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2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인식하라
51. 무엇을 선택하즌지가 당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 삶의 대부분은 선택에 달려 있다. 누군가가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좋은 취향과 올바른 판단력을 짐작할 수 있다. 선택을 잘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가장 큰 재능 중 하나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늦게 눈을 떴다. 새벽 5시 45분. 밤새 에어컨이 돌아갔지만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다.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 어딘가 막힌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창문을 모두 열고 에어컨을 껐다. 선풍기를 켜지만 바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에 눌려 있던 것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다. 에어컨의 인위적인 냉기가 사라지자 몸은 조금씩 자연을 향해 열렸다.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친정엄마가 조용히 누워 계신다. 침대 위에 냉방 매트를 깔아드렸지만, 처음엔 시원하던 매트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체온에 덥혀진다. 엄마는 그 온기를 피해 한쪽으로 몸을 옮기신 듯하다. 산소호흡기의 전원을 껐다. 그 기계는 산소를 내보내는 동시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엄마 곁에서 작은 불덩어리처럼 열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주방으로 나와 쌀을 씻었다. 친구가 보내준 고마운 쌀에 검은콩을 넉넉히 넣었다. 요즘은 고기가 잘 넘어가지 않아 콩이라도 먹고 단백질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콩 하나하나가 작지만 든든하다. 이 아침의 마음이 밥이 되어 우리를 채워주기를 바란다.
주방 창문을 열어봤지만 바람은 기대만큼 불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기운이 문틈 사이로 밀려드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도 무척 더울 것이라는 예고처럼 느껴졌다.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전 8시에 출발해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8시나 9시가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매일 하던 글쓰기와 독서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 예전에는 병원에 가는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라고 여겼다. 계획했던 일들이 줄줄이 밀리는 날. 아픈 것도, 해야 할 일을 못한 것도 결국 나의 몫이다. 그저 ‘아프니까’라는 이유로 놓쳐버린 시간들은, 언젠가 미래의 내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는 벌써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다. 검은테 돋보기를 쓰고, 가까이 보다가 멀리 보며, 큰 소리로 읽다가 다시 작은 소리로 조용히 읽는다. 이른 아침, 엄마도 ‘책 읽기’라는 선택을 하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병원으로 떠나기 전까지 두 시간이 남았다. 나도 글쓰기와 독서를 시도해본다. 예전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책을 펴고 한 줄 한 줄 읽는다. 글을 쓰려고 손을 움직인다. 딱딱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복잡했던 생각들이 단순해진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지금 이 순간, 나를 느끼는 일이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어떤 날은 아프고, 어떤 날은 지치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그 와중에도 아주 작은 선택들이 우리의 하루를 만들어간다. 포기할 것인가, 시도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다시 시작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다짐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선택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밥을 짓고, 엄마를 바라본다. 이 모든 것이 모여 내 삶이 되고, 오늘 하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