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학 Jan 13. 2019

선물을 뭘 해주면 좋을까?

센스 있는 선물 고르기, 난 못하겠다

일 년에 한 번, 누구에게나 특별한 하루가 존재한다. 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100일, 평생을 함께할 것을 약속했던 결혼기념일. 혹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기일. 기준이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세상엔 그 외에 많은 기념일이 있다. 각 나라마다 갖고 있는 민족의 날(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삼일절, 개천절 등)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 특성을 갖는 부활절, 석가탄신일 등이 있다. 심지어 발렌타인 데이(2월14일)와 화이트 데이(3월 14일), 빼빼로 데이(11월 11일)같이 상업적 기념일까지 있다.


기념일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지곤 한다. 설렘이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쫓아다니는 느낌이랄까. 생일만 해도 그렇다. “야, 나이 먹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생일인 친구들이 매년 빠지지 않고 해대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지만 반대로 표정은 상기되고 싱글벙글거리는 모습에 피식하고 웃곤 했다. 그러면서 막상 내 생일이 되면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다.


이런 특별한 날에는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한 선물들이 따라오곤 한다. 부활절엔 계란을 생일에는 생일선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꽃다발을 전달한다. 이게 주는 사람이건 받는 사람이건  선물이라는 매개체로 인해서 기념일에 느끼는 설렘과 행복은 배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선물이 정해져 있으면 편한데 그렇지 않으면 골치가 아프다. 행사적인 날, 예를 들면 발렌타인은 초콜릿, 화이트 데이는 사탕, 빼빼로 데이는 빼빼로라는 전해줄 선물의 종류가 정해져있다. 그렇기에 어떤 것을 선물할지 고민의 폭이 많이 줄어든다. 여기서 어떤 초콜릿을 선물할지 크기나 정성과 같은 세세한 고민만하면 되니까 부담이 덜하다.(물론 이것도 머리아프지만)


일 년에 한번 오는 생일을 기념할 때엔 말도 아니다. 지인의 생일이라고 선물을 사려하는데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필요한 것이 있냐는 물음에 “사실 나 이게 필요해.”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마 대부분은 “무슨 선물이야. 됐어~”라고 거절 아닌 거절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알아서 선물을 골라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나이 대에 맞게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지만(10대, 20대 생일선물 추천 등) 내가 선물한 것이 필요없으면 어쩌나,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선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심지어 다른 누군가와 선물이 겹치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난감한 일이 없을 것이다.


애인과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의 일이다. 거리는 밤에도 전구 장식들로 어둠이 찾아오지 않았고 들려오는 캐럴의 멜로디와 구세군의 종소리로 한껏 마음이 들뜨는 그런 날, 우리는 서로에게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기온은 계속해서 내려가고 추위에 오들오들 손이 떨려오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자며 웃는 애인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뭐든 사다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며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로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소액의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최근 운동으로 인해서 손에 굳은살이 박혔더니 손잡을 때마다 걱정했는지 나에게 운동용 장갑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딱 지금 나에게 필요하면서 부담되지 않는 가격대까지 완벽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당장에 필요한 것이 있냐는 물었지만 “필요한 거 없는데? 아무거나 해줘~”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무거나 하겠는가. 너무 저렴해서 싸 보이는 것도, 너무 비싸서 부담되는 것도 싫었다. 꼭 필요로 하면서 센스가 돋보이는 그런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웬만한 것들은 다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 귀도리를 선물로 정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었지만, 더 이상 고민하며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정도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문한 선물은 이브 날 도착했고 크리스마스 당일 카페에 앉아 선물을 교환했다. 난 당연히 필요했던 장갑이기에 좋았지만 귀도리를 받고 좋아하는 애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다. 더 좋은 것을 선물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 애인은 그런 나를 보고 위로했다. 자신은 정말로 마음에 들고 필요했던 거라며 머리에 두르는데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해운대

현실적으로 보자면 정말 별 볼일 없고 작은 이 물건들이 의미가 담기는 순간 세상에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포츠 장갑에는 굳은살에 걱정하는 애인의 마음이 귀도리에는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그리고 공통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선물을 전해주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을 담아서 준비하고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그 선물의 값어치를 결정한다. 기념일에 기쁨을 배로 늘려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주인공을 향한 진심이다. 선물은 단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줄 뿐이다. 그저 수많이 보내왔던 똑같은 12월 25일이지만 나에겐 선물이라는 그릇에 마음을 담아 함께 나누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난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의 숨길 수 없는 본능, 그것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