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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Mar 16. 2021

< 길 위의 명상>

20. 죽음 그리고 새로운 인생_오름 용눈이오름&김영갑갤러리두모악



   사랑의 길을 잃는 순간 죽은 것이었으며, 사랑의 길을 다시 찾는 순간 되살아났다. 죽음은 길을 잃은 이에게 더 이상 그 길로 나아가지 말 것을 고통의 모습으로 일러주는 전 방위적 신호였으며,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아 다시 사랑하는 것으로 부활하라는 지상명령이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 사랑으로 부활한 이의 모습은 겸손과 감사로 언제나 평온하고 따뜻했다. 사랑으로 다시 세상을 사는 법을 알기 위해 죽음을 먼저 만나야 했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우리 스스로를 또는 다른 누군가를 알게 모르게 죽이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는 마감하게 될 삶으로 우리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측정해서 한 생을 되돌아보고 기억하게 되겠지만, 우리는 전쟁터가 아닌 일상에서 매일 우리 자신과 또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을지 모른다. 경쟁이란 이름으로, 시기와 질투란 이름으로, 탐욕과 욕망이란 이름으로, 소유와 집착이란 이름으로. 포탄이 쏟아지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라는 인간의 비애가 눈앞에서 사라진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서로를 죽이는 살인과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과 켜켜이 쌓인 상처들이 곪고 터져 초래한 죽음들이 난무하며 옛날보다 더욱 잔혹하고 섬찟하다. 삶의 목적이 살아내는 것, 그 자체임에도 우리는 가장 반(反) 삶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뜻도 이유도 의미도 없이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들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너무 늦기 전에 서로를 용서하고, 너무 늦기 전에 문명으로 올가미 씌워진 경쟁과 시기와 질투와 탐욕과 욕망과 소유와 집착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너무 늦기 전에 나의 마음을 보듬고 그의 손을 맞잡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다시 살아야 하는 때에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거꾸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의 종말, 생명의 끝, 존재의 사멸로 얼핏 이해되는 죽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하고서는 사는 보람은커녕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나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라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없다. 죽음은, 인간에게 생명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그의 의식성장을 위해 경험하기로 한 작은 여정의 일단락 과정이다. 생명은 세상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유한함을 전제로 하고, 영혼 또는 의식이라고 하는 무한의 세계에서 유한을 전제로 주어지는 인간의 생명의 시간, 즉 인생을 일단락 짓는 기간의 마무리가 육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곧 죽음이다. 죽음이 일어난 것으로 삶의 시간 동안 축적된 경험의 결과로 본래의 의식의 성숙 정도가 밝혀지고, 그 삶을 어떻게 살아낸 것인지에 따라 의식 내지 영혼은 그 생의 경험 이전의 것과 다르게 된다. 그러므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삶의 기간 동안 비약적인 존재의 진화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다.         

 

