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에서 삶으로]
“제주에 가서 사계절 보내면 어떨까?”
“그래! 한 2년 정도 놀다 오자.”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아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제주로의 이주에 동의했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태어난 후,
우리는 처음 해보는
엄마 아빠의 역할이
낯설기만 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그 낯섦은
당혹감으로 변했다.
아이가 하나일 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무한대라는 것을 경험했다.
대한민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서울 생활이라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아침 7시면
우리 넷은
출근과 등원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부스스한 얼굴로
겨우 옷만 챙겨 입은 채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이를
노란 가방과 함께
처가에 내려주고,
틈틈이 신호대기 시간에 눈썹을 그려가며
출근을 했다.
나는 백팩을 메고
갓 36개월을 넘긴 둘째를
자고 있는 채로
이불에 돌돌 말아 안은 채
어린이집 앞에서
원장님을 기다리며 동동거렸다.
어린이집 현관문이 열리면
아직 보일러도 켜지 않은
냉랭한 마룻바닥에
자는 아이를 눕혀놓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여
출근 지옥철에
몸을 싣고 나서야
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네 식구가 집에 모이면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고
나는 아이들을 씻기고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에 빨래에 청소까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일의 전쟁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 부부가 나눈 대화란
주로
“여보 이거 했어? 저거 했나?”
“아~ 통장에 잔고가 마이너스네.”
뭐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부부라기보다는
그저 아주 힘든 사업을 시작한
동업자에 지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많은 부부들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리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다.
퇴근 시간까지
아이를 맡겨둘 수 있었던 유치원 때와는 달리
정오가 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아이.
아이가 긴 오후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지.
경제적으로 좀 부족해지더라도
아이는 부모가 돌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프리랜서 일이 가능한
내가 퇴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엄마가 출근을 하고 남겨진 아빠와 두 아들,
세 남자의 처음 몇 개월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밥을 먹이고,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는 아침 시간은
전쟁터였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대화의 시간이 늘어나고
서로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결혼 10년 차가 되던 해.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막내는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즈음이었다.
몇 년 전에
잠시 꾸었던 달콤한 꿈이 생각났다.
‘제주도!’
수십 번, 수백 번을 생각한 끝에
용기 내어 말을 꺼냈을 때,
언제나처럼 무심한 듯
쿨~하게 툭 한마디를 던진 아내.
“그래! 아이들 데리고 한 2년쯤 가서 실~컷 놀고 오자!”
아내는 휴직원을 제출했고,
그렇게 우리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마음껏 누리기를.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보낸 특별한 시간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기를.
* 이 글은
<가이드포스트>에
2017년 1월호부터
'실컷 놀다 오자'라는 꼭지로
연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