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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Mar 25. 2021

< 길 위의 명상>

22. 다시 처음으로_한라산 백록담



  1년 전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 것이며 그리고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과연 코로나바이러스가 없던 때로 돌아가기는 할 수 있을까, 그런 헛된 걱정들 속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급하게 개발된 백신이 투여되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코로나바이러스는 여전히 꺾일 줄 모르고 위세 등등하게 새롭게 확대되는 모습을 띄고 있다. 팬데믹이 한 해를 완전히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톨스토이는 나이 50세에 고백록이자 참회록을 남겼고, 나이 83세에 시골 역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50세 이전엔 대문호로서의 작가의 삶을 50세 이후엔 인류의 교사로 변신하며 또 다른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도 지난 10여년동안 걸었던 제주의 스물 한 곳의 길들을 다시 걸으며 삶을 되돌아보고 그 길 위에서 나의 지난날들에 대한 시선을 글쓰기로 정리하고자 했다. 나의 삶이 왜 그렇게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버렸는지, 왜 나는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이 살도록 방치해 두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나의 삶의 주인이 되려고 노력했는지, 그 과정들의 생각과 감정의 부침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고 싶었다. 나의 모습을 더 이상은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며 밖으로 한걸음 물러나와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기록으로 바꾸는 글쓰기가 이어지는 혼자만의 여정 중간 즈음에서 지난날의 삶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은 바람이 일어났다. 55세의 시점에서의 기록은, 내안의 목소리와의 조우에 이르는 나 스스로의 작은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지금까지의 고군분투기가 되었다. 누군가의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단지 나의 궤적의 형태와, 현재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왜 한편으론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재발견의 여정이자 나를 위한 위로의 글쓰기였다. 다시 길을 걷고, 글로 정리하는 동안 내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자, 다행히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1년 전  첫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2021년 3월 23일. 이제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제주의 길, 한 곳을 향해 새벽 4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은 맑고 비도 바람도 없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해 두었고, 누군가를 위한 동행이 아닌 나 혼자만의 걸음이라 단출하게 가방 하나에 도시락과 물만 챙겼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 제주 오름의 으뜸 봉우리, 한라산 백록담으로 향했다. 산록도로 위로 차가 접어들자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랐고 검은 자리에 숨어있던 백록담의 서북사면이 선명하게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마주하며 내안에 목소리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내내 궁금했던 물음이 하나 있었다.     


“2003년 5월 23일 그날, 큰아이가 아파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왜 큰아이를 살리기 위해 나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때 그렇게 떠오른 생각이 바로 당신이 내게 전한 목소리가 맞는지요?”

“네, 그렇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당신이 알아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아파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아이를 살리는 길이 아빠인 내가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이었는지요. 아직도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큰아이가 아프게 된 것은 바로 당신이 당신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살리는 길은 아이 곁에서 병간호를 하고 또 작지 않은 병원비를 벌기 위해 더욱 열심히 돈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길을 잃었고, 당신은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부초처럼 헤매던 때였습니다. 당신은 당신 밖의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을 갈구했으나 아무도 당신이 추구하던 사랑을 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세상의 흐름에 맞춰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성공하고 돈 많이 버는 것으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지구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으로 외로움을 잊고 성공과 부를 이루는 것으로 행복을 좇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기적인 사랑과 탐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진 자유인의 길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이었음에도, 그런 오랜 계획과 다짐을 모두 잊고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잃어버린 채 휩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강한 충격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은 아주 직접적이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막연하게 살고 있던 날 중에 느닷없이 전혀 다른 생각이 들어야 할 만큼 고통스러워야 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충격도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헤매던 그 와중에도 당신의 삶과 의미를 떠올릴 수 있는 대상으로, 당신의 사랑이 소유와 집착으로 변질되지 않은 채 연결되어 있던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던 사람인 큰아이를 통해 당신을 일깨우고자 한 것입니다. 큰아이의 임박한 죽음 정도여야 당신이 포기하듯 살고 있던 당신의 삶에 대해 ‘이게 뭐지?!’ 하고 심각한 재고와 의문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거의 최후의 카드를 사용한 것입니다. 다행히도 거의 벼랑 끄트머리에서 당신은 내가 보내는 목소리를 알아들어 주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나를 위해 아이가 아파야 했던 것이 무척 가슴 아픕니다.”

