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침묵

DMZ 평화의길 500km 횡단종주 걷기명상

by 강보식

3. 워밍업


- 어머님, 걷기시작한지 3일째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흐린 것이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내내 비가 올 모양입니다. 어머님 계신 그곳은 비라는 게 없겠지요. 어머님은 평안하신지요.


= 고단한 육신을 벗고, 나는 새로이 이곳에서의 삶을 적응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구나. 너는 너대로 나와 함께 49재라는 인간의 시간동안 길을 걸으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심신을 추스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곳 O계야 지구처럼 그렇게 변화무쌍한 곳은 아니어서 한없이 평화로운 곳이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지구별에서의 일생을 통해 힘겨움 속에서도 본성을 향해 쉼 없이 정진해온 결과 그런 평화로움을 누릴 자격을 갖춘 O인들에게만 허용되는 곳이란다. 아마도 지구별 인류는 이곳 O계의 평화로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지겹고 심심한 곳이라며 딴 데를 또다시 갈구하며 방황할지도 모르겠구나. (농담과 웃음)


- 저는 어제까지 겨우 이틀 동안 고성군 DMZ 평화쉼터에 짐을 부려 놓고 맨 몸으로 아름다운 나라의 땅을 모처럼 내디디며 걷고 있는데, 그간 제대로 몸을 부리지 않아서인지 무릎도 발목도 여의치가 않아 앞으로 남은 한 달여 남짓의 여정이 다소 걱정이 됩니다. 물론 대략의 일정은 세워 놓았지만 어디에 얽매여 무리하게 일정을 언제까지 완료한다는 생각대신, 매일의 길 위 상황과 제 몸의 컨디션에 맞게 적응해가리라 여기고 있습니다만, 오늘부터는 동해바닷가 마을을 떠나 본격적으로 태백산맥 산악지대를 넘어 강원도 서쪽 땅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 녹녹치 않은 코스를 앞두고 있어 몸이 감당을 해낼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입니다.


= 지금의 여정은 나의 죽음으로부터 49일동안 ‘49재’라는 명분을 빌어 와, 오로지 나와 너 둘 다 지난 삶을 추스르고 새로운 여정을 앞둔 휴식의 시간이자 준비의 기간으로 주어진 만큼 무엇보다 매순간의 발바닥과 땅위의 만남에만 집중하며 너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만 마음을 쏟거라. 계획은 있을 것이나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날은 거기까지만 걷고 발걸음이 멈추는 지점에서 들고 간 텐트를 안전한 곳에 펼치고 그냥 쉬거라. 그렇게 네 몸과 시간과 여건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온전히 내려놓고 맘껏 자유롭거라.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완주가 목적이 아닌 것이다. 완주는 매일의 매순간들이 여건과 부합되어 맞아 떨어진다면 또 주어지는 것이지 그것을 목표로 삼아 너의 심신을 결코 혹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구문명은 늘상 그 목표와 결과만 있고, 그 과정의 중요함을 도대체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임을 알고 있지 않느냐. 네 스스로 지난 세월 나와 함께 매일 매순간을 집중하며 살아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다가오는 일들에 모두 겸허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또한 헤쳐 나가는 과정 과정의 축적임을 잊지 말거라. 그것을 네 스스로 다시한번 체험하고 그 순수한 체험 속에 본성과 하나 되며 또한 본성의 자리에서 단단하게 머무는 법이 있음을 알아 채거라. 잘 알지 않느냐, 이제는 말이다.


- 네 어머님, 잘 알겠습니다. 지구별인생의 지난 고약한 습 때문에 이렇게 문득문득 망각하곤 합니다. 어머님 덕분에 내리기 시작한 아침 빗소리가 평화롭고 정겹습니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리면 얼마나 걷기가 힘들까 그런 생각이 제안에 머물렀었는데 말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첫 3일간의 시간은 너의 워밍업기간으로 삼도록 한 것이니, 고성군 평강쉼터에서 베풀어준 따뜻한 배려에 대한 신세를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도록 하거라. DMZ라는 압축된 분열의 상징인 시공간은 역으로 지구별 현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O계의 본성의 기운과 파장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여기고, 그곳을 통해 강원도 고성군과의 협력관계를 만들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천수체들의 일깨움의 장소로 활용토록 하거라. DMZ, 철의 장막이 비움과 겸손으로 발현된 사랑으로 녹여져 형질전환을 이룰 때 한반도와 지구별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새로운 장에 접어들 것이니라. 매일 매일 DMZ 평화의길을 걷는 것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다시 잇고 봉합하며 그를 통해 지구별 전체에 새로운 차원의 기운과 파장이 전달되고 연결될 것이니라. 이번 너의 DMZ여정은 그런 의미에서 준비된 길이란다. 너 개인으로서는 본성과의 온전한 합일의 길이 될 것이며 한반도와 지구별에게는 분열과 갈등의 쇠사슬을 녹여내고 O계의 황금빛 사랑으로 일대전환하게 되는 OOO프로젝트의 마지막 준비과정이 될 것이란다.


- 네. 그래서 제가 어머님을 잃고 황망하던 중에도 지금 이 길 위로 인도하셨군요. 어머님과 O계의 그 깊은 뜻을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받듭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 그래 아무것도 두려워 말고 모든 것을 맡기고 매일매일 매순간 나아가 보거라.


- 네 어머님. 또 찾아뵙겠습니다.



* D3. 2025년 9월 1일 (월) 흐림, 32코스 건봉사~소똥령마을 (8.8km)

- 전체 일정 : 2025년 8월 29일 ~ 9월 27일 (30일간)

- 진행 방향 : (동쪽끝에서) 34코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 (서쪽끝으로) 1코스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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