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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Nov 26. 2022

물의 집

“수각은 식수로만 사용하세요.”      


울진 불영사 약수터에 써놓은 표지판 글이다. 수각이 뭐지? 생경한 단어라 사전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한자어가 있는데 그중 가장 적절한 단어는 ‘수각’(水閣)임이 분명하고 그 뜻은 “물가나 물 위에 지은 정자”다. 이곳의 약수 물은 바로 앞 연못 ‘불영지’로 흘러갈 테고 그 물은 불영계곡으로 이어질 테니 약수터도 근사한 이름 하나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블로그를 찾아보니 웬만한 사찰은 다 수각을 갖추고 있음을 알았다. 실제로 정자 안에 약수터가 있는 사찰도 있다.      


20여 년 전 히치하이킹을 통해 청량산에서 불영사로 와 이 ‘수각’을 처음 보았는데, 지난 8월 다시 이곳을 찾을 기회가 생겼을 때 이 ‘수각’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궁금했다. 그대로 있었다.    

   

크기가 다른 네 개의 돌 사발은 자기의 역할인 물의 모음과 흘려보냄을 1년 내내 이어가며 마르지 않는 물 정자의 풍취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맑은 맨 위의 돌 사발 물은 공양을 바치거나 차를 끓일 때 쓰이고 그 아래는 밥물, 세숫물 등으로 차등해 쓰인다고 하는데 절을 찾는 이들에겐 당연 맨 위의 돌 사발 물을 약수로 제공한다. 이곳 약수 물을 20년 만에 다시 마셔보았다.      


수각의 물은 그 아래 연못 불영지에 모인다. ‘부처님의 그림자’(佛影)라는 뜻으로 절 이름 ‘불영사’가 되었는데 서쪽 산꼭대기의 부처바위가 이곳 연못에 그림자를 남겨 자연스레 ‘불영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부처바위가 사람이 조각한 것인지 자연이 조각한 것인지 지인들과 함께 말에 의문부호를 붙이면서, 위치상 해가 뉘엿뉘엿 부처바위 뒤로 하강할 때 연못에 그 그림자가 비쳐지겠구나 가늠해보았다.     


이 불영지의 물은 지도상엔 나오지 않지만 조금씩 불영계곡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뭄이 심한 때라 시원스러운 계곡물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낮게 깔려 있는 계곡물은 맑았다. 불영계곡은 꽤 긴 거리를 거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탄 버스는 계곡 따라, 구불구불 산길 따라(일명 불영계곡로) 달렸다. 불영계곡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왕피천으로. 은어로 유명한 왕피천의 물은 이곳에서 거대한 하천을 이루다가 동해바다로 빠져나간다. 이 세상 모든 물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바다로.      


내가 들른 울진의 망양정해수욕장 앞 바다는 정말 고요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없던 덕택이다. 수평선은 윤곽이 뚜렷했을 뿐만 아니라 타원이 아니라 직선으로 느껴질 정도로 너른 바다였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드문 고요의 바다 풍경을 정자 망양정과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감상했다.


불영사 수각에서 돌 사발을 거치며 수행을 닦은 물은 불영계곡을 따라 좌충우돌하며 흐르다,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왕피천의 저잣거리를 거친 후 속이 깊은 이곳 동해바다에서 여정을 마친다. 어리숙한 아이가 성장통을 겪은 후 성숙한 청년이 된다는 내용의 성장소설을 읽는 듯하다.      


그런데 이곳 바다에서 행복감을 느낀 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환경의 변화를 체험한다. 하늘 위 달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듯 인력을 사용해 일으키는 밀물과 썰물 따라 우왕좌왕하고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격류로 변해 혼이 빠지기 일쑤다. 그러다 햇빛으로 데워진 바다는 H2O 물 분자 하나씩 하늘로 상승시키게 만든다. 이렇게 지상 그것도 가장 낮은 곳에 바짝 붙어 흐르기만 하던 물은 날개를 달고 날기 시작한다. 물이 큰집을 떠나는 순간이다. 물은 그제야 세상이 넓고도 넓은 곳임을 높은 대기 속에서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고서 구름이라는 수분 집합체의 소속원이 되어 대기를 떠다니게 된다.      


내가 본 망양정해수욕장 앞 동해바다 위 구름들은 독야청청 소나무나 위엄을 갖춘 선비 같은 품새를 지녔다. 구름 산수화다. 구름은 순간과 변모의 미학을 즐기는 자연물이다. 그 장관을 한껏 즐겼다. 그런데 이곳 구름의 수분엔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지하수로 살다 올라온 것들도 많을 것이다. 지하에서 지상, 하늘로 신분 상승한 것이다. 물만큼 세상만사를 직접 온몸으로 느끼며 지구라는 생태지를 경험하는 자연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물의 마지막 운명. 하늘 위 구름에서 유유자적하던 물은 어느 순간 뭉쳐져 ‘비’라는 알갱이가 되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빗물은 높은 곳에서 직하한 까닭에 허무하게 땅에 부딪치고 깨어져 낱알 물이 된다. 물에게도 고통이 있다면 이때의 충격이 제일 클 것이다. 비는 지상 곳곳에 무작위로 쏟아져 내린다. 쏟아져 깨지는 자신들의 모습을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을 물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산 위로 떨어진 빗물은 탄력 있는 침대 같은 숲과 흙덩어리에 닿게 된다. 작으나마 통증은 있겠지만 이내 빗물은 흙속으로 스며든다. 산의 물 저장 능력은 탁월하다. 많은 물을 안에 차곡차곡 담아둔다. 이 저장 능력엔 나무가 빽빽한 산의 숲에 빚진 바 크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숲이 산을 지켜주고 산이 숲을 지켜준다. 그뿐이랴. 모아진 물은 시간이 지나면 지상 곳곳에 다양한 모양새의 수각 안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갈증에 시달리는 우리 목을 적신다.      


물의 집은 어딜까. 이 글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땐 수각을 염두에 두었다. 정자(일종의 집)를 갖춘 물은 지상 물 중의 상층 계급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불영지’라는 집, 하천이라는 집, 바다라는 큰집, 구름이라는 창의적인 모양새의 날아다니는 집, 그리고 산의 흙속이라는 안온한 집으로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물의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구가 존재하는 한 말이다. 나그네 중 ‘상나그네’다. 그런데 가난한 이가 이곳저곳 이사를 거듭하며 살 듯 역마살 짙은 물 나그네 덕분에 지구는 생기를 유지하고 사람은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내 방 창밖으로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모를 구름이 지나간다. 수명 짧은 물의 집이 지나가고 있다. 견고한 방에서 견고하지 못한 성격과 기분 때문에 고민에 빠지곤 하는 나를 물의 집이 내려다보며 지나가고 있다. 저 속의 물 분자는 지상의 이런저런 물의 집들을 전전하다 구름이 되곤 하면서 그런 나를 되풀이 보았을 것이다.  

    

나는 밤마다 별이 있어 하늘을 쳐다본다. 낮엔 구름이 있어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게 항구한 별과 카멜레온 같은 구름이 나에게 위안이 돼준다. 어젯밤 늦게 하늘이 흐려지며 비를 뿌리더니 어느새 물러가 오늘 새벽엔 별을 볼 수 있었다. 둘 다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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