“큰아이는 당신의 오랜 친구이자 벗이기도 했던 영혼입니다. 행여 당신이 세상에서 길을 잃었을 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신에게 도움을 주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기꺼이 당신을 위해 모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정말입니까. 아니 그런 것까지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삶을 통해 자칫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계획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큰아이가 아픈 것이 큰아이의 일방적인 희생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일깨우기 위해 직접 당신이나 또는 당신의 다른 가족이 고통을 겪지 않고 큰아이가 아픈 방법을 선택한 것은 당신 때문만이 아니라, 큰아이의 엄마와 작은아이, 그리고 큰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나름대로의 충격요법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신이 그 계기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크게 다른 삶의 행보를 해야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큰아이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비록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같이 스스로의 성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큰아이를 중심으로 가족 전체가 그 일을 계기로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하면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되겠습니다.”

“그랬군요. 이제야 오랜 의문과 궁금증이 해결된듯합니다.”

“당신이 걷고 소개해야 할 한라산 백록담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우리들의 다시 만나고 연결되었던 그 시작점을 이야기하게 되니 뭔가 환상의 고리 위에서 한 바퀴 크게 돌아온 느낌입니다. 잘 마무리하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 시작과 연결되고 있음을 나도 느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스물한 번째길한라산 (백록담)     


  모슬포, 제주도 서남쪽에서 북동으로 다시 동으로 가는 길 위에서 내안의 목소리와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해는 이미 환하게 밝아왔고 눈이 다 녹고 없어진 산길을 따라 성판악에서 한걸음 한걸음 쉼 없이 발을 내디뎠다. 속밭대피소를 지나고 진달래밭대피소를 또 지나고 하염없이 능선을 따라 백록담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거의 다 왔구나 하고 알았다. 2011년 5월, 제주올레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성산일출봉에서 산방산까지 동서횡단을 하던 중에 들렀던 때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찾은 백록담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해발 1947m, 대한민국 가장 높은 곳, 백록담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제주의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들을 걸은 이후부터 오로지 정상 등정이 목표인 등산은 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백록담을 다시 찾은 이유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한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반대편 서쪽 윗세오름은 여러 차례 다녔으므로 백록담 서쪽 봉우리 능선이 가려져 있었지만 투명하게 비추이듯 윗세오름 쪽으로 열린 서쪽 풍광도 내 마음속에서 환하게 그려졌다. 북쪽으로 제주시가 남쪽으로 서귀포시가 동쪽으로 성산일출봉까지 모두 열려있었다. 그 사이들에 2009년부터 지금까지 걷고 또 걸었던 제주도의 길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그 길을 걸으며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다시 껍질 밖으로 태어난 성충으로 모습을 달리하며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찾아간 나의 모습이 영사기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날들의 고통스러웠지만 반드시 겪으며 지냈어야 할, 저 아래 세상 한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부서지고 깎여지면서 스스로의 모나고 패인 부분들을 다듬기 위한 진화의 시간을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한라산 백록담엔 오랜 전설이 내려온다. 제주도를 만든 사랑과 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커다란 앞치마에 흙을 가득 담아와 제주도의 땅을 다지며 한가운데로 북돋우다, 꼭대기에 볼록하고 솟아 나온 흙더미를 뚝하고 잘라내서 어깨너머 뒤편으로 던졌는데 그게 제주도 서남쪽 끄트머리에 떨어져 지금의 산방산(山房山)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산방산은 395m밖에 되지 않는데, 그 밑 둘레가 우연하게도 백록담의 지름과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져 지금의 산방산을 떼어다 백록담에 거꾸로 끼워보면 거의 일치한다고 해서 생긴 이야기일 듯하다. 거기에다 한라산 정상과 산방산 암석이 모두 조면암이라고 하니 전설이지만 마냥 무시하고 흘려듣게 되지는 않는다. 얼마나 백록담에서 머물렀을까. 지난 시간을 한참 되돌아보고 있자니, 높은 곳을 오른 이에게는 그 다음 오로지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백록담과 그렇게 설문대할망의 전설로 연결되어 있는 곳, 2009년 도시생활로부터 벗어나 제주도의 삶을 처음 시작했던 곳, 산방산과 바굼지오름(단산)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 한 가운데 가장 낮은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난날동안 한걸음 한걸음이 아니면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길 위에서 깨달았으므로, 요행이나 지름길이나 묘수를 꿈꾸지 않게 되었기에 또박또박 정확히 내가 시행착오로 살아온 시간만큼 다시 되돌리는 시간의 길을 걸어가기로 작정하고 애초에 나선 길이었다. 동시에, 아무리 까마득하게 멀리 느껴지는 곳이라도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곳이라면 어디건 반드시 갈 수 있었고 또 예상대로 그렇게 도착했기에, 한 땀 한 땀의 축적된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는 길이었다. 지금껏 제주도 스물 한 곳의 길을 걸으며 나를 찾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또 다른 길이 선명히 눈앞에 있다. 앞으로의 길 또한 아스라이 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고 어떻게 그곳까지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스스로 갈 수 있음을 또한 안다. 내가 참가자들에게 사전 유의사항으로 안내한 것처럼, 길을 잃기 전 원래 가기로 했던 나만의 길로 방향을 바로 잡고 틀어 첫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처음에 도착해서 그 다음을 향한 걸음이 될 것이다. 내안의 목소리가 그런 나에게 스스로를 믿고 힘차게 내일의 길을 가보라고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언제나처럼 그도 함께 하고 있다고 나지막이 말을 건네면서...   