  ‘내 인생의 존재 이유와 방향 찾기’에 막상 죽음이 나의 것으로 임박한 일이 생겼다. 그러니까 3년 전 2018년 6월 초 6박 8일간의 러시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들어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모스크바에서 3시간을 남쪽으로 차로 달려 야스나야 폴라냐에서 만난 톨스토이 저택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바로 옆 500m 정도 떨어진 숲길에 놓인 그의 무덤을 보고 성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러시아 대문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의 무덤은 겨우 몇 평 정도의 땅 위에 그 흔한 비석이나 돌담 하나 세우지 않고 숲 속의 나무들로 담을 두르고 풀들로 비석을 삼아 자연으로 되돌아간 어느 영혼의 소박한 귀향을 상징이라도 하는 듯 한없이 겸손하고 또 겸손했기 때문이다. 그런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미루고 있던 그해 정기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담당의사가 옆구리 쪽을 초음파로 살펴보더니 예상한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검사를 그치지 않았다. 이상했고 또 불길했다. 간에 모양이 안 좋은 게 보이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으니 서울 큰 병원으로 가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철렁했다. 모양이 안 좋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당황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혹시 암일 수도 있다는 것인지 물었다. 의사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에 순간 앞이 캄캄했다. 불과 그해로부터 3년 전 이 병원에서 의사가 돌아가신 아버님의 폐암을 처음 발견하지 않았던가. 무슨 얄궂은 운명인 게 아버지가 이곳에서 폐암 소견을 듣고 돌아가신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그 아들인 나도 똑같은 의사로부터 이상소견을 받고야 만 것이다. 죽음이 주위를 맴돌다 이제 드디어 나에게도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서둘러 서울로 올라가 간암 전문의를 수소문해 최대한 빠르게 예약을 잡고 이런저런 정밀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약 2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만 듣고 병원 문을 나섰다. 그 기다림의 2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다른 일 같으면 불과 지난주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 그때의 2주일은 벌써 몇 년이 지났음에도 기억이 선명하다. 암 진단을 받게 되고, 이후 이런저런 방도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여의치 않아 끝내 죽을 수도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온다면 난 그때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수백 번의 상상시뮬레이션이 계속되던 날들이었다. 큰아이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하게 되었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다시 아버님의 죽음으로 누구에게나 어김없는 죽음의 실체를 직접 목도하게 되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죽음이란 것에 많이 준비되고 단련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바로 나의 죽음이 코앞에 와 있다고 느꼈다.

  그때, 그동안 어떤 생각과 시선과 느낌의 모습으로만 나의 영혼을 노크하던 내안의 목소리가 기다림의 2주간의 어느 날 문득 선명한 그림 한 장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종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내안의 목소리를 만난 것이었으므로 조금 의아했지만 이내 알 수 있었다. 모습은 달랐지만 느낌으로 바로 내안의 목소리가 보내준 것이란 걸 알았다.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 앞 평사리 너른 들판 위에 가면 ‘부부송’이라고 불리는 소나무 두 그루가 논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데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느닷없이 저 멀리 내 앞으로 큰 나무 세 그루가 서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주위의 배경은 없고 광활한 어느 공간 한 가운데 오로지 아름드리나무 세 그루가 보였는데, 그 한 그루마다 의미하는 게 있어 보였다. 뭘까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품자마자 바로 그림이 답하듯이 한 그루 한 그루의 의미가 즉각적으로 알아졌다. 첫 번째는 나의 본래 모습을 찾고 완성된 모습으로 이끌어가는 ‘부단한 노력’이란 나무 한 그루, 두 번째는 지난날의 미안함과 후회 그리고 자괴감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는 ‘스스로의 치유’라는 나무 한 그루, 마지막으로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태어나 해야 할 ‘소명의 실천과 완수’라는 나무 한 그루였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나무들의 씨앗을 그 의미대로 심고 키워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아름드리나무의 모습으로 마침내 성장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즉각 이해가 되었다. 죽음이 어쩌면 내게도 닥쳐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걱정과 온 갖가지의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날 중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사막 위 오아시스의 나무들처럼 싱싱하고 생기 가득한 나무 세 그루를 크게 성장시키는 일, 그것이 죽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뜻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떠오른 나무들이 왜 그렇게 생기 가득한 아름드리나무들일까, 그런 질문을 품자마자 아까처럼 바로 그 의미가 이해되었다. 길이가 얼마나 남았건 인간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의미로 주어진 생의 남은 기간에, 그 세 그루 나무로 대변되는 나의 해야 할 일들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하고 또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그런 모습을 띄었다. 세 그루의 나무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머물며 창조해낸 삶의 이유였다. 그동안 고민해왔던, 태어난 이유와 살아가야 할 방향이 세 그루의 나무들이 의미하는 것에 모두 녹여져 있었고,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던 그 모습으로 그동안 내안의 목소리가 전하려고 했던 의미가 더없이 선명해졌다. 

