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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07. 2018

제 1장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1화 (4)

"종훈 씨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나."

내 말에 시연은  가볍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나도  종훈 씨가 어딜 다치거나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정도일 거라고만 생각했었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

시연은 어려운 말을 꺼내듯 조심스레 대답하고  내 앞에 놓인  찻잔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공기는  짙은 안개처럼  방안을 채웠다.   그  느낌을 비집고  논문만 끝내면  결혼하자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종훈 씨가  바람둥이였다고 생각하니?   예를 들어  나에게는  결혼하자,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 탓이다.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서  시연이  정확한 대답을  못할 것쯤도 알고 있다.   시연은  종훈이 아닌 내 친구니까 말이다.

"난 종훈 씨  딱 두 번 밖에 만난 적 없잖아.  너도 알다시피."

시연은  작게 말했다.   내  생일날  친구들과 함께  모였을 때  종훈이  그곳으로 왔었던 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언제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시연은  아마  나와 종훈이  병원 근처에서 만나 함께  있을 때  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종훈과  나,  시연이 함께 할 세 번째 만남은 앞으로 절대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종훈 씨가  나와 헤어지고 만난 그 여자는 누굴까?   도대체  그 사람이 나에게 숨기고 있었던 게 무엇이었을까?   그가 했던 모든 말 중  진실은  얼마나 되는 거였을까?   난  얼마나  많은 거짓말에 속았던 것일까?"

"아닐 거야,  종훈 씨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거나   너에게 거짓말을 했었다는 건 ...  모든게  추측이고  가정일 뿐이잖아.   너는  그 사람이 너에게 보여주었던  모습만 믿으면 돼.   그 사람은  좋은 애인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시연의 손에 끌려  침실에 들어갔다.   시연의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잠든 줄 아는 것인지  시연은  방 불을 끄고  나가면서 문을 조용히 닫아준다.   나는  눈을 감은채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생각이  너무 많이  머릿속을 떠돌고 있었다.   어디선가  시작된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시작과  끝을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엉켜버리고 있었다.     생각은  나를 따라 달려오다  멈췄다.  눈을 뜨면  다시 시작되었다.   덕분에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몸을 뒤척여야 했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전깃불을 켰다.   시연의 책상 위에는  뚜껑이 닫힌  노트북 컴퓨터와  노트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언뜻 봐도  이십 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침실에 있는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  옷 같은 것이 들어있는  작은 서랍장이  전부다.   나는  창가에  흔들리는  커튼 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밤이 새벽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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