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태신 Aug 15. 2023

선물 같은 방문

우연이었다. 경남 울주군 관광지도에서 ‘오영수문학관’을 발견한 것은. 선물이었다. 오영수 문학관을 방문한 것은. 일요일 오전, 인적이 드문 언양읍 거리를 동에서 서로 20여 분 걸어 찾아갔다. 오영수 작가는 물론 오영수문학관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는 상태로. 


길을 잘못 나섰나 싶을 정도로 문학관은 꽤 외진 곳에 있었다. 숲 그늘막인 오르막길을 호젓하게 걷고서 화장산 중턱에 있는 문학관에 들어섰다. 안내 좌석에 계신 분에게 인사를 하고 1층 전시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작가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았다. 나는 전국의 문학관을 많이 다녀보았다. 그런데 오영수라는 작가도 그 문학관 존재도 몰랐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오영수 작가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짧을수록 예술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단편소설만을 고집했다는 사실이 반갑게 들렸다. 나 자신 짧은 글에 속하는 산문과 여행기를 자주 쓰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갔을 땐 관람객은 나 혼자.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내겐 어색한 경우도 아니다.    


작가 설명이나 작품 구절이 쓰인 전시 글은 전부 읽어본 다음 빠짐없이 사진에 담았다. 추후 글을 쓰기 위해 소재를 모아두는 내 습관이다. 단편소설집 초판본도 사진에 담았다. 헤드폰을 끼고 「메아리」 앞부분을 듣기도 했다. 점점 작가에 대해 정이 드는 것 같았다.


작가의 집필실을 자세히 살폈다. 창간 때부터 11년간 편집장을 맡은 잡지 <현대문학>이 뒤쪽 서재에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앉은뱅이책상에 오영수 작가가 국어사전을 펼쳐 놓고 원고지에 글을 쓰고 계신다. 무엄하게도 원고지에 폰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문학관에서 작가의 필체가 담겨 있고 퇴고가 곁들인 초고지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젊은 시절,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200자 원고지 번역 원고를 빨간 펜으로 교정 보는 일을 많이 했다. 200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로 글을 쓸 때는 프린트하고 나서 펜으로 교정 보는 것이 다반사였다. 프린트해서 보아야 수정할 부분이 더 잘 눈에 띈다. 지금은 노트 메모를 참고하며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글을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단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더라도 다시 수정하곤 한다. 오탈자가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어서 그렇고 내가 봐도 어색한 문장은 남들도 그리 볼 테니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작품을 읽기도 전에 선생의 문학세계를 논한 짧은 글들을 전시실에서 읽었다. 서정적 문체로 시골 속 서민들을 다뤘다는 내용 등 말이다. 어느 제자의 추도사를 읽고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비록 겉핥기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관람객은 나 한 명. 안내 좌석에 있던 분은 맞은편 사무실에서 점심식사 중. 나는 여유롭게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강의실(‘난계홀’)과 서재(‘문화사랑방’)가 있었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서재를 훑어보았다. 오영수문학관에서 ‘오영수 문학 전집’을 차례차례 발간 중에 있는 것 같았다. 『오영수 소설 사전』이라는 책도 있어 놀랐다. 작품의 배경이 6·25 전후를 비롯해 그 후 30여 년 동안이고, 작가가 200여 편의 단편소설을 썼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대형서점 판매대 같은 서가에서 몇몇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 그중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 『마음사전』에 마음이 갔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잠시 살폈다. ‘평안하다’와 ‘편안하다’의 차이, ‘행복’과 ‘기쁨’의 다른 뉘앙스를 알았다. 이 책은 나중에 보게 되리라. 


잠시 서재에 홀로 머물며 책 있는 풍경에 빠졌다. 창밖의 날씨는 화창하고 나무들의 잎은 무성하다. 이런 고상한 고적감을 맛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다시 한번 선물이다. 


식사를 마친 직원 분에게 구경 잘했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하신다. 뜻밖의 일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건물 밖 테라스(‘데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자리 위쪽이 서재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탁자 위 도드라지게 하나 놓인 화병에 눈길이 갔다.  


