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바다 Dec 20. 2015

당신의 ‘없음’을 사랑해요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 알아볼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부족하고 결여이기 때문에 그와 싸우고 또는 헤어지는 것일까. 가령, 우리는 연인과 싸우고 나면, 그가 무엇이(이 무엇의 자리에는 사랑, 표현, 이해심, 배려, 또는 아파트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없었다고 흔히 말한다. 그리고 이별하거나, 이별당한다. 내가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녀와 헤어진 것일까. 내가 욕망하는 것을 그녀가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것일까.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아휘(양조위)는 보영(장국영)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리고 아휘는 결국 떠나버린 보영을 두고 말한다. 사실은 보영이 가장 아팠을 때, 그래서 그가 곁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자면, 아휘는 보영의 결여, 그 결여 때문에 사랑했지만,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더 이상 결여가 아닌) 보영은 아휘를 떠났고, 아휘는 보영을 떠나보냈다.        



결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또다른 사랑. 그것은 마누엘 푸익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서른일곱 살 동성애자 게이 몰리나와 스물여섯 살 마르크시스트 게릴라 발렌틴의 사랑이다. 감옥에 같이 있게 된 동성애자 몰리나와 이성애자 발렌틴. 몰리나는 발렌틴에게 영화 이야기도 들려주고 발렌틴이 아플 때 간호를 해준다. 적당히 해주는 게 아니라, 설사를 한 그를 씻겨주고 이불도 빨아준다. 여자 친구가 있는 발렌틴이지만 자신을 극진히 보살펴주고 희생한 몰리나를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몰리나는 그런 발렌틴을 위해 출옥 후 게릴라와 접선을 한다. 그(녀)의 정치의식이 아니라 발렌틴에 대한 사랑이 그(녀)를 그렇게 이끌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동성애 이야기를 다룬 다는 점보단, 사랑은 결여를 채워주는 과정에서 신비롭게 발휘된다는 점이 아닐까.


남자친구(또는 여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다른 (이성) 친구에게 토로하다 막상 그들이 친해지는 경우라든가, 병간호로 인해 급속도로 가까워진 케이스라든가, 한 잔의 술로 자신의 어떤 약점(일종의 결여)을 상대에게 털어놓고 친해지는 경우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과 함께, 어떤 결여를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함께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술 마시고 취한 채 자신이 가진 무엇인가를 잔뜩 늘어놓는 사람을, 우리는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고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힘은, 내가 상대의 어떤 결여를 알아보고 상대가 나의 어떤 결여를 알아볼 때 생긴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함께 있을 때 견뎌지는 결여'라는 말이, 단지 없는 자들이 서로 건네는 위안이나 연민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서로의 결여 그것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휘가 사랑한 건 보영의 결여, 결여였던 보영이었을 것이다.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어느 바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 장(장첸)이 아휘(양조위)에게 (마치 인증샷처럼) 목소리를 남겨 달라며 녹음기를 건네는 장면. 장이 춤추러 나간 사이 아휘는 녹음기에 무슨 말인가 하려다 말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울기만 한다. 번다한 음악과 조명 속에서 아휘는 고립된 섬처럼 울고, 그 울음은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긴다.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 어떤 말로도 해명되지 않는 것, 다  털어놓을 수 없는 것, 끝내 울음으로 끝내는 것, 그것이 사랑일지도.   


내가 무엇인가를 가졌고 그것을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흙의 형태가 되든 재의 형태가 되든, 삶이 결국 잠시 가진 것들을 천천히 내어 놓는 과정이라면) 언젠가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결여를 당신이 사랑한다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없어질 수 없으므로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의 결여를 사랑한, 나 역시 당신의 결여는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당신을 떠날 필요가 없다.

이전 12화 당신이라는 고유명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