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고스럽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배운 것

by 현의
%EC%A3%BC%EA%B0%84%ED%9A%8C%EA%B3%A0_(5).png?type=w966

이번 주말에는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초반부를 보았습니다. 감정이 철저히 통제된 세상에서 감정을 지니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담은 영화였어요.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지는 않아서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별로 없지만 초반부에 등장한 대사 한 줄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은 인간의 감정을 유발하는 불법적인 행동을 저지른 반역가를 심문하던 도중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라는 질문을 듣게 됩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할까요? 이는 기술의 발전이 점점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고 있는 요즘 시대에 한 번쯤 짚어볼 만한 질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보고 들은 수많은 콘텐츠 중, 이번 글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 혹은 기계에 잠식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담긴 것 3가지를 큐레이션 해보았습니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6-22_141100.png?type=w966


Yellow Cherry Jam
Human Made Lo-Fi Yellow Cherry Jam


'중요 알림: 이 공간은 진짜이고,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영상은 한 시간 동안 로파이 비트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고, 강아지와 함께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에 이 영상을 유튜브의 첫 화면에서 보자마자 No AI Lofi라는 문구가 섬네일에 커다랗게 강조된 걸 보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 속 로파이 음악을 AI로 만들지 않았다는 강조해야 할 정도로 AI 로파이 음악이 많아졌다는 게 실감되어서 말이에요.


https://youtu.be/mT4g0paZ5gI

'인간이 직접 만든 음악'이라는 특징이 다른 콘텐츠와의 차별점이 된 세상이 어느샌가 우리의 코앞으로 찾아왔다면, '인간이 만든 음악'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 걸까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저는 인간의 구구절절하고, 비효율적이고, 수고스러운 면이 인공지능과의 차이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계속 품고 있습니다.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파이 비트와 기타 연주만을 들려줍니다. 왜 굳이 이 장소를 영상의 배경으로 선택했는지, 왜 좁은 피크닉 매트 위에 사람 둘과 강아지 한 마리가 함께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저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피크닉 용품, 기타, 강아지, 카메라 등등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은 많았겠지만 자연 속에서 휴식하는 즐거움은 이 모든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견딜 수 있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예요.

악보 읽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음악 한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굳이 기타를 배워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것,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일일지라도 논리가 아닌 감정에 따라 실행하는 것. 생산성의 가치가 극도로 높아진 세상에서는 이런 인간적인 면이 이전보다는 조금 평가절하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성 대신 감정을 따르거나, 얼핏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만한 수고스러운 행동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우리만의 서사를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기승전결이 담긴 이야기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오랫동안 가치와 감동을 전해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냥 배경음악처럼 심심풀이로 재생할 로파이 플리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주말에 친구나 반려동물과 함께 할 행동 하나를 하더라도 그 이유를 한 번쯤 꼬치꼬치 파고드는 사람이 되어봐도 좋을 것 같네요. 우리는 모두 남들과 다름없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타인이나 AI에게 지워지지 않을 우리만의 고유한 점이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가기 위해서요.


물론 언제나 모든 행동의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행동은 사람을 좀 지긋지긋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항상 모든 면에서 부드럽고 매끄럽지만은 않고 어디 한 군데는 이해하기 어려운 흠결이 있는 것까지도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가치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영상을 통해 배운 점]

사람들이 콘텐츠 제작에 AI를 활용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AI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콘텐츠라는 점이 차별화되는 세상이 벌써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은 않고, 그동안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해왔던 창의적인 예술적 활동에만 한정해서 그런 관대한 시선이 주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AI도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줄 새로운 기술인만큼 활용법을 잘 숙지하여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되, 대다수의 인간이 너그럽게 납득할 수 있는 기술의 선은 어디까지인지 탐색하는 노력 또한 동반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배운 점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음악을 만들어보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시킬 방법 한 가지라도 시도해 보기 (AI의 도움과 인간의 수고스러움을 함께 더해서)

: 노래를 듣는 건 아주 옛날부터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전부터 작곡이나 악기를 배워서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았다. 음악을 만드는 건 내 인생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매우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을 만한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조금 덜어내고 그 시간에 작곡을 배워보면 어떨까? AI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얻거나, 기본 지식을 습득한 뒤에는 내가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직접 음악을 만드는 시도를 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창작에 AI를 어디까지 관여시킬 수 있을지 그 경계를 탐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6-22_141647.png?type=w966 victoria frankenstein

(한글 자막은 없지만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자동번역 기능을 활용해 시청할 수 있습니다)

improve your philosophical thinking with a media journal victoria frankenstein


철학적인 사고를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미디어 저널을 소개하는 영상입니다. 21분이라는 상당히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요. 이 영상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유튜버가 수많은 그림을 전부 출력해서 하나씩 오리고 손으로 일일이 배치했다는 점이 충격적일 정도로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잡다한 재료를 하나씩 오려 붙이는 이런 스크랩북 이미지는 저도 매우 좋아하지만, 모든 재료들을 하나씩 오리고 붙이기는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저는 항상 포토샵이나 캔바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했어요. 하지만 편리하고 간편한 기술을 이용하는 대신, 손으로 직접 이미지를 오리고 배치하면 디지털 이미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을 선물해 준다는 걸 영상을 통해 정말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https://youtu.be/ulHxINYnEhc

영상 속에서 소개된 '미디어 저널'도 영상의 구성만큼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이 유튜버는 좋아하는 미디어 (책, 영화, 방송 등)의 어떤 점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사고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철학적 사고를 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요.