  시간이 지나 2주 후 병원의 검사 결과는 특별한 예후 없이 흔히 발생하는 간낭종이라고 밝혀졌다. 모양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은 낭종 사이로 혈관이 지나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는 없을 것으로 의사는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막연했던 죽음이 나에게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며 생의 기간 동안 나에게 부여된 삶의 목적과 역할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 나에게 직접 닥쳐온 죽음은 나를 다시 삶의 근원으로 연결시키려는 신호 또는 통로 같은 의미로 이해되었다. 아이와 나의 죽음을 통해 내안의 목소리는 내 삶의 존재 의미와 해야 할 일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큰아이에게 닥친 일로 내가 태어난 이유와 삶의 방향을 밝혀내는 과제를 부여받았다면, 나에게 닥친 죽음이 전하는 메시지는 죽음이라는 시간까지 남은 삶의 기간 동안 내가 실천하며 마무리 지어야 할 인생의 구체적인 소명을 알려주었다. 내가 해야 할 나의 일로, 내 삶의 책임을 완수하는 여정이 거기에 뚜렷하게 담겨 있었다.        


  내안의 목소리가 건네준 질문을 들고 그 해답을 찾아 간절히 헤맬 때 마침내 하지만 아주 우연히 삶의 스승을 만났다. 스승이 나에게 생의 스승인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이유 중에 내가 왜 태어났으며 왜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전 스승이 나에게 알려준 존재의 이유와 방향은 더 이상 내가 헤맬 필요가 없게 된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다. 

