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4 기록
멋지고 쿨한 사람이 되는 건 오래전부터 남몰래 품어온 제 꿈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멋져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것 자체로 이미 쿨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에요. 제가 동경했던 사람들은 멋져 보이기 위해 일부러 애를 쓰기보다는 이미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고, 자신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자신감 있게 보여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언제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멋지고 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나, '어떤 사람이 멋져 보이는지','어떤 모습이 정말 쿨한 모습인지'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덜어내기 어렵더라고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요즘 들어 제 눈에 정말 멋져 보였던 사람들의 모습을 한데 모아보았어요.
이들의 어떤 점이 멋져 보이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도 이런 모습을 닮을 수 있을지 질문하다 보면 저도 언젠가 스스로를 정말 멋지다고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밴드 슬립토큰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감독이 등장하는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함께 일했던 밴드는 어떠했는지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한 시간이 넘는 긴 분량임에도 흥미롭게 들었어요.
해당 팟캐스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업을 다루는 태도였습니다.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은지, 얼마나 자신의 작업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협업할 줄 아는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었던 내용이 등장했기 때문이에요.
특히 뮤직비디오를 찍기 전에 어떤 스토리를 담을 건지에 대해 상세하고 광범위한 배경 이야기를 적은 메모를 제작자에게 전달했는데 메모가 너무 상세해서 아예 이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는 점, 어떤 장면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 구체적인 서사와 맥락을 충분히 설명한다는 점,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을 사람이고 이를 위해 촬영 현장에 계속 머물며 제작진들과 함께 일한다는 구체적인 설명이 언급된 점이 좋았습니다. 그저 돈을 주고받는 고용 관계가 아니라, 함께 창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협력한 관계처럼 느껴져서 말이에요.
자신만의 확고한 아이디어가 있는 아티스트라면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의견을 조율하기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긴 해요. 그래서인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평과 더불어 함께 일할 수 있어 좋았다는 평을 동시에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말, 어떤 태도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길래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직접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대외적인 이미지만으로 타인을 추측하거나 판단하는 건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팬으로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고집스러워 보일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상세하게 표현할 줄 알고, 원하는 목표가 나올 때까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 창의적인 생각을 품는 것과 그 생각을 완전한 서사를 갖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데 이를 해낸 점이 멋져 보인다.
어떤 말을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계속하고 있다. 이 대화가 어색해지면 안 된다면 생각,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가 해야 하는 말 대신 계획에도 없었던 말을 하고 뒤늦게 후회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내 생각을 명확하게 세우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쩌면 굳이 유창하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주관을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주제에 왜 유독 끌리는지, 나는 이 주제에 무슨 생각이 드는지, 그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내 생각의 원인과 근거를 스스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생각을 확실히 전달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계속 접하기보다는, 하나를 보더라도 그에 따른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좀 더 늘려봐야겠다.
몇 달 전부터 제가 관심 있게 보는 유튜브 콘텐츠 중 하나는 비디오 에세이입니다.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짧은 분량에 다양한 편집 기술을 더한 숏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형태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한 가지 주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들며 아주 최소한의 편집만 곁들인 형식의 영상이에요.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영상을 보고 나면 성취감도 있고, 영상의 주제와 알맞은 책, 기사, 블로그,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뒤에는 그와 관련한 콘텐츠를 추가로 탐색하는 재미도 있어서 요즘은 이런 영상을 자주 찾아보고 있습니다.
요즘은 온라인상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AI의 학습에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그래서 출처를 남기는 인간의 가치가 오히려 더 돋보입니다.
출처를 남긴다는 건 사람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AI의 도움으로 그럴듯한 정답이나 정보를 전달하기 너무 쉬워진 세상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명시한다는 건 사람과의 연결점 속에서 나만의 서사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느껴진다. 이처럼 나의 이야기를 내가 직접 선택해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든다. (이 관점은 이전에 읽었던 오스틴 클레온, 제니 오델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타인의 말이나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내세우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주목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낮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나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AI도 멋지고 그럴듯한 완성형 정보를 잘 말해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는 실제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증거를 꾸준히 보여주고, 타인과 나의 삶 사이에 연결점을 만들고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 오히려 그 희소성 때문에 더 멋져 보일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누가 만든 무엇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출처를 확실히 남기는 작업이 나와 타인 사이의 서사를 만드는 가장 간단한 시작점이지 않을까? 세상은 우월한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소소한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을 때도 마찬가지로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알리는 시작이 되어주기도 할 테고 말이다.
출처가 나의 삶에 타인을 초대하기 위해 보내는 러브 레터와 같다면 나는 나와 같은 성향과 취향을 가진 사람과의 연결점을 앞으로도 더 많이 쌓아가고 싶다. 겉으로는 지독할 정도로 정적이고 심심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열정을 맹렬하게 쏟아부을 돌파구가 언제든 마련된 사람들. 영화, 음악, 그림, 책 등등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깊게 파고들 때면 누구보다 날카로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다니고 인용하며 그들과의 연결고리와 서사를 쌓고 싶다.
100일 동안 매일 복근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로 저의 유튜브 첫 화면에는 언제나 피트니스 운동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때로는 그저 운동 영상만 올라오는 게 아니라 운동 후기, 운동 관련 지식, 건강한 식단 등 건강과 관련한 콘텐츠가 올라오기도 하는데요. 며칠 전에는 우연히도 제가 즐겨보는 유튜버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보았습니다.
평소에도 이 유튜버는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예쁘고 마른 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그 대신 몸과 마음을 모두 챙기는 지속 가능한 건강을 강조했는데요. 우연히 클릭한 그 영상에서는 유튜버가 슬픈 얼굴로 '여러분이 더 강해지도록 돕고 싶었다. 그리고 왜 이를 위해 그렇게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으며 과거를 자주 되돌아보았다'는 말을 꺼낼 때부터 이번에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는 걸 느꼈어요.
영상을 끝까지 다 본 이후에는 사람들의 댓글도 살펴보았는데, 정말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 댓글에 등장한 내용이 정말 사실이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큰 목소리를 내며 회복할 때,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죽어가는 걸 막을 수 있다.'
상처는 크든 작든 일단 돌이켜보는 것조차 너무 힘겹고,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 그들이 더 강해지는 걸 도와주는 걸 싶었다고 말하는 유튜버의 진심을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모습이 누구보다 강하고 용감해 보여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 직접 본보기를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많은 사람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되어주었을 것 같다.
타인에 의해 너무 쉽게 판단되고 어림짐작되는 순간에도 무던해지기 위해 애썼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 내가 바꿀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던 부분으로 내 한계를 정의하려 드는 순간의 무력함에 대해서 말이다.
전부터 이를 핵심 주제로 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았고 그저 다른 이야기를 쓸 때 살짝 곁들이는 수준에만 그쳤다. 어쩌면 완전히 회복되거나 이겨낸 건 아니고 현재진행형으로 애를 쓰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아직은 확실하게 말할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눈여겨보지도 않고, 쉽게 버려지고 구겨지고 아무렇게나 다뤄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왜 내게 중요한지 설명하는 데는 지금 이 상태로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