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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07. 2018

제 1장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2화 (1)

아침이 될 때까지  나는 시연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누워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했고  서 있으려니  몸이 너무 피곤 해서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몇 권 꺼내 들여다보고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손으로는  책들을  헤집고 있었지만  갈래갈래 얽혀있던  생각들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종훈이  죽었다는 사실도,   종훈이  바람둥이였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창가에 햇살이  비쳐들자  나는 거실로 나갔다.   시연은  내가 깰까 봐 걱정스러웠는지  방에  들어오지 않고  거실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불이  죄다  방안에 있어서 그랬겠지만  이불 대신  입고 있던  겨울 패딩을  덮은 채다.   그나마  얼굴까지 푹 뒤집어쓴 채로  잠들어 있어서   양쪽 발에는 아무것도 덮여있지 않았다.   침실에서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가져다  시연에게 덮어주자  시연은  눈을 번쩍 떴다.

"너도 안 잤어?"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새  울었는지 시연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게다가  발갛게 충혈되어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그녀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내 불행에 대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적잖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커피 마실래?"

시연은  잠기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타리카 커피가 있는데  마셔볼래?"

그녀는   부엌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물었다.   

"글 써야 할 것이  많은데  나 때문에  방에도 못 들어오고  있는 거 아니니?   내가 방해될까 봐서  미안해지는걸."

"아니야,  저번에  쓰던 건  다 끝냈고  지금은  쉬는 중인걸,   네가  침실을 계속 써도  별로 상관없어."

시연은  커피를 내리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시연은 여름 내내  일하느라 바빴다고  했었다.

"여름에 했던 일이 끝났구나.   그게   뭐였어?  소설이었니?"

"박 진웅 회장이라고  J&S 그룹 경영주인 분말이야.  이번 여름에는  그 댁에서  두 달이나  살다시피 하면서  그분의  자서전을 썼지 뭐야."

"자서전?   그런 것도 쓰니?   난 소설가들은  소설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도  소설만 쓰고 살았으면 좋겠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그렇게 팔자 좋은 생활만 할 수는 없어.  요즘은 다행히  조금이라도  업적이 있다 싶은 사람들이  자서전 쓰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서  나 같은  글쟁이에게도  일이 생기더라.    쓰는 동안은 내 생활이  거의 없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수입이 꽤 짭짤해서  한동안 돈 걱정은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어."

박 진웅 회장이라니,  그 이름이 귀에 익었다.   하긴 이 시대에 한국에서 사는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러고 보니....노을이라는 학생이   J & S 그룹 후계자라고  들은 기억이 나."


노을이라는 이름을 내가 입에 올리자 시연은 눈을 빛냈다.   


"노을이?  알지.  회장님이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야.   그 집에서 일할 때  몇 번 마주치기도 했었고.   그 애  남자애 치고는  아주 예쁘게 잘 생겼더라.  아이돌 그룹 데뷔 준비하고 있다던가   그런말을  들었어.  내가  그 댁에 들어갔을때도  소속사에서  온 사람이라면서  여러명이 왔다 갔다 하더라고."

"그래? 노을이를 아는구나."

"그 애 얼굴 본 적이 있어.  정말 예쁘게 생겼다.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그런 애들이야 말로 성형 수술이 필요 없는 거겠지? 부럽더라고"

물론  나는  의사로서  노을이  성형 수술을 받았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자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것도  유출해서는 안된다는 직업 정신이  몸에 밴 탓이기도 했다.    대신 내 눈 앞에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던 노을의  홀쭉한 몸이  지나가는 듯 했다.

"자신의 얼굴이나  생김새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야...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느껴도  당사자는 수술하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성형외과 의사로서  내가 가진 신념 같은 것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환자들의 경우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들의 외모를  고쳐주는 행위는  그들의 자존감을  제대로 세워주는 행위이기도 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노을이도  어떻게 보면 참 가여운 아이야.   박 회장님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안 시켜 본 것이 없었다지, 아마.  하긴 늦게 본 외아들인데다가  다른 아이들도 전혀 없으니  한 편으로는 이해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어릴 때 운동도 잘하고 영리했던 모양이야.   축구,  하키, 승마,  스케이트 등등  안 해본  운동이 없었고   악기도  수십 가지 가르쳐 보려고 했는데  재능이 없었대.    과외도  엄청 시켰다는데  공부에도  별 재능이 없었고.   노래는 무척 잘했다는데  변성기 지나고 나서는  별로였대.   그래도  춤은 어지간히 추고,  작사 작곡도 하는데다가 워낙에 외모가 좋아서   아이돌 후보생에 뽑혔다고  들었어."

"재능이 있는데도  주위 상황이 안 좋아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애는  복을 타고난 모양이다.  요즘 말하는 금수저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애랑 마주쳤을 때마다  그 애는  울고 있었는걸.   아버지에게 혼나고,  두들겨 맞고,   얼굴이며  몸 여기저기에  상처도 있었고....  어쨌든 난 그 애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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