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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

by 박태신

며칠 전 서점 가서 구입한 포켓판 책을 읽고 있었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꿈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전에 한적한 곳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이것도 꿈인가 싶다. 칸막이 없는 대형 탁자와, 등이 편한 고급 의자가 나를 감싼다. 도서관치고 특이하게 경음악을 약하게 틀어놓고 있다. 걱정할 게 없다고 해야 할 순간.


아! 지갑을 두고 왔다... 꿈이 깨지고 당혹감이 들어찼다. 점심을 밖에서 해결하고 오후 일정을 보낼 생각도 하며 외출했던 것이다. 슈퍼도 들를 수 없다. 나는 늘 지갑을 바지 오른쪽 앞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얼마 전 바꿨지만 최근까지 10년 넘게 가지고 다니느라 헤지고 닳은 지갑을.


웬걸, 혼란은 잠깐. 지갑이 없으니 바지 무게감도 줄고 몸놀림도 한결 자유로워졌네. 방안에 있는 것 같다. 지갑의 비중이 생각보다 컸나 보다. 내겐 거의 있을 수 없는 뜻밖의 경험. 싱그럽기까지 하다.


자연 속 동물은 지니고 다니는 게 없다. 나뭇가지와 먹이를 옮길 뿐. 옷도 입지 않는다. 밤엔 이불 없이 잔다. 새들에겐 온 대지가 화장실이다. 혹시 그런 새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 배변 위치상 지상의 존재들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낭에 짐은 가득하더라도, 추가로 핸드폰까지 두고 나온다면 내 짐의 절반은 줄어든 느낌이 들 거라고. 수없이 들여다보는 핸드폰은 부피는 손바닥보다 작아도 내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는 힘이 몽둥이보다 강하다.


만약을 대비해 지폐 한두 장과 신분증만 챙기면 된다. 그러면 도서관 안에서 나는 두 배로 확장된 공간을 갖게 될 것이다. 책과 노트와 펜으로 내 마음속 세상을 자유롭게 넓혀갈 테니까. 소비욕(카드)과 궁금증은 집에 놓고 나왔으므로.


그 순간 나는 100년 전, 가상현실에서 벗어난 가난한 중년신사가 된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영화를 보면 괜히 답답한 느낌도 들지만 우리는 원래 그렇게 살았다.


오늘은 무형으로 득템한 날. 이런 가벼움을 경험하고 상상했으니 언제 한번 그래볼까. 지갑과 핸드폰 두고 도서관 가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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