양치 컵을 들고 나를 불러 세운 직원이 관장님인 줄은 나중에 명함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홀로 관람객 나는 원장님의 모습을 연거푸 본 것이다. 


관장님이 원두커피와 초코파이를 가져다주신다. 그렇게 나는 ‘오영수문학관’ 관장님과 독대하는 영광을 누렸다. 나로서는 짧은 관람만으로도 친근해지기 시작한 작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의 호가 처음엔 월주(月州), 나중엔 난계((蘭溪)였다고 한다. 달, 섬, 난초, 시내를 뜻하니 결국 자연을 말하는 것이고, 작가는 생전에 신이나 종교가 있다면 고향과 자연이 그런 존재라 하셨다고 관장님은 설명해 주셨다.  


오영수 작가는 ‘난초병원장 원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난초를 잘 키우셨다고 한다. 죽어가는 난초도 작가의 손길을 거치면 살아났기 때문이다. ‘조력 30년’이라는 표현을 듣고 의아해했는데 낚시경험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중에 읽은 「어느 나루 풍경」의 주인공 ‘등산모’처럼 작가는 민물낚시를 오래 즐기셨고 이렇게 소설의 소재로도 삼았다. 


궁금하면 참지 않고 묻는 성격이라 대화는 길어졌다. 유서 깊은 잡지 <현대문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듣게 되었다. ‘도토리밥’이라는 동시 때문에 요시찰 인물이 되어 만주로 가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종군기자로 활동하셨고 늘 병약하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관장님이 몸소 많은 말씀을 이어 하셨지만 마치 내가 오영수 작가에 대해 인터뷰하러 이곳에 온 느낌이었다. 후한 대접을 받으면서 말이다. 


서울 가면 작가 작품을 찾아 읽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세 권의 책이 놓였다. 500권 한정 분량의 『갯마을』과 포켓본 『요람기』, 『어린 상록수』. 또 선물이다. 문학관 발견과 방문도, 관장님과의 대화도 선물이었는데 작가의 책 선물까지 받다니. 


단편모음집 『갯마을』은 어디서 보지 못한 기발한 발상으로 편집돼 있었다. 책의 앞부분은 현대식 가로쓰기 형태여서 그대로 읽어나가면 되고, 본문 종이가 붉은색인 책 뒷부분은 초판 당시의 세로쓰기 형태여서 뒤에서부터 읽어나가게끔 했다. 뒤표지엔 초판 당시의 이준 화백의 그림, 앞표지엔 같은 작가의 다른 그림을 넣었다. 마치 현대본(本)과 과거본이 연리지(사랑 나무) 가지처럼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한가한 일요일 점심때에 방문한 것이 기막힌 행운이었다. 그렇게 나는 많은 선물을 받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관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오영수 작가 전신 흉상도 보았다. 


마음이 급했다. 관장님이 하신 말을 하나라도 더 메모해야 했기에. 앉을 곳을 찾는데, 근처 ‘언양지석묘’ 옆에 벤치가 있었다. 그 벤치에 앉아 메모를 했다. 길을 가다가도 생각이 나면 메모를 했다. 그 메모는 이 글의 알토란 같은 씨앗이 되었다.      


*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급한 일을 끝내고 이번 여행의 느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선물 받은 세 권의 책을 차례차례 읽어가면서. 그리고 피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문학관에서 접한 전시 글들과, 관장님이 설명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욕심 많고 비겁하고 비굴한 서민도 작가의 작품에선 그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임을. 연 날리는 들판, 게 잡이 그물 쳐놓은 개울,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하늘 그러니까 자연이 작가 자신 삶의 요람이었음을. 별을 보며 두고 온 누나를 그리워하고, 등에 업혀 주며 자신을 제일로 좋아해준 식모 누나를 회상하고, 병에 걸려 죽어가는 동갑내기 소녀와 사귀던 동심의 소년을.


생전에 서울서 오영수 작가는 넓은 집 마당에 정원을 가꾸며 살았단다. 사후에도 작가는 울주군 언양읍에 오영수문학관이라는 정원 딸린 ‘집’에서 나 같은 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걸어서 서원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