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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기준이 잡힌 삶'을 생각하게 해주는 문장 수집

2025. 6. 15. 기록

by 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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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기준이 잡힌 삶'을
생각하게 해주는
문장 수집으로 배운 것



한때 향수를 모으곤 했습니다.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을 붙잡아 직접 만지고, 느끼고, 곁에 둘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적어도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이 어떤 원료를 품고 있는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모든 걸 투명하게 알려준다는 점도 왠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솔한 면을 볼 때면 쉽게 감동받는다는 점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긴 하지만, 이제는 사람은 누구나 몇 가지 단서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면이 있다는 걸 예전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단단함, 솔직함이 언제나 누구에게든 긍정적인 가치로 다가오는 건 아니라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하지만 불확실하고 복잡한 면이 세상 모든 것에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고 해서 늘 불안에 떨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상황이 어렵고 복잡한 건 맞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우리의 힘으로 잘 돌보고, 잘 챙겨주고, 성장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을 테니 말입니다.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지금 푹 빠진 어떤 취미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더 잘 해주고 싶고, 더 좋아해 보고 싶고, 더 애써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불안함 속에서도 세상을 버틸만한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어요. 현재의 불완전함에 시선이 고정되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의 삶을 바라볼 수 있고 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갈 안목을 갖게 되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는 데 도움이 되어주는 건 바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기준'을 돌아보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감을 잡기 수월해지니까요.


지난 한 주 동안 우연히 '나만의 기준이 잡힌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 같은 문장 3가지를 만났습니다. 이 문장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저도 현재나 과거를 곱씹기보다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고, 그러한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어줄 기준을 찾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려 해요.



IMG%EF%BC%BF4730.jpg?type=w966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나는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될 거야.

책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요즘 저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운동하는 데 재미를 붙여가고 있어요. 그래서 밀리의서재에서 운동 관련 책을 둘러보다가 시험 삼아 이 책을 발견하게 되어 조금 읽어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책의 전체 내용을 꼼꼼히 읽기보다는 일단 목차를 살펴본 뒤 흥미로워 보이는 부분만 골라서 읽어보았는데요. 그러던 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될 거야."


이 문장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어요. 잘 생각해 보니 사랑을 능동적으로 '한다'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사랑 '받는' 나, 존경 '받는'나, 인정 '받는' 나와 같은 표현을 훨씬 더 자주 접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에게 어떤 시선으로 보알지 지나치게 신경 쓰고, 어떻게 해야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존경,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에 몰두하다 보면 나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어려워지곤 합니다. 심지어 나의 의견은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말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에게 사랑받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를 꿈꿀 수 있게 이끌어준 이 문장이 유독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나의 목소리는 세상의 요란한 소음 때문에 잠시 지워졌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내 목소리가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나의 욕망을 분명히 들을 수 있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이 나온 김에 저도 이 문장을 읽고 난 뒤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떠올려보았습니다. 일단 요즘의 제가 저를 위해 하고 있는 선택은 다음과 같아요. 아래와 같은 선택 덕분에 요즘은 만족스러운 하루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최근에 좋아하게 된 밴드의 노래를 오랫동안 듣기, 그 노래에 맞춰서 운동하는데 재미 붙이기, 매주 끝도 없이 자라나는 상추를 외면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먹어치우면서 농작물과 나의 건강 모두를 소중히 여기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너무 오래 품지 말고 기록으로 토해내서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주기, 군것질을 하는 것 외에도 건강한 방식으로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 찾아내기.


좋은 시도이지만 아직 시도해 보고 싶은 다른 일이 많습니다. 소인배처럼 도망치지 말고 맞설 줄 아는 나, 홧김에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나, 낯선 일을 앞두고 너무 당황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나, 지지부진한 일에도 쉽게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믿는 나를 꿈꾸고 있어요. 세상이 어떤 시선을 가졌든 상관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나'를 꿈꾸는 건 생각만 해도 신이 나네요.



