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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Jan 08. 2019

1월 8일 2019년

잠든  사랑을 훔쳐봅니다.

샤부샤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다.   나는 국물이 있는 음식보다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국물이 적은 음식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그를 따라 식당에 가는 일이 잦다 보니  내 식성도  따라 변화하는 느낌이 든다.


밤이 깊어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을때,  아니  잠기 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응.. 으응.." 하고 대답할때 깨닫는다.  지금은 밤이 많이 깊어졌구나.

밤 열시, 혹은 열 한시.

그에게는 깊은 밤이다.   나에게는  책 한권에서 깨어나는 시간,  커피를 그만 마셔야 하는 시간.

그에게는  피곤을 달래는 순간.


잠든 그는 어린애 같다.  가볍게  코를 골거나  웅얼웅얼 잠꼬대를 하거나  갑자기 눈을 뜨고  나를 들여다 보기도 한다.  잠든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의 얼굴을  한동안 들여다 볼때가 있었다.

턱수염으로 꺼끌꺼끌한 얼굴,  두꺼운 머릿결,  깨어있을때는 근엄하던  얼굴이  어린애처럼 변해버린 게  신기하다.   나는 그에게서 나는 약한 비누냄새를 킁킁댄다.   화장품을  쓰지 않는 그의 체취가 좋다.

그가 잠든 싱글 사이즈 침대위에 기어 올라가 파고들면  그는 눈도 뜨지 않고 몸을 비켜준다.  작은 침대 위에 두 사람이 꼭 끼어 누워있는 게  재미있다.


그가  누워있는 침대 곁에는  자전거 그림이 잔뜩 그려진 포스터가 걸려 있다.

나는 가보지 못한 세상에 몇 번이나 다녀온 그의  낡은 가죽 배낭이  그곁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는 ... 나는 그의 세상 어디에 있을까.

가방과  자전거 포스터 중간쯤..?

그가  잠시 지났던 여행지 목록에 한 귀퉁이쯤에?


그의 곁에 누워있어도  나는 그의 것이 아니다.  그의 세계에 속해지는 존재는 아니다.

그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내 세상에 드나들고  낯선 향기와  꿈을 실어다 준다.

덕분에 나는 성장한다.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하늘을 향해,  허공을 향해.

그렇지만  잘 들어둬.  날아오르는 건 나 자신이야.  당신의 도움은 더이상 필요 없어.

그가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나를 변화시킬 수 없듯  나도  그를 변화시키고 싶지 않다.


우리는 서로 다른 꿈을 꾸며 한 침대에 누워있던 그 밤처럼  

가끔은 서로의 영혼과  입술에 키스하며  

그러나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이 서로에게 매우 가깝기를,  조금은 겹쳐지기를 바라며

아니, 매우 다르기를 바라며


너무 비슷한 건 재미 없잖아.

다를 만큼 달라야  매력있다.

다르고 뜨겁고 자유로운 그의

잠든 영혼을 훔쳐보며.

내게는 깊고 커다란 그의 세상을 들여다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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