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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Dec 19. 2018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2화 (3)

종훈의 장례식이  이미 치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던 날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한 겨울에 무슨 비가 내리느냐고 사람들이 투덜거렸는데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오후가 되면서 비는 눈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눈이 길가에 쌓였고  치우기 전에  얼어붙어 버렸다.  마치 내 마음속 황당하게 일그러진 종훈의 기억이 그러하듯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시연이  외마디 소리처럼 내뱉은 것을 들으며 내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비참해졌다.

"네게 알리지도 않았다니.. 종훈 씨 가족들은... 네가 종훈 씨 약혼자인데... 종훈 씨 장례식에 네가 없었다니..."

시연은 몇 번이나 완성되지 않은 문장을 탄식하듯 내뱉었다.


장례식 전날이었나  전화를 받기는 했었다.   종훈의 누나라는 분이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보라 씨는 젊고  앞길 창창한 분이라  앞으로 종훈이는 잊고 새로 출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라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종훈의 가족들이  모여 심각하게 가족회의를 했었다,  그리고 나를 장례식에 초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게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그녀의 말은 한없이 정중하고 부드러웠지만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제 의견도 한 번쯤 물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  그 점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종훈의 가족들에게  종훈을 떠나보내는 의식이 필요했듯  나에게도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는 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눈물을  훔치는 장례식장이든,  일기장에 꼭꼭 숨겨둔 슬픔의 흔적이든.

속이 상해도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미 종훈의 장례식이 끝나버린 후였으므로.

장례식은  조용히 잘 치렀어요.  조문객도 많지 않았고요.  경기도에 있는 납골당에 자리 마련했어요.  어딘지는 알려드리지 않을게요. 보라 씨는  종훈이 납골당에 오거나 슬퍼하지 말아요.  종훈이가 참 좋은 사람이었지  생각하며 가끔 기억해 줘요.  그 애도 그런 걸 원할 거라고 생각해요.”

종훈의 누나는  좀 생각하다  다음 말을 이었다.

종훈이가 쓴 책이 곧 출판되기로 했는데  그 애 집에 그동안 책 쓰면서 모아둔 자료가 꽤 많다고  하더군요.  내가  그걸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 의미도 없고  보라 씨가 종훈이처럼 의사라니까  전공분야는 다르지만 혹시라도 가져가시면 유용하게 쓰지 않을까 해서요.  원하신다면  보내드릴게요.”

그녀의 말이 끝나고도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그것뿐일까.

서른세 살 젊은 남자가 어느 날 살해되었고  세상에서 사라졌는데도

지구는 제 궤도를 잘 돌고 있으며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종훈의 누나에게  그의 유품 중 어떤 것이라도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혹시라도 지나친 집착이나 미련으로 보일까 봐  조심하느라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글쎄요.  그 애 유품이라고 해봐야  별게 없어서... 옷가지도 몇 벌 안되고....  아참,  못 보던 넥타이 핀이 있기는 하던데...  백금에 파란 보석 박힌 거요.”

,  그걸 제가 종훈 씨 생일날 선물로 준 거예요.”

그래요?  그럼  그걸  보내드릴게요.”

종훈의 누나는  내 주소를  문자로 적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다고  종훈 씨가 잊히겠니?”

나는 한숨 쉬듯 말했다. 내 말은 그대로 하얀 입김이 되어 겨울 공기를 떠돌았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숨을 쉴 때마다 욱신거렸다.  마음이 너무 아프면 몸에 통증으로 나타난다는 건 사실이었구나.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넥타이 핀이 도착할 때가 되었거든.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제야 시연에게 본론을 꺼냈다.  

집에 갔다가 다시 올 거지?”

시연은 확인하듯 물었다.  이주일이 넘도록 나는 아직 시연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시연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 혼자 지내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직도 혼자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는 게 시연의 주장이었다.  그녀는 내가 혼자 있기에는 너무 약해졌으며 심지어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고까지 했다.

택배만 받고 저녁에는 우리 집으로 와서  잠은 우리 집에서 자.  ?  그렇게 할 거지?”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시연이 사는 구의동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논현역에서 내려 십여분 걸어야 도착하는 곳에 있다.  지하 두 층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건물 1층과 2층은  상가가 조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건물 1층으로 들어가 입주자용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지난 이 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꿈속에서 일어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차라리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느라  내 집 현관문 근처까지 걸어가는 동안  현관문에서 누군가 검고 날쌘 그림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도,  심지어 그것이 내 곁을 스쳐가 눈 깜박할 사이에 건물 계단을 통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걸음을 멈추고  딱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있기만 했던 것이다.    당황할 새도 없이 격렬하게 들이닥친 긴장과 두려움이 내 머리를 강타한 듯  나는 잠시 동안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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