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미술관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상자를 쓴다

by 현의

무뚝뚝하고,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성으로 봐줄 구석이 조금도 없는 신입.


물류 창고를 돌아다니는 나는 딱 그 모양이었기 때문에 나는 규격외 제품이 되고 말았다. 작고 가벼운 제품들을 주로 취급하는 물류 창고에서, 늘 보던 것과 다른 규격외 제품이 등장하면 베테랑 직원들도 우왕좌왕한다. 어떤 상자에 넣어야 할지, 어떤 완충제를 넣어야 할지, 무게는 얼마로 측정해야 하며 어떤 배송 업체에 맡겨야 할지 저마다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논란은 누군가 새로운 의문을 제시하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러게 누가, 왜, 이런 걸 주문하고 난리야?”


딱 맞는 상자가 없으니 가장 커다란 상자에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빈 공간이 아깝다. 부실한 내용물에 비해 무게는 크게 측정해야 하니 돈도 아깝다. 이러한 논리를 쭉 듣다보면 모든 문제는 다른 제품과는 달리 이상하게 크고 손이 많이 가는 규격외 제품에게 있다. 그럴 때 나는 가운데에 번쩍이는 리본이 달린 선물 상자를 떠올린다. 이 커다란 제품이 매끈한 포장지를 몸에 두르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있었다면 다들 반겼을 텐데.


어느 곳에 가도 나를 제품으로 보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한눈에 정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뒷면에 설명서와 제조국, 가격과 구성품이 적힌 상자를 뒤집어 쓴 제품 말이다. 물류창고를 벗어나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탄 뒤에 도착한 외국에서도 나는 여전히 상자 속에 갇힌 제품이었다. 내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관심을 갖는 존재는 거의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대부분 ‘불쌍한 외국인’, ‘돈 없는 학생'이었고, 때로는 ‘니하오’, 어쩔 때는 ‘챙’이었다.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도 바뀌는 건 없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본인에게 익숙한 상자에 나를 밀어 넣었다. 그래도 내 머리에 씌워지는 상자를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순간이 있기는 했다. 외국어가 서툰 한국인 택시 기사에게 ‘정말 편하고 반가운 한국인’이 되었을 때.


“헤이, 챙!”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여태 모아온 돈의 절반 이상을 뉴욕 여행에 투자했다. 이왕 한국을 떠나온 김에 한국과 멀찍이 떨어진 곳을 여행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 직장, 사람, 그보다 끔찍한 세금과 집세. 내 하루의 대부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요소로부터 완벽히 탈출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공항 셔틀 버스를 탔다. 그러나 맨하탄에 도착한 버스에서 캐리어를 내리자마자 나를 반긴 건 노숙자, 그리고 동양인을 향한 멸칭이었다.


“췌엣!”

돈 좀 있냐는 질문을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등 뒤에서 만화 속 효과음으로나 쓰일법한 과장된 소리가 들렸다.


뉴욕은 첫인상만 최악일 뿐만 아니라 날씨마저도 기대 이하였다. 거리를 꽉 채운 사람들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먹구름이 하늘을 덮쳤고, 그 먹구름은 뉴욕에 머무르는 내내 나와 함께했다.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서 밖을 쏘다니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머리에 씌워진 상자를 도무지 벗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상자는 내가 직접 골랐다.


“어디 가봤어?”

“가서 뭐 했어?”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이 담긴 상자 뒷면에는 이러한 질문들의 답이 빼곡하게 적혀있을게 뻔했다. 설령 그 답이 촌스러운 코믹 산즈체로 적혀있더라도 얼핏 보면 꽤 그럴싸할 것이다. 여행에 조금도 관심 없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뉴욕을 가게 된 이유도 오직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동안의 외국 생활에서 알게 된 건 내가 오로지 ‘나’로서 인정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었다. 달랑 햄버거 하나만 사도 꼭 갈색 종이봉투에 담기는 것처럼, 나도 상자를 뒤집어 써야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 내리는 날 밖에서 한참 동안 줄을 서서 연어 베이글을 먹었다. 할랄 가이즈를 찾기 위해 지도 어플을 샅샅이 뒤졌고, 또 줄을 서서 르벵 쿠키를 샀다. 음식들은 대부분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뉴욕의 야경을 보기 위해 탑 오브 더 락에 갔는데, 도시 위를 완전히 덮은 먹구름 때문에 미국인 영웅의 구원을 기다리는 범죄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타임 스퀘어는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들떠있는 이상한 동네였고, 온갖 장사꾼들이 나를 붙잡으며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자꾸만 알려주었다. 모든 지하철에서는 오줌 지린내가 났고 식당에서는 인종차별을 당했다. 뉴욕의 명물이라는 자유의 여신상은 보자마자 실망스러웠다.


