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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May 26. 2021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여성으로 산다는 건

“1달만 쉬어야 해요. 2달 이상은 안돼요.”

난임 병원 원장님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1달 간의 휴식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찌뿌둥한 통증과 함께 찾아온 생리에 눈물이 난다.


‘난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임신도 어렵도, 은근슬쩍 기대되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부담스럽다. ‘남자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숙제. 아기를 가지기도 어려운데, 성별까지 내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학생 때에는 몰랐던, 아니 사회 초년생까지 몰랐던(알긴 알았지만 피부로 절감하지 못했던) 성별에 대한 선호도가 살갗으로 다가온다.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이렇게 과배란 주사를 배에 꽂지 않아도 될 텐데, 메케한 마취약 냄새를 맡으며 난자 채취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내가 꿈꾸는 것을 향해 힘차게 달여갈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내가 남자가 될 수는 없을 일이다. 난 여자다. 뭐, 불변의 사실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여성으로서 좋은 점을 누리며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며 교과서적인 말을 내게 들려준다.


만약 내가 딸을 낳으면, 딸은 똑같이 때로는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희생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견디며 살아갈 것인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좀 더 좋은 사회이겠지?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결혼도 늦어지고 출산도 늦어졌다. 사실, 여성을 떠나 청년들 모두 요즘은 대학 졸업 후에 직장을 잡고 자리를 잡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늦어진 결혼으로, 아기를 낳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난임 병원을 가면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1~2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어쩌면 난임의 문제는 이 시대 많은 여성들의 어려움일지도 모르겠다.


‘82년생 김지영’과 같지는 않지만 나름의 85년생 OOO을 겪고 있다.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는 사실 불편한 이야기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기 다른 반응이 나온 것처럼, 85년생 OOO의 이야기에 누군가는 깊은 공감을, 누군가는 불편함으로, 누군가는 무관심으로 대할 것이다.


병원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여성으로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인생이 괴롭다지만, 그 가운데 찾을 수 있는 기쁨이 있듯이 여성으로서도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여성으로 태어나 좋은 점은, 좀 더 섬세한 것? 따뜻하게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것? 글쎄,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존엄한 존재로 태어났다. 그런데 사회를 살다 보면, 존엄하기는 커녕, 굉장히 하찮게 대우를 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분개할 상황들을 견디곤 한다. 옛날에는 얼마나 더 했을까? 신분제도에, 남녀차별에 힘들었을 조상들을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은 그래도 양반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삭막한 세상 속에 희망을 만들고, 아들 딸 차별 없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갖는 이유는, 소망이 있는 한 길이 있기 때문이겠지.


생각의 그늘을 걷히고, 빛을 찾는다.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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