  “인간은 사는 동안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영혼의 성장을 목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직 경험하고 그를 통해 성장하고자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이므로,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진화된 성숙한 상태로서의 영혼이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에 반하는 행위는 경험하지 않는 것과 그를 통해 아무런 배움과 성장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장을 위한 경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므로 경험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등으로 불리는 삶의 한 시점에서의 어떤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승리든 패배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모든 상태를, 사는 동안 얻고자 하는 영혼의 진화를 위한 일련의 과정 중의 한 단면으로 바라보는 큰 시선을 얻는 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로 한없이 진화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자세와 방향을 스스로 선택해서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해, 내가 아닌 세상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는 것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보다 진화된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해 지난 모든 삶의 일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과 자세를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나자, 세상의 잣대로 평가되고 단정 지워지는 동안의 내 삶의 모든 궤적들과 그로 인해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새로이 보이기 시작했고 삶 전체에 치유가 일어났다. 지난 삶의 과정을 통해 이유와 배움을 얻었고, 앞으로의 삶을 대할 태도와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뒤덮고 있던 우울증과 허무함과 절망감의 짙은 먹구름이 걷히고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와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을 되찾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경험이 가능한 유한한 시간의 마무리이자, 진화를 목적으로 하는 경험을 회피하지 않는 이상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고통으로 불리는 인생 노정의 일단락이므로,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사는 동안 치열하게 경험하고 그 속에서 영혼의 성장을 구한 모든 이들은 휴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긴 휴식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준비의 시간 전에 인생이라는 생명의 시간 동안 오로지 전념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것은 영혼의 진화를 위한 배움에의 한없는 도전밖에 없는 것이다. 내게 삶과 죽음의 의미가 그때부터 전혀 다른 것으로 그려졌다. 그렇게 스승으로부터의 가르침이 있은 이후부터의 삶은 지난날의 경험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새로운 여행이었으며 또한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경험들을 향해 나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기쁨으로 달라졌다. 그런 과거의 의미와 미래의 선택 사이 현재의 매 순간이라는 수없는 과정을 나의 자유의지로 살아내는 것의 연속이 인생이었다. 과거에의 치유가 일어났고, 미래에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치유의 에너지와 모험의 설렘으로 지금 이 순간들을 살찌우는 나의 의식적인 노력만이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었다. 스승이 건네준 해답과 지금 현재 나사이의 간극을 메워가는 것, 즉 나에게 주어진 나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으로 그 간극 사이를 건너는 다리를 놓아야 하는 ‘나의 일’이 뚜렷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와 바라보게 된 죽음으로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SNS 문자로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의 주보가 들어왔다. 보낸 분은 2013년 내가 우울증과 절망에서 간신히 벗어 나와 처음으로 제주올레 21코스 완주여행을 추진했을 때 참여하면서 알게 된 오랜 고객으로 앞 뒷 첨언이 없어 아마도 연결된 지인들에게 모두 보낸 것 같았다. 그분은 5박 6일 프로그램의 4주간 일정에 연이어 참가하면서 제주올레걷기 여정에서 처음으로 21개 전 코스를 완주한 분이다. 당시 매회 40명에 이르는 분들이 참가했음에도 그분이 사람들 중에 뚜렷이 드러나 보인 건 그분의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다. 마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최 측 사람처럼 간식을 나눠주거나 도시락을 챙기거나 휴식 때 누군가의 발에 난 물집이나 상처로 불편하지 않은지 살피는 일로 우리의 부족한 자리를 말없이 메꾸고 있었다. 그런 그분의 행동은 2013년 3월을 시작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든 여행프로그램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 전 2019년까지 계속된 제주 일정에 틈틈이 참가할 때마다 한결같았다. 정작 본인은 몹시도 지치고 힘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만 챙겨야 하는 상황이어서 굳이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서 제주도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일정 중에는 본인을 위해 쉬는 법이 없었고 항상 주위 사람을 챙기고 어려움이 없는지 보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너무 감사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지금 이 시간에는 오로지 당신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고 누누이 이야기를 했지만 고개를 떨구며 알았다고 하면서도 다시 그랬다. 그런 까닭으로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9년의 세월 속에서도 고객의 입장을 넘어 인생의 멘토로 여기며 만남을 이어가던 분이다. 