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퇴사록

퇴사 180일, 다시 얻은 세가지

퇴사 후 잃는것은 돈 밖에 없었다. 허나 얻는 것은 적지 않았다.

by 우노

퇴사 후 180여일이 지났다. 70여일간 아내, 여섯살 아들과의 유럽여행 그리고 110여일간의 쉼, 잃는 것은 돈 밖에 없었고 얻는 것은 적지 않았다. 그 중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가지가 있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2015


다시 아들을 얻었다.


2011년 6월 7일 아들이 태어났다. 회사는 태어난 아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내가 질투가 났는지 장기출장과 야근으로 그 시샘을 표현했다. 출장지에서 아들의 얼굴을 스카이프로 봐야했고 목소리를 전화로 들어야하는 시간이 너무나 많았다. 출장이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오면 깨어있는 서로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정도로 야근이 잦았다.


퇴사 후 180여일이 지났다.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의 70여일동안 난 아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매일 저녁이면 아들과 함께 목욕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며 아침이면 아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아들! 아빠가 만든 샌드위치 어땠어!"

"아들! 오늘은 어디갈까!"


오늘은 어디를 갈까 아들과 수다를 떨며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들은 매일같이 아빠의 샌드위치에 자그마한 엄지를 '척!"하고 들어줬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의 110여일, 여전히 난 아들과 함께 목욕하고 잠자리에 들며 밥을 먹는다. 난 종종 '아들이 엄마없이 아빠와 함께 잠드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퇴사 후 100일이 되었을때, 아들은 엄마없이 아빠와 함께 잘 수 있다는 기적같은 소리를 하며 내 옆에 살포시 누웠다. 이 날 이후, 아들은 매일같이 엄마없이 아빠와 함께 잠이 드는 아이가 되었다. 어젯밤에는 잠들기 직전 비몽사몽간에 옆에 누워있던 내 목을 숨이 막힐정도로 꼭 끌어안아 주는데 뜨거움으로 복받치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암막커튼의 도움으로 더욱 깜깜한 그 정적속에서 난 행복했다.


이 정도면 퇴사결정과 180여일의 쉼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난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2015


다시 아내를 얻었다.


퇴사 이전에도 아내는 내게 멘토같은 존재였다.

회사에서 힘들때면,


"때려치라! 내가 돈 벌께!"


라며 부담을 덜어주었고 회사가 불공정한 처사를 벌이면 같이 씹어주었다. 내 생각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다 싶으면 조용히 바라보다 균형을 나 모르게 맞추어주었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한게 적절한 충고도 해주곤 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장기출장만은 아내를 힘들게 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진리다. 마음에서 멀어지진 않았지만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삐걱거릴께 분명했고 난 그게 두려웠다. 아내는 이대로 가면 안된다고 확신했다.


결국엔 퇴사를 결정하고 쉬는 시간에 돌입했다.

행여나 자신감을 잃을까봐 아내는 매일같이 나를 세뇌시켰다.


"오빠, 쉴 자격있어! 괜찮아!"


내가 얼마전부터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 전까지, 우리집에서 아침에 바삐 출근하는 사람은 유치원가는 아들뿐이었다. 아들이 가고 나면 아내와 나는 오후 2시 30분까지 우리만의 시간을 선물받는다. 같이 조조영화를 보기도 하고 아침 설겆이도 하고 책도 읽고 도서관도 간다. 아내는 책읽는 내 옆에서 좋아하는 홈스타일링을 하고 뜨개질도 한다. 나는 이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얼마전엔 아들이 아빠와 잠이 들기 시작했고 며칠전부터는 방에서 혼자 잠을 자는 수면독립에 성공했다. 강요가 아닌 아들 스스로 말이다. 저녁밥도 아빠가 해줄 수 있고 씻겨줄 수도 있고 잠도 잘수 있으니 아내는 저녁시간에 이처럼 자유를 얻은게 몇년만이냐며 좋아한다.


이 정도면 퇴사결정과 180여일의 쉼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난 아내를 다시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015


다시 나를 얻었다.


퇴사 후 막연한 고민과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엄습해 올줄 알았다. 허나 아내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몰아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집 앞에 위치한 도서관에선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도 책도 나의 상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의 가슴에 작은 울림이 왔다. 재취업을 한다고 사업을 한다고 불편한 마음이 편해지진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불편할 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는것이었다. '쉼'이 기간이 끝나고 또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직장을 업무를 그리고 사람을 바라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쉼'의 시간들이 내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이 정도면 퇴사결정과 180여일의 쉼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난 나를 다시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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