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퇴사록

삼천원 칼국수 앞에서 망설이다

퇴사 후, 지출변화는 인생의 큰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작일 수 있다

by 우노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곧바로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감라스탄지구 @2015


"내일 점심에 삼천원 칼국수 먹으러 갈까?"

"안됨, 이번 주에 벌써 외식비용 이만원 초과했어. 먹고싶으면 다음 주 월요일에 가자.

이번에 응모한 손잡이 닷컴 리폼 콘테스트 1등하면 상금으로 치킨도 시켜먹자"


퇴사 전, 삼천원에 저렴하게 파는 칼국수는 물론이거니와 예능프로를 보다가 치킨이라도 먹는 장면이 나오면 밥을 먹었슴에도 별 생각없이 시켜먹고는 했다. 길어지는 퇴사 후 쉼의 시간, 통장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아내는 곧바로 긴축재정에 돌입했다. 외식비용은 일주일에 이만원까지만 쓰기로 했다. 너무나도 쉽게 사먹었던 치킨도 얼마전에 아내가 응모했던 리폼콘테스트에서 1등하면 먹겠다고 했었다.


사실 퇴사 전에도 아내는 필요한 곳에만 지출할 뿐 화장품은 물론 가방, 옷, 보석등을 구매하는데에는 거의 지출하지 않았었다. 아껴쓰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월 카드결제액이 적지 않았던 원인은 바로 나 때문이었다. 계획을 하고 구매했던 전자제품이나 물건들은 거의 없을정도로 충동구매를 하곤 했다. 그냥 "괜찮은데? 맘에 드는데?" 이정도 생각만 들면 바로 긁어대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구매한 물건들은 거의 다 한달이상 꾸준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아를란다 국제공항 @2015


긴축재정은 조금 불편할 뿐이다.


'삼천원 칼국수도 맘대로 못사먹는다니!'


약간 신파로 가는 느낌인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예전처럼 어디에 어떤 이유로 돈을 사용했는지 거의 모른던 지출구조에서 삼천원짜리 칼국수 먹은것까지 기억할 수 있는 긴축재정은 나름 괜찮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예전의 나는 이 정도는 스쳐가듯 썼는데, 이렇게 벌벌떨다니...' 라는 생각보다는 100원 벌며 50원 쓰는것이나 70원 벌며 20원을 써도 같은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벌어 넉넉하게 쓰는 것보다 적게 벌면서 의식적으로 아껴서 써도 좋겠다는 생각말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있겠지만 나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돈을 버는 것과 시간적여유는 반비례한다고 본다. 개인 평가를 잘 받아 급여 및 지위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일하던 분야에서는 야근없이 승승장구하는 이들은 본 적이 없다. 일이 없어도 앉아 있다가 저녁밥 먹고 남모르게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스웨덴 스톡홀름 아를란다 국제공항 @2015


퇴사를 통해서 만들어낸 지출에 대한 변화는 인생의 큰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작일 수도 있다.


물론 어색하긴 하다. 카드회사 VIP가 될 정도로 긁어대다가(물론 장기해외출장에서 고액의 숙박비용을 결제하며 도움을 받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몇천원 짜리도 고민하고 긁게되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돈 하나만 보면 슬프지만 현자가 말하길 인생은 돈만 갖고 행복한 삶을 누리진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난 이 지출에 대한 작은 변화부터가 우리 부부가 원하는 인생의 큰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작일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이 우위에 선 것은 모두 아내덕분이다. 긍정의 화신인 아내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한번도 비관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다. 퇴사한 그날 부터 지금까지 조용히 옆에서 지켜봐주고 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난 하루하루 퇴사에 대한 후회로 가득한 나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딘가에서 @2015


리폼콘테스트 결과: 아내는 리폼콘테스트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상금 30만원을 받았으며 우리는 그날 저녁 치킨을 시켜먹었다. 그날의 치킨맛은 영원히 내 미각의 기억속에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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