[문장을 통해 배운 점]

사랑이나 인정을 수동적으로 받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아무리 그런 표현을 익숙하게 접해왔더라도 말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기를 직접 선택하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 그런 애정을 전할 만한 / 받을 만한 자격이 있든 없든 일단 주체성을 가지고 '해보겠다'는 선택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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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말들>



이를테면 내가 이력서에 적지 않는 나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책 <일의 말들>



이력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머리로는 잘 이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란 어렵기만 합니다. 이력에 대한 거절이 그동안 제가 걸어온 삶에 대한 거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제게도 많았습니다.


'내가 이력서에 쓰지 않은 사실들'이라는 시는 제게도 <내 인생을 바꾼 거절>에서 읽은 내용 중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구절을 이번 주에 읽은 책에서도 우연히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맞춰 나의 이력을 조정하다 보면 때로는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인데도 이를 당당하기 내세우기 어려울 때가 찾아오곤 합니다. 속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모습이 완전히 내게서 사라지는 건 아닐 거예요. 이력서에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영원히 숨길 이유도 없고 말이에요. 다른 장소, 다른 상황,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일부를 솔직하게 드러낼 상황은 언제든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끝까지 안고 있다면 말입니다.


제가 이력서에 쓰지 않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 일정을 마친 뒤 한적한 영화관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영화를 보는 순간을 너무 좋아했고, 그렇게 보았던 영화 후기를 블로그에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는 점.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앞둔 전날에는 스몰토크 할 주제를 미리 찾아보고 준비해둔다는 점. 록밴드를 좋아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서 이제는 밴드 음악이 삶의 정말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점. 그래서 인생에 OST가 있다면 어떤 시기를 고르든 배경 음악으로 록이 흐를 거라는 점. 힘든 순간은 대체로 맛있는 커피, 피자, 초콜릿, 신나는 음악으로 넘기고 때때로 응원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친 기운을 금세 회복한다는 점. 기대했던 만큼 대단한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인생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어른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


이력서를 떠나, 나의 기준으로 내게 중요한 사건과 경험을 떠올리다 보면 삶에는 생각보다 두고두고 기억하며 자랑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은 무엇인지, 무엇이 정말로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끼쳤는지 점검해 보고 싶을 때면 종종 '내가 이력서에 적지 않은 나의 이야기'에 무엇을 넣을지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문장을 통해 배운 점]

이력서에 포함할 수 없지만 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어주는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삶의 중요한 요소를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을 다시 점검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SE-11E8F7B8-F532-4F82-AE6F-0B39341E9B20.jpg?type=w966 다이어리에 기록한 내용 중 일부


나는 언젠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매일 이걸 한다.

ChatGPT와 대화 중 출력된 문장



거창한 목표가 없는데도 일단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영어 공부에요. 수익을 올리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고,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재밌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꾸준히 시간을 투자하고 있긴 하지만 큰 목표는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는 않고,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고 설렁설렁하니 실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언젠가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막연한 희망만 품은 채 지지부진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지내도 정말 괜찮은 걸까요? 어떤 점이 나아지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데도? 챗지피티에게 이런 의심에 대해 하소연하듯 적어보았더니 이런 문장을 출력해 주었습니다. 지금의 영어 공부 루틴은 목적형이 아니라 정체성형이라고 말이에요. 이는 '나는 내 가능성을 폐쇄시키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AI의 문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제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을 제시해 줘서 매우 신기했어요.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 언제나 특정한 목적이 필요한 건 아니고, 때로는 그저 '그런 행동을 하는 나'를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도 괜찮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하면 일단 거기서 뚜렷한 성취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자리 잡아서 그런 걸까요? 그동안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는 체중을 감량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했고, 새로운 취미를 고를 때는 장기적으로 그 취미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부터 고려했고, 새로운 악기를 배울 때는 연주하고 싶은 곡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을 꿈꿔왔거든요.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것을 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정체성을 갖는 게 무언가를 실행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을 알게 되어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챗지피티가 출력해 준 예시 중, '나는 언젠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매일 이걸 한다'는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미래에는 또 다른 선택지가 내게 주어질 수 있다는 장기적인 관점을 제시해 주어서요. 지금 나의 행동이 어디를 향해 나아갈지 모를 때, 내 삶의 기준은 성취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요소로도 정해볼 수 있다는 걸 두고두고 기억해두고 싶네요.


[문장을 통해 배운 점]

뚜렷한 목적이 없을 때는 '그 행동을 통해 만들어질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려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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