그런 분으로부터 일요일 아침 교회 주보가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지인이더라도 누군가 앞뒷말 없이 교회 주보를 주일 아침에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것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시해 버렸겠지만 그분이었으므로 문자메시지를 열어 주보를 훑어보았다. 30년 전쯤 갓 회사에 취직해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미지의 세계 곳곳을 누비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있을 때 만난 소울메이트가 매주 일요일 오전 교회 영어예배에 다니는 것을 알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특별한 종교가 없다.) 나도 한번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몇 번 그와 함께 영어예배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때 다니던 교회의 주보였다. 채플시간이 대학 1학년 교양필수로 설정되었던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20대 초반 잠시 종교적인 방황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편력이 주마간산 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통해서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한다고 결론에 이르렀고, 그 이후 종교를 통한 영적인 길에서의 희망을 포기하고 허무주의자처럼 살았다. 그랬던 나에게 소울메이트는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보였고 그로 인해 두 번 다시 찾으리라 예상치 못한 교회를 오랜만에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잠시 함께 다니던 영어예배를 소울메이트가 해외로 가면서 나도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는데 일요일 아침 그분을 통해서 다시 그 교회가 떠올려졌다. 마침 톨스토이의 <부활>을 꺼내 막 읽기 시작한 날 아침이었다. 오래전 남편의 순국으로 평생의 동반자와 헤어지게 된 이후 하루아침에 뒤 바뀌어 버린 삶을 마주 대하고서 그 암울한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한 그분의 종교적인 삶, 그러니까 어렵고 가난한 사람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며 왜곡되지 않은 본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본인의 삶 또한 바꿔 놓는 것으로 삶의 희망을 지어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나는 ‘죽음’과 또다시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사고와 도덕적 갱생’, 즉 ‘부활(復活)’의 모습을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죽음과 같은 절망에서 벗어 나와 다시 살아내야 하는 삶의 이유와 방향을 발견해내겠다는 희망으로 전환되는 스스로의 작은 부활의 기간을 지나고 있는 내 모습을, 일요일 아침 그분의 문자메시지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통해 물끄러미 다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오래 전의 기억과 감회를 떠올리게 된 나는 반가운 안부 인사를 겸해 답장을 보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냈을 문자메시지에 특별히 나로부터 회신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텐데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러니까 벌써 30년 전쯤에 소울메이트의 소개로 몇 번 주일 영어예배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두고 처음으로 진실한 신앙인을 만났기에 그로 말미암아 그 예배시간은 늘 기다려지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절대종교 안에서 영적인 길을 구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만, 대신 평생을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낮은 곳으로 임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언제든 힘겨운 우리 인간을 반기고 품어주는 대자연에게서 오히려 그 본래의 사랑의 빛을 발견하고 그들에게서 저만의 영적인 길을 발견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교회 주보를 받고서는 기쁜 마음으로 오래전 주일 영어예배를 다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 발견하고자 했던 사랑의 참된 빛을 오래전부터 선생님에게서 보았음을 고백합니다. 늘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격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 나이 55세, 주어진 나의 인생의 어딘가 즈음에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전의 내 모습을 더 이상 견지할 수 없게 하는 순간 그래서 전혀 다른 삶으로 새로 살아가게 되는 계기, 그것이 죽음이 아닐까. 내 기억 속에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이유로 맞이하게 된 태어남과, 또한 나의 의지와 계획과 바람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마주해야 하는 절대적인 명령으로서의 죽음 앞에 나는 지금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일까. 어느 책에서 본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 스승에게서 들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무지(無知)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니 무지의 경계가 얼마나 광활한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렇게 깜깜한 무지의 바다에서 앎의 점들을 하나씩 찍어가며 무지의 검은색에 앎의 흰색 점들을 하나씩 메꿔가는 일, 그게 인생이 아닐까. 끝없이 펼쳐진 무지의 바다를 마주 대하며 절망하는 것이 나에겐 죽음이었고, 앎의 흰 점으로 그 바다에서 한걸음을 옮겨낼 섬 하나를 탐험해내고 발견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다하는 부활이 아닐까. 만약 죽음과 부활이 그런 의미라면, 그런 죽음(들)과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질 부활(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순간에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태어남과 사라짐 사이에, 나 스스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창조의 날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죽음과 부활로 창조해낸 새로운 인생은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신의 분신들인 우리, 작은 신성(神性)들이 저마다의 자유의지로 삶을 살며 사랑하는 일들의 시작이자 중간이자 나중의 총합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     