그래서 1) 이미 가지고 있는 노트를 2) 스티커를 붙이거나 낙서를 하면서 내 마음에 들게끔 꾸민 뒤 3)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대해 '내가 이걸 왜 좋아하는지/싫어하는지'에 대해 적으라고 조언합니다. (영상의 12분 11초쯤에 이 생각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 목록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4) 이 기록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도 말해요. 다른 사람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저 유명하다는 이유로, 혹은 주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시험 삼아 보거나 경험하는 건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에 기대기 전에 나는 이것을 왜 좋아하고, 이것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다 보면 내 취향이나 관점을 좀 더 뚜렷이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남들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뚜렷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건 대량의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를 헤쳐나가는데 든든한 도움이 되어줄 겁니다. 세상이 끝도 없이 부과하는 과도한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만 선별하는 현명함을 길러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논리적이고 박식한 사람이 정말 많은 세상에서 나라는 작은 개인의 의견은 얼핏 보면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좋다고 느꼈을 뿐인데 그게 왜 좋은지 일일이 작성하는 과정은 번거롭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애초에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완벽해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도 아니며, 그저 시행착오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배우고 개선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완벽하게 정돈된, 완벽히 설득력 있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저 나의 생각을 미디어 저널에 기록하는 훈련은 수고스럽기는 해도 우리를 더욱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난 뒤 저도 어디에든 좋으니 저의 생각을 중언부언 기록해 보고 싶어졌어요.


[영상을 통해 배운 점]

사람이 직접 수고스럽게 손을 대고, 애를 쓰고, 시간을 쏟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정성과 노력이 상대에게 전해진다. 영상 속에 있는 모든 이미지를 일일이 출력해서 자른 유튜버의 노력에 대해 칭찬의 말을 더하는 댓글을 보며 노력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배웠다.

[배운 점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적어보기 (지금 당장,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 어제는 슬립토큰의 3집을 통째로 들었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갖가지 장르를 매우 조화롭게 섞는 슬립토큰의 개성이 3집에서 절정에 달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틀즈가 비틀즈로서 유명해진 이유는 매 앨범마다 실험적인 도전을 해서 언제나 이전 앨범과는 다른 종류의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포함되어 있는데, 슬립토큰이 이런 점을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영국 밴드인 만큼 비틀즈와 닮은 면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슬립토큰은 음악에 익명성을 더했다는 점에서 비틀즈와 구별된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철저하게 숨기고 오직 음악으로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슬립토큰의 예술적 시도는 수많은 정보로 과부하 된 현대인들에게 선물이나 다름없다. 창작자의 자아를 숨김으로써 청자들은 음악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더할 수 있게 되는데,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삶을 대변해 주는 음악을 받는 경험은 매우 귀하기 때문이다.

메탈에 팝이나 알앤비처럼 낯선 장르를 섞을 시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다양한 장르를 조화롭게 섞은 결과물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그동안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있었을까 되짚어보게 된다. 한 가지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선입견을 알아차리도록 생각을 확장해 준다는 점에서 슬립토큰이 좋고 특히 그들의 3집이 정말 좋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점: 평소에 뭘 듣고 뭘 만들면 Vore와 DYWTYLM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만들고, 그걸 또 완벽하게 잘 소화할 수 있나?
georgia-de-lotz--UsJoNxLaNo-unsplash.jpg?type=w966


소셜 미디어는 심란함을 초래하는 원천이다.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세상의 지혜로운 전통과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훈련시킨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라, 물질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뽐내고, 옹졸하게 행동하라, '좋아요'와 팔로워로 계량화되는 영광을 추구하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마음을 빚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세상이 허용하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에게 장난감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배우도록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다.


49411234620.20240728075046.jpg

이번 주에는 독서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불안 세대>를 읽었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어린 세대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상세하게 서술한 책이었는데, 성인인 제게도 경각심을 전해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소셜 미디어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저자의 제안이 등장합니다. 서양이 아닌 한국에서도 과연 현실적으로 실행이 가능한 제안인지 의문이 드는 내용도 몇 가지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행동을 권장해야 할지 서술하는 내용은 눈여겨볼만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놀아야 할지 말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무조건 보호하기보다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줌으로써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 이는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활동에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낭비하는 성인에게도 필요한 조언 같았어요.


저 또한 그동안의 몇몇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크린타임이 가시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는 문장에 자꾸만 눈이 갔습니다. 핸드폰과 함께하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삶이 기계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알고리즘이, 소셜 미디어가, 기계가 우리의 삶을 모조리 통제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저항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성인인 저 또한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에 뛰어들고, 다치고 헤맬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장을 통해 배운 점]

그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해야만 한다'라고 했을 뿐, 스스로에게 장난감을 쥐여주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마음껏 헤맬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조금 헤매도 된다는 걸 일러주는 롤 모델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도 없었고, 이 사회는 그런 삶도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한다는 걸 말하길 꺼리고 있으니까. 이제는 성인이 된지도 한참 지났으니 세상은 조금 덜 헐뜯고, 내가 그런 롤 모델이 되어볼 방법을 찾는 게 낫겠다.

[배운 점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작더라도 시행착오를 겪어보기

: 헤매는 과정을 보여줄 용기를 갖자. 성공이 아니라 과정이 주목받는 경우는 별로 없고, 그래서 과정을 계속 공유하는 게 의미 없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럴 때면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하고 헤매기도 한다는 걸 기억해두자.

https://litt.ly/hyunyi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9화'나만의 기준이 잡힌 삶'을 생각하게 해주는 문장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