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두 번째 직장이자 첫 번째 영화사였던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수입, 배급한 영화 중에 <디 아더스 The Others(2001)>가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개봉하고, 200만 명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한 '큰 영화'였다. 꽤 큰 규모의 비용이 집행되는 중에는 감독 내한 행사를 비롯, 인쇄와 방송 매체 광고 등도 있었고,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시사 이벤트도 있었다.
하지만 <디 아더스> 전후로는 그 정도 규모로 배급한 영화는 없었다. 그나마 외화 마케팅이라는 생소한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던 <어둠 속의 댄서 Dancer in the Dark(2000)>가 그에 준하는 정도의 규모로 개봉하긴 했었지만, 그 외에는 이른바 '예술 영화'로 분류되면서 큰 규모로 개봉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영화들이었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작가의 피땀눈물이 뒤엉켜 완성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수십 수백 명의 스태프와 배우, 제작자 등 집단지성이 합쳐지고, 그 노력에는 아무도 비난의 쓴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분분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혹평을 쏟아낼 수도 있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저마다 각자의 감상을 주위에 퍼뜨릴 수도 있다.
그나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여우주연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이력이 있었기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 Breaking the Waves(1996)><킹덤 The Kingdom(1994/1997)> 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보다는 씨네필들에게 새로운 스타로 각광받았던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와 역시 대중적이지 않은 아티스트 비요크 Björk 주연의 뮤지컬 영화가 전국 관객수 20만 명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할 정도로 선방할 수 있었고, 결국 이제까지 라스 폰 트리에 연출작 중 국내 최고 흥행 성적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버드맨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2014)>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오리지널 각본상을 받았고,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2015)>로 아카데미 감독상 2년 연속 수상자가 된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Alejandro G. Iñárritu의 장편 연출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 Amores Perros(2000)>는 놀랍게도 전국에서 단 한 곳, 종로 2가에 있었던 코아아트홀에서만 개봉했다.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73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그해 수상작인 <와호장룡(臥虎藏龍)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2000)>이나 함께 후보에 올랐던 <타인의 취향 Le goût des autres(2000)>은 알아도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국내에서 거의 개봉한 적이 없는 멕시코 영화이고, 이냐리투의 인지도는 당시 거의 제로에 수렴했으니, 이 영화를 걸겠다고 나선 극장이 거의 없었던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었다.
프랑스 영화 <쁘띠 마르땅 Le Monde de Marty(2000)>의 경우는 <아모레스 페로스(2000)>보다 더 심각했다. 주연 미셸 세로 Michel Serrault(1928~2007)는 당시 연기 경력이 50년 가까운, 프랑스 대표 배우 중 하나였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전무하다시피 했고, 타이틀롤 마티를 연기한 조나단 드뮈르게 Jonathan Demurger는 당시 12세 어린이 배우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으니, 프랑스에서나 한국에서나 초면이었고, 각본과 연출을 맡은 드니 바르도 Denis Bardiau도 이 영화가 첫 장편 연출작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어린이와 노년의 할아버지가 티격태격하다 함께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는 내용인데,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무난했다. 소름 끼치게 재미있다고 말하기엔 주저하게 되지만, 훈훈하고 흐뭇하고 무난하게 전개되고, 두 배우의 연기합도 나쁘지 않다. 다만,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까지 관객을 끌어당기기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영화의 원제인 "Le Monde de Marty"는 직역하면 '마티의 세계/세상' 정도가 될 텐데, 개봉 제목으로 쓰기에는 아무 특징도 개성도 없었고, '마티 Marty'는 굳이 프랑스 원어대로 표기하면 '막띠' 정도가 될 테니 아무튼 이래저래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제목으로는 낙제점이었다.
당시 나의 팀장이었던 A와 동료 C와 함께 거의 하루종일 회의를 하며 이 영화의 제목을 궁리해 냈다. 최소한의 예산만으로 개봉해야 했기에 홍보 마케팅 대행사도 쓸 수 없어, 모든 건 회사 내에서 해결해야 했으니, 제목 짓기도 모두 우리의 몫이었음은 당연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던 중, 프랑스어로 원활한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4년 간 들은 풍월이 있었던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역발상이 떠올랐다. 주인공 어린이 이름인 '마티 Marty'의 정식 표기는 '마틴 Martin'이고 이를 원어로 표기하자면 '마르땅' 정도가 될 것이고, 어린이니까 작고 귀엽다는 의미로,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불어 단어 중 하나인 '쁘띠'를 붙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대표의 최종 컨펌을 거쳐, <쁘띠 마르땅>이라는 다소 요상한 제목을 갖게 된 이 영화도 전국에서 단 한 곳, 코아아트홀에서만 개봉했다. 신인 시절 설경구 배우 주연작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The Bird Stops in the Air(1999)> 또한 단관 개봉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광화문에 있는 아트큐브(현재 시네큐브 2관)에서만 관객을 만났다.
<더 레슬러 The Wrestler(2008)><블랙 스완 Black Swan(2010)><더 웨일 The Whale(2022)> 등으로 이제는 할리우드에 완전히 안착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Darren Aronofsky의 두 번째 연출작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2000)>이나 야구치 시노부(矢口 史靖) Shinobu Yaguchi 감독,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聡) Satoshi Tsumabuki 주연의 청춘 영화 <워터보이즈(ウォーターボーイズ) Waterboys(2001)> 등은 단관 개봉까지는 아니지만 크지 않은 규모로 어렵게 개봉한 영화들이다.
<워터보이즈(2001)>의 경우는 내가 '영화사 조대리'가 된 지 2년 1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한국을 찾아 한강 수영장에서 야외 시사를 가지는 등 나름대로 감독 내한 이벤트를 했고, 극장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배급 시사에서의 반응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다.
당시 배급을 맡기로 한 모 회사에서 원래 개봉예정일이었던 2002년 7월 15일에서 8월 1일로, 다시 8월 15일로(굳이 광복절에 일본 영화를!) 무작정 일정을 변경했고, 7월 15일 개봉에 맞춰 집행한 광고는 이미 기간이 끝나 더 이상 광고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극장들로부터도 조금씩 외면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원래 예정에 맞춰 제작해 둔 35mm 프린트 대다수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정도로, 최종 개봉관 숫자는 처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래, 시장 상황에 따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었겠지. 문제는 모 회사의 담당자와 내가 다니던 회사 대표가 만나는 자리에 함께 갔던 날이었다. 그이는 자신보다 연배가 어리지만, 그래도 남의 회사에서 버젓이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반말을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대충 얼버무리듯 '미팅'이 끝나고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떠난 자리의 바닥을 보니, 초면이었던 내가 건넨 내 명함이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 이런 썩을!
불과 2년 반 전, 최소한의 지원 자격인 '영화 관련 경력 1년 이상'의 두 배만큼이 쌓인 상황이 물론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내 명함을 보면서, 영화사 조대리로 즐겁고 신나는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한 업계에서의 내 위상도 저 정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아직 서른이 되기 전, 관련 경력 2년 1개월을 채운 영화사 조대리는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