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
낙엽 세례를 받았다. 떨어진 낙엽과 떨어지는 낙엽이 세찬 바람에 뒤섞여 나에게로 날아왔다. 생경했다. 기분을 들뜨게 했다. 10월 말 새벽녘, 한산한 중계동 은행 사거리 주변의 느닷없는 풍경 속에서 잠시 나는 가을 나그네가 되었다.
오! 생각해보아. 그대와 나의 정겹고 기쁘던 그 시절.
살아있음이 아름답기만 했었지.
낙엽이 수없이 쌓이는데 이제도 못 잊어라.
낙엽은 수없이 쌓이는데 내 그리움도 안타까이 쌓여 찬바람에 휩싸여가네.
(이브 몽땅의 ‘고엽’ 가사 중)
낙엽이 쌓인 거리는 바다 아닌 도심 속 모래사장 같다. 바람 불 때 단체로 거동하는 낙엽들은 모래사장으로 납작하게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 같다. 미처 피하지 못해 낙엽 파도 물에 발이 잠기고 말았다.
위 가사는 1980대 말이었을까, 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들은 것이다. 노래가 나오기 전 앵커가 스산한 배경음악 속에서 낭송한 가사를 받아 쓴 것이다. 그 시절, 카세트테이프로 마음에 드는 노래가 소개될 때면 녹음 준비를 하곤 했었지. 그 테이프는 지금도 내 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가을 같은 중년의 삶을 연명하고 있다.
인형버스
그 은행 사거리를 지나가는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 어느 날 버스 좌석에 앉아 텅 빈 버스 안을 바라보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유명세를 타든 타지 않든 수많은 인형들이 버스 안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철봉 위에 걸터앉은 인형, 턱걸이 운동 하는 인형, 손잡이 윗부분에 달라붙은 인형 등 스무 개는 넘을 듯싶었다.
행운의 열쇠를 쥔 버스다. 버스기사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인형들을 달아놓았을까. 절로 미소가 나오게 하고 핸드폰에서 눈을 떼게 만들고, 해서 버스 탈 때 달고 온 근심거리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인형버스의 버스기사는 인형이 지닌 마력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림동화가 그렇듯 인형은 어린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지. 어른 누구라도 마음속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어린아이가 버스 안 인형을 보고 활짝 웃고 있겠지. 20여 분의 인형버스 탑승. 나도 미소를 짓고 아쉬워하며 하차했다.
거미줄 빗방울
거미줄이 목욕했다. 폭우가 내린 후 다음날. 흥건히 젖었다. 젖어서 윤기가 돈다. 거미도 수분섭취를 했겠지.
산책로 관목 사이로 거미줄이 많다는 걸 알았다. 빗방울 덕택이다. 덩치도 제각각인 빗방울들이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거미줄이 포획한 수분 먹잇감. 맨 위 사진 속, 가운데가 텅 빈 관목 숲은 거미 도시 같다.
커다란 거미줄 빗방울은 햇빛 열기에 쪼개져 바닥식물에게로 떨어지겠지. 그러면 거미는 다시 곤충 사냥꾼이 되겠지.
까치밥
집에 가는 길 골목에서 보았다. 참새 서너 마리가 감나무 줄기에 옹기종기 모여 감 하나를 쪼아 먹는 모습을. 까치밥 감을 참새들이 먹고 있네. 웃음이 절로 났다. 도망칠까 봐 서서 찬찬히 보고 싶은 욕구를 눌렀다. 그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걸으면서 그 모습을 조금 더 보았네.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네.
중탕
오늘 새벽 창밖으로 하현으로 향하는 달과, 제각기 행보대로 공전하다 지구 가까이 다가온 목성과, 삼태성을 허리로 삼고 있는 오리온자리를 보았다. 대표적인 겨울 별자리. 그도 그럴 것이 지난주에 입동을 맞이했으니.
가을엔 사물이, 생명이 잘 보인다. 온수와 냉수가 섞여 몸을 담그기 적당한 중탕(中湯) 물이 되듯, 더위와 추위가 뒤섞인 가을은 그 물 같다. 기온도 중탕, 차분해진 마음도 중탕이어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을이라는 중탕 사우나물 속을 헤엄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물과 생명을 계속 계속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