  

* 찾아가는길     


한라산은 2021년부터 한라산 예약탐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반드시 사전에 가능한 일자에 맞춰 인터넷 예약을 해야 한다. 하산하면 입구 쪽에 한라산 등정 인증서를 발급해 주는 곳이 있으니 한라산 탐방예약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서 정상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1천 원을 결제한 다음 기념으로 챙겨두면 좋겠다. 그리고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을 가는 코스는 성판악과 관음사 두 곳을 통해 진입이 가능한데, 어디에서 시작해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대부분이 성판악으로 들고 관음사로 나온다. 하지만 무릎이 안 좋은 경우에는 역으로 관음사 구간으로 진입해서 조금 힘들더라도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막으로 하고 성판악으로 완만하게 하산하는 것을 추천한다. 성판악구간 9.6km에 관음사구간 8.7km로 총 18.3km의 등반로가 이어져 있고, 소요시간은 개인 체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8~10시간 정도 걸리므로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해야 여유가 있다. 반드시 충분한 물과 간식 그리고 점심식사를 챙겨야 한다. 겨울의 경우, 적설량이 1미터를 상회하므로 아이젠과 스패츠를 챙겨야 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하산길의 무릎 보호를 위해 스틱은 꼭 챙길 것을 추천한다. 끝으로 한라산 예약탐방제를 실시하고 나서는 성판악휴게소 주차장 이외에 516도로의 갓길 주차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자가차량을 이용해 성판악코스를 시작할 경우에는 국제대학교 버스환승센터 주차장이나 마방목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에서 281번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 덧붙임. 

큰아이는 2016년 3월, 첫 발병진단일로부터 13년이 지난 때에 담당 의사로부터 관해(완치)판정과 함께 이제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턴 아이의 건강은 전적으로 아이 스스로의 관리와 책임에 달렸다며 건강을 회복한 걸 축하해 주었다. 이후 큰아이는 어릴 적 자신의 꿈(비행기조종사)을 기억해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스물한 번째  길을 걸으며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기 며칠 전, 멀리 떨어져 지내는 큰아이가 온 가족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면 연락을 했다. 아내와의 깊은 사랑을 통해, 육체적 건강을 넘어 어릴 적 마음의 상처까지 모두 아물어서, 이제는 어떤 편견이나 고통 없이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 세상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했다. 힘겨운 터널을 지나온 아이의 평화롭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우연일까. 내가 나를 만나는 순간, 아이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만나고 있었다. 아이와 내가 동시에 다시 처음 그곳으로, 그래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그 자리로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순수하고 해맑았던 때로, 하지만 오랜 여정을 지나며 얻게 된 맑고 밝고 따뜻한 사랑을 품고서 말이다. 큰아이가 건네준 이야기가 얼마나 좋은 소식인지 온 몸으로 공감이 되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했던가. 서로 긴 말이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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