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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Nov 28. 2018

제 1장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1화 (3)

형사의 말대로라면  종훈은 나와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가던 중 어떤 여성을 만난것이 된다.    
"그날 마지막으로  남종훈 씨와 함께 있을 때  말입니다.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으셨나요?"
"이상한 느낌이라뇨?"
나도 모르게  예민한 대답이 나올 것만 같아  나는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앞에 선 순진한 얼굴의 형사가  지금 나조차도 의심하고 있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유달리 초조해한다거나,  시계를 자꾸 들여다본다거나  그런 것 말입니다.   저 여성을 만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다면 당연히  시간을  체크했을 테니까요."
"아니오,  전혀...  오히려  저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다독여 돌려보낸걸요.   상견례 날짜도 정하자는 걸  내일 통화하자고 했고요.   그다음 날  제 수술 스케줄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저도  더 늦게까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어요.  쉬고 싶었거든요."
"그렇군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뭔가를  알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늦은 시간에  만나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곁에 앉아 있던 시연이 불쑥 끼어들었다.
"글쎄요,  감시 카메라 화면으로만 보면  두 사람이 만나서 즐겁게 대화한 것 같지는 않더군요.  여자 쪽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십 여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몸싸움도 있었던 걸 보면  아마  말다툼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땠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형사와  인사를 나누고  경찰서를 나와  시연이 잡은 택시에 탈 때까지  몇 번이나  주저앉을 뻔했다.   
"너,  괜찮니?"
시연이  물었다.   대답하지 않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너 얼굴이 창백해 라고 덧붙였다.   그제야  시연이  자신의 집 앞에  택시를 세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연이 사는 동네는  구의동이고  내가 사는 곳과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
"저녁도 안 먹었잖아.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  너네 집에 나중에 데려다줄게."
"내일  출근해야 돼."
코수술이  여러 개 잡혀 있다는 걸  겨우 기억해내고  대답하자  시연이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말하고 쉬어.  너 그런 상태로 수술 들어가면 환자들한테 실수해.  수술할 때 실수하면  안 된다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수술 안 하는 게 더 낫다고  맨날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바로  너였거든."
"쉴 수 없을 텐데..... 수술이  미리 잡혀 있어서 말이야."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표현이  썩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아주 견고하게 잘 쌓아가던  벽돌 건축물이  한순간 무너지는 장면을 보는 기분이랄까.   무엇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심지어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를 기분이다.
"이럴 때일수록  모든 일을 한 번에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해야 돼.   내 말 알아들었지?"

시연의 오피스텔은  십이층에 있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그동안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내일부터 한동안  쉬어야겠다고  말해두었다.    원무과장은  의외로 쉽게  그러자고 했다.   아마도  형사가  이미 다녀간 모양이다.   시연이  근처 식당에  저녁으로  먹을  순두부찌개를 주문하고  그 음식이  도착하는 동안  나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   

 

"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처음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 쉬듯  그랬다.


"밥 먹어.   죽으면 안 돼."


시연은  내 손에  젓가락을  쥐어주며  말했다.



종훈이 없다.


종훈이  내 곁에 없다.


종훈이  사라졌다.


아니,  종훈은 죽어서 다시는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게  현실인데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밥을 전혀 먹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시연은  그런 나를 안쓰러운 얼굴로  들여다보다가  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물었다.  


"마침  카모마일 차가 있지 뭐야.   한잔 따뜻하게 마시고  자."



시연의  눈빛이  간절했기 때문에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식탁 앞에 앉았다.  저녁을  대강 치운 시연이  따뜻한  차를 내왔다.


"그런데...  그 여자 말이야.   형사님 말이  종훈 씨랑 몸싸움이 있었다고 했었잖아.   종훈 씨도  꽤 큰 키에 덩치가 좋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랑  몸싸움까지 할 정도라면  엄청 화가 난 상태였나 봐."


"그러네."


그러고 보니 시연이  요즘 소설 쓸 거리를 찾고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시연의 눈에  반짝이는  관심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종훈 씨에게 화낼 일이 뭐였을까?   정황상  그 여자는  너와  종훈 씨가  헤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종훈 씨와  만남을 시도한 것 같은데...    만약  그랬다면  그 여자의 입장에서는   종훈 씨와  자신의 만남이  너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 것이라고 생각해.   아니,  어쩌면....."


시연은  마시려던 커피잔을  다시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   너뿐 아니라  누구의  눈에도 말이야."


시연은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니  알고 지낸 것만도  십 년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녀가  이렇게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머리를 굴리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었다.


"너는 그 여자가  종훈 씨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그건 단언하기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있기는 하겠지."



시연의 말이  맞다.   종훈은   나와 헤어진 밤에  그 여자를  만났다.   계획된 만남이었는지,  우연을  가장한  부딪힘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날 밤  몸싸움까지 할 정도로  격앙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다투고 나서  그 여자는  택시를 타고  먼저 자리를 벗어났고   종훈 씨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는 거지."


"그날 종훈 씨가  차를 두고 나왔다고 했어.  술 마시게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나에게 말했던 기억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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