열아홉 번째 길오름 (용눈이오름&김영갑갤러리두모악)     


  제주에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제주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목숨을 깎아내어 파노라마 사진에 담았던 사진작가 김영갑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 그곳이다. 제주의 사계절과 빛과 구름과 바람을 사진으로 옮기기 위해 그는 자연 속에 오래 있었고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그대로 필름에 담겨 도시생활에 피폐된 사람들의 영혼이 제주의 사진들로 위안과 휴식을 얻게 되는 곳이다. 제주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오름 중에 유독 그가 가장 자주 찾고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 용눈이오름은 그런 이유 때문만이라도 제주의 으뜸 오름 중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아쉽게도 용눈이오름은 2021년 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2년간 휴식년에 들어가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들어 찾는 이가 너무 많아 점점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2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도록 보전하는 일은 시의적절하고 또 꼭 필요한 처사이기도 하다.         

  당분간 용눈이오름을 직접 걷지는 못하더라도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 들러 그의 사진작품들을 보고, 또 가능하다면 그의 에세이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구입해서 꼭 한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 그가 인내하였을 시간의 길과, 그가 삶을 살고 자신의 일을 찾고 만들어내며 자신의 작품사진들로 남겨 놓은 그의 인생 전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서사시로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그는 일부러 그 고생스러운 길을 악착같이 붙들었고 그의 집념으로 우리가 그토록 제주를 찾고 있는 제주의 자연과 그 안의 생명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으로, 자신의 삶은 죽음의 시간으로 넘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여전히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머무르며 담고자 했던 제주의 공간과 시간에서 함께 하며, 그가 삶을 살고 죽음을 맞이하고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도 놓지 않았던 치열한 삶의 자세를 그의 숨결을 느끼듯 만날 수 있게 된다. 마치 김영갑 작가가 안내하는 제주의 치유여행에 있는듯하다. 힘겨운 삶 속에서 자신의 길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붙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날 불현듯 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어떤 자세로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 마치 영혼의 구도자의 모습으로 김영갑 사진작가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열아홉 번째  제주의 길은 그런 김영갑 작가의 생을 반추해보며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용눈이오름을 선택했다. 이미 가본 이들을 위한 추억의 나눔과 앞으로 찾게 될 이들을 위해 소개하고 또 추천하고 싶은  제주 오름 두 번째 장소이다. 용눈이오름은 따라비오름과 같이 몇 개의 분화구가 연이어진 곳이다. 내비게이션에 용눈이오름 주자창을 찍고 도착해서 차를 대놓고 길게 늘여 놓은 길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면 분화구 능선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분화구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걷다 보면 오름 분화구의 가장 높은 곳에 얼마지 않아 당도하게 된다. 이곳 용눈이오름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바로 인근에 있는 제주 오름 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다랑쉬오름과 함께 그림 같은 동쪽 제주의 풍광이 펼쳐진다. 바람이 부는 날엔 정상에 서서 바람을 마주하고 두 팔 벌려 마치 스스로 연을 띄우듯 바람에 몸을 맡겨 바람의 천국 제주도를 직접 온몸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년 후 통제기간이 끝나면, 한 시간 남짓 용눈이오름 길을 걸으며 이곳을 김영갑 작가는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그의 시선과 그가 담고자 했던 빛과 구름과 바람을 조용히 떠올리며 느릿느릿 걷고 머물고 또 사색에 잠겨볼 것을 추천한다. 제주도로 내려와 사는 동안 눈물 나게 힘겨울 때마다 나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과 용눈이오름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삶을 떠올리며 나의 고단함은 그에 비할 때 너무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서 아직도 응석받이의 그것밖에 되지 않음을 기억해냄으로써 무한한 위로를 받으며 치유의 장소가 되어 주었다. 김영갑 작가의 삶은 제주도의 자연으로 녹아들어 가는 과정이었으며, 그의 죽음으로 그는 완전히 제주도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물과 숲의 일원이 되어 그곳으로 들어가 마침내 하나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 찾아가는길    

 

용눈이오름은 제주국제공항에서 관광지순환버스 810-1을 타면 갈 수 있다. 자가차량은 ‘용눈이오름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가면 된다. 2년간 휴식년제에 들어간 용눈이오름 대신 당분간 바로 인근의 다랑쉬오름을 가 봐도 좋겠다. 다랑쉬오름은 이번 여정에서는 제외되었지만, 제주도 368개 오름중에 가장 자체 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여느 오름과는 또다른 풍광을 선물하는 곳이니만큼 오르막길을 30~40분 계속 가야하는 체력부담에도 불구하고 쉬엄쉬엄 급하지 않게 도전해 보자. 빛의 방향에 따라 한라산방향으로 보이는 오름의 바다 풍광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동쪽의 오름은 오전시간이나 아예 해질 무렵이 탐방시간으로 제격이다. 그리고 늦가을 다랑쉬오름을 찾게 된다면 바로 앞에 있는 아끈다랑쉬오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끈다랑쉬오름은 산굼부리, 새별오름, 따라비오름등과 함께 가을 은빛억새의 장관으로 유명한 오름 중에 한 곳이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은 용눈이오름에서 차량으로 불과 20분정도 거리에 있고, 차량이 없으면 서귀포 버스터미널에서 성산항을 오가는 295번 버스를 타면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갤러리는 매주 수요일엔 휴무이므로 헛걸음 하지 않게 요일을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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