸 들었는데, 마지막 랩을 남겨두고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두 다리를 겨우 옮겨가고 있는 지금, 묘하게도 그 말이 떠올랐다.   


사실, 대충 마무리지을 요량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도전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 같긴 하다.   마지막 2.5킬로미터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써볼 생각으로 속도를 올렸다.   


몇 초 몇 분 더 빠르다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도 없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만 경기를 마친 그 순간, 더 당당하고도, 더 시원할 것만 같았다.




완주


대회 참가 목표였던 완주다.   그것도 훈련기록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어서 기록을 경신한 기쁨은 덤이다.  결승점에서 먼저 들어온 친구가 건네는 차가운 음료의 시원함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희열' 그 자체일 것이다.   



인생 첫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그렇게 완주하며 끝냈다.   인생 첫 트라이애슬론 대회 도전은 끝났지만, 당연히 나의 트라이애슬론 경력은 이제 시작일 테고,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는 82세 어르신이다.   완주를 하셨는지는 나중에 대회 기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결과보다는 그분이 이런 도전을 하신다는 그 사실 자체가 충격이고 놀라웠다.   인생은 모험과 도전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82세 어르신의 자기 관리와 건강도 놀랍기 그지없지만, 무엇보다 그분이 쌓아오셨을 법한 '도전모험'의 크기가 존경스럽고, '완주의 삶'이 눈부시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나의 도전과 완주가 선사하는 의미를 되새겨 잊지 않으려 한다.


끝.




함께 해준 친구들  (한강 훈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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