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2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인식하라
50. 현자는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
절대 자존심을 잃지 말라. 또, 너무 자기 자신에게만 익숙해서도 안된다. 자신의 올바름을 정직의 기준으로 삼아야한다. 그리고 모든외적인 규칙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7월의 오후.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었다. 새벽이나 해가 지고 난 저녁 무렵이면 아파트 단지 안을 천천히 걷는다. 걸을 수 있는 시간은 20분 남짓. 벤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모기들이 어김없이 팔과 다리를 문다. 살아내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들 사는구나, 생각한다.
오늘 오전에는 구청 교통과에 다녀왔다. 문이 막 열리자마자 들어갔다. 항암으로 몸은 무거웠고, 날씨는 이미 한여름 한복판이었다. 양산과 손선풍기, 수건을 챙겨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탔다. 내 명의의 차량에 걸린 ‘운행정지명령’을 해제하기 위해서다.
3년 전 남편과 헤어졌다. 그가 떠나며 내 차를 가져갔다. 그동안 되돌려주지 않았다. 수없이 말했고, 간절히 부탁도 했다. 그러나 매번 이유를 댔다. 지금 나는 암환자다. 차가 잘못 이용되어 문제가 생겨도 내가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남은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 중이다.
최근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다른사람이 받아서 자연스럽게 전화번호 확인해 보라고 한다. 전남편이 번호를 바꿨다고 생각했다. 내가 암에 걸린 걸 알게 된 후, 연락두절이다. 차를 돌려달라고 애걸하며 문자를 보냈다. 보험계약기간이 되면 어쩔수 없이 차량사진을 받아서 보험재계약을 해왔다. 난 정리가 필여한 사람이니 차를 제발 돌려달라고 문자를 보내본다.
이제는 병원에 입원 중이라 차를 가져다 줄 수 없단다. 병원이 어딘지 묻자, 끝까지 말을 아낀다. 정말 입원을 한건지 의심스럽다. 10년 넘게 남의 물건을 이용했으면서,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오히려 나를 원망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정리하고 가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그들은 모른다. 내 두 아이가 혹여라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나는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번호 바뀌었어요”라고 말하는 또 다른 남자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걸까. 결혼 후 20년은 늘 이렇게 무너지고, 참고, 기다리며 살아왔다. 이제 난 마음의 여유도, 삶의 시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에게 힘든 상황의 연속이다. 이렇게 까지 만들고 싶을까?
아프지만 이제는 다르다. 정직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올바름이 무엇을 지켜주는지, 이제는 행정과 법의 언어로, 그들에게 알려줘야겠다. 누군가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긴 사람들. 남의 것을 공짜로 쓰며 뻔뻔함이 반복되 않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나 자신에게 더 엄격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들이 사람이 아닌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