관광객들의 사진을 대신 찍어주면서 나는 깊은 후회를 했다. 옷을 거꾸로 입는 건 부끄러워하면서, 왜 어울리지 않는 상자를 뒤집어쓰는 건 부끄러워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나를 상자 속 제품처럼 취급하는 건 그렇게도 싫어했으면서 왜 나는 스스로 상자 속에 들어가길 자처했는가. 그래서 나는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는 관광객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행스럽게도 날이 갈수록 상자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찢어졌다. 잘 쓰고 다닐 수 있도록 매번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구석에 잘 보관해왔지만 그래도 매일 상자를 쓰고 돌아다녔던 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뉴욕을 떠나기 하루 전이 되자 머리에 쓰고 다녔던 상자는 초라하고 낡은 골판지로만 보였다. 그래서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동네에 사진을 찍으러 가는 걸 포기하고 이름난 요리사가 추천한 스테이크, 피자, 디저트도 포기했다. 그 대신 정말 맛있게 먹었던 연어 베이글을 사서 센트럴파크에 방문한 뒤 현대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로 일정을 짰다.


센트럴파크는 매우 넓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또 다른 상자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비틀즈 팬이니?"


등 뒤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허둥지둥 나를 따라왔다.


"그 가방! 가방 보고 바로 알았어!"


내가 가장 아끼는 상자. 너무 소중해서 남한테 긁히기라도 할까 쉽게 내놓지 못했지만 그 날 딱 하루를 위해 꺼내든 나의 또 다른 상자는, 비틀즈의 5번째 앨범 커버가 그려진 에코백과 동일했다.


그 여성은 존 레논의 추모 장소로 향하는 길목에서 직접 그린 비틀즈 그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여성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언제 이곳에 왔는지, 존 레논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상자 뒷면의 제품 설명서를 하나씩 읊어주는 일이 전혀 번거롭지 않았다. 조지 해리슨을 존 레논보다 좋아한다는 대답을 듣고 놀라는 얼굴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뉴욕에 온 걸 환영해. 마음껏 즐기다 가렴."


뉴욕에서 생전 처음 듣는 따뜻한 인사였다.


나를 위한 선물은 몇 걸음을 더 걷자마자 또 다시 등장했다. 바닥에는 존 레논의 대표곡이 적혀있고, 그 주변에는 수십 개의 아름다운 꽃다발이 놓여있는 곳. 뚜껑 열린 기타 케이스를 앞에 두고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는 노인, 그리고 그의 노래에 감탄하는 관광객이 있는 곳. 이곳이 바로 내 머리를 감싼 상자가 놓여야 할 장소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비틀즈 팬을 담은 상자는 존 레논을 위한 자리에.


"고마워요!"


나는 사진을 찍는데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노인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노인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불러주었기 때문에 연어 베이글을 사고 남은 잔돈을 모두 노인의 기타 케이스 안에 놓았다. 노인은 감미로운 노래를 부를 때와 영 딴판인 매우 씩씩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연어 베이글로 배를 채우고 공원을 떠났다. 아직 오전이었지만 미술관이 닫을 때까지 그 안에서 나오지 않을 작정이었기 때문에 일찍 식사를 했다.


현대 미술관이라는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인 이름과는 달리 그곳에 있는 작품들은 매우 아리송했다. 그러나 직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로웠다. 미술품을 해설해주는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것도 재밌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하나같이 마법이나 연금술로 불러온 것 같았다. 내가 보고 경험한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적처럼 그가 등장했다.


그는 주유소에 있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주유소에서 그는 해가 뜨면 사라져야 하는 전등 빛처럼 힘없이 주유기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전에도 그와 마주한 적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강의실의 한쪽 벽면을 비추는 흐릿한 스크린 속에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바텐더, 그리고 바에 나란히 앉은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를 둘러싼 인물이 아니라 그의 뒤에 놓인 텅 빈 매장이었다. 한 때는 온갖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쓸쓸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선반들만 남겨진 매장. 그것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바였다.


사람의 옆자리에 사람이 아닌 적막을 앉힌 화가. 나는 그의 작품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를 다시 만나서 반가운 것일까? 아니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것들만 모아 놓은 뉴욕에 와도 시무룩한 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것일까?'


고민 끝에 찾은 답은 현대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참 담백했다.


'어쨌든 너무 반갑다.'


그의 그림에는 하나같이 상자를 벗은 채 거리로 나온 진짜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가졌는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서 머무르고 있는지 알려주는 설명서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 사람이 온몸으로 토해내고 있는 순간의 감정만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어떤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작품 속 배경이 되는 장소에 방문한 사람이 느낄만한 감정이 전해졌다.


그래서 안도했다. 이 세상에는 사람 수보다 훨씬 많은 상자가 있다. 그것들은 때때로 뒷면에 적힌 설명과 다른 제품을 품다가 가장자리가 찢어지고, 물에 젖어 형편없이 망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훼손된 상자를 아까워하지 않아도 되고, 사실과 전혀 다른 설명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오는 뉴욕에서 당당하게 찢어진 상자, 혹은 상자를 벗어던진 텅 빈 인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상자가 아니라 사람을 더 사랑하니까.


미술관이 닫기 직전에 밖으로 나와 호텔까지 걸어갔다. 거리에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잠깐 잠을 잠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뒤로는 뉴욕을 다시 방문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뉴욕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낼 저녁 식사로 한국에서도 질리도록 먹은 햄버거를 선택했다. 호텔 한 구석에 놓고 온 상자는 아마도 다른 걸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쯤 되면 상자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뉴욕을 다 뒤져도 상자를 위한 저녁 만찬은 없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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