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탐욕 :『위대한 개츠비』

부제: 위대한 개츠비, 괴물이 삼킨 자본주의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1부] 탐욕: 황금의 아가씨와 초록 불빛의 환영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돈’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그 순간, 사실은 그 사람을 둘러싼 배경과 안락함, 그리고 그가 보장해 줄 미래의 부유함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요? 1920년대, 재즈와 밀주, 그리고 유례없는 호황으로 들끓었던 욕망의 시대. 그 한복판에 섰던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바로 이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우리는 이 소설을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파티와 낭만적인 대사들 이면에는, 자본주의가 잉태한 가장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감정, 바로 '탐욕(Avaritia)'의 민낯이 숨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화려한 재즈 시대의 풍경 속에 감춰진 인물들의 탐욕스러운 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핵심 감정: 탐욕(Avaritia)의 본질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이 파괴적인 감정의 정체를 먼저 규명해야 합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탐욕을 명쾌하게 정의했습니다.


탐욕 (avaritia)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스피노자가 꿰뚫어 본 탐욕의 핵심은 바로 ‘무절제함’에 있습니다. 이는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와 같습니다. 짠 바닷물은 찰나의 해갈을 주지만, 이내 이전보다 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갈애(渴愛)', 즉 '목마른 애착'처럼 탐욕에는 결코 ‘만족’이나 ‘멈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행복과 사랑, 명예까지 구매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로 등극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떻게 이 무절제한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지, 그 서사의 시작점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동부의 두 세계: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


이야기는 미국 중서부 출신의 청년 닉 캐러웨이가 1922년 봄, 뉴욕으로 오면서 시작됩니다. 증권업을 배워 부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동부로 온 그는, 롱아일랜드의 웨스트에그(West Egg)에 낡고 작은 집을 구합니다.


웨스트에그는 벼락부자들이 모여 사는 신흥 부촌입니다. 반면, 만(灣) 건너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상류층들이 사는 이스트에그(East Egg)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닉의 집 바로 옆에는 대리석 수영장과 거대한 정원을 갖춘, 마치 "어느 노르망디의 성"을 흉내 낸 듯한 웅장한 대저택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주인은 베일에 싸인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였습니다.


어느 초여름 저녁, 닉은 자신의 칠촌 여동생인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톰 뷰캐넌의 초대를 받아 이스트에그의 저택을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목격한 풍경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커튼, 장미 정원, 그리고 소파 위에 풍선처럼 떠 있는 듯한 두 여인. 그들은 마치 현실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구체제의 오만함: 톰 뷰캐넌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30세의 나이에 이미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대학 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거만하게 빛나는 두 눈"과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는 잔인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도덕성을 완전히 상실한 인물입니다. 그는 식사 자리에서 "백인 문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종차별적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기득권을 옹호합니다. 더욱이 그는 아내 데이지를 두고 자동차 정비공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톰에게 있어 돈과 권력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를 이용해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경멸하는 '오만한 탐욕'의 화신이었습니다.


황금의 목소리: 데이지의 비극적 냉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데이지. 그녀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닉이 그녀에게 딸을 낳았을 때의 이야기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간호사가 딸이라고 하더군요. 전 얼굴을 돌리고 울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지요. 좋아, 딸이라서 기쁘다. 저 아이는 바보였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여자아이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예쁘고 귀여운 바보(beautiful little fool)가 되는 것이니까."


이 대사는 단순한 신세 한탄이 아닙니다. 여성이 아무리 똑똑해도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절망, 차라리 무지(無知) 속에서 상류층의 안락함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지독한 냉소입니다.


개츠비는 훗날 데이지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합니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딸랑거리는 소리",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는 다름 아닌 돈이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그녀는 사랑 그 자체보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욕망하는 '수동적 탐욕'의 상징입니다.


어둠 속의 초록 불빛


이스트에그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닉은, 자신의 이웃집 마당에 나와 있는 한 남자를 목격합니다. 바로 개츠비였습니다.


그는 캄캄한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손을 뻗은 곳에는, 바다 건너 이스트에그의 부두 끝에서 깜박이는 조그만 '녹색 불빛(Green Light)'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괴상한 모습으로 캄캄한 바다를 향해 두 팔을 쭉 내뻗었으며, 또한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나는 그가 몸을 떨고 있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녹색 불빛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닿을 수 없는 건너편, 데이지가 살고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개츠비에게 그 불빛은 단순히 옛 연인이 있는 장소를 넘어, 그가 평생을 바쳐 도달하고자 했던 성공, 신분 상승, 그리고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겠다는 '낭만적 탐욕'의 신호등이었습니다.


매일 밤, 웨스트에그의 개츠비 저택에서는 화려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어 샴페인을 마시고 춤을 췄지만, 정작 주인인 개츠비는 그들 틈에 섞이지 않은 채 하염없이 바다 건너편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5년간 품어왔던 개츠비의 거대한 꿈이 현실과 마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연 탐욕으로 쌓아 올린 그의 성(城)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내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Q. 당신이 지금 간절히 원하고 있는 '녹색 불빛'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수한 꿈입니까, 아니면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무절제한 갈증입니까?


Q. 혹시 타인의 '목소리'나 '매력'에서 그 사람의 인격보다 '돈'의 위력을 먼저 느꼈던 순간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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