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에서 삶으로]
나는
더운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추위를 더 싫어한다.
제주에서
1년 살아보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부터
비, 바람, 눈보라와 함께
우중충한 날씨가
나를 반겼다.
따뜻한 겨울날을
기대했던 나에게
제주의 겨울바람은
뜻밖의 추위를 선사했다.
제주에는
여자, 돌, 바람이 많다고 하더니만
가는 곳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고개를 들고
걸을 수가 없었다.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제주의 겨울바람은
유명하단다.
여름에는
남동풍이 불어와서
남쪽 지역에
태풍이 몰려오고,
겨울에는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와서
북쪽 지역에
유독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다.
옛날에는
강력한 북서풍 때문에
난파되는 배도 많았다고 한다.
겨울에
북서쪽 바닷바람을 맞아보았다면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기온은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지만,
찬바람 때문에
체감 온도는 항상 영하였다.
제주에는
겨울비가 많이 내린다.
한라산으로 올라갈수록
비는 눈으로 바뀌고,
겨우내
한라산 꼭대기는 하얗다.
하지만 바닷가로 내려갈수록
봄과 가을의 모습도 있다.
바람이 많이 불지만,
카페의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하다.
겨울임에도
지대가 낮은 곳에는
채소들이 파릇파릇하다.
중산간 지역에는
가을에 핀 억새로 가득하다.
제주의 겨울은
고도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
이주한 지 일주일이 되던 어느 날,
제주도에 눈이 내렸다.
해안가에도
눈이 왔지만,
따뜻한 햇살 때문에
곧바로 녹았다.
하지만
한라산으로 올라갈수록
겨울왕국처럼 눈이 쌓여 있었다.
제주 탐방을 한다고
여기저기 다니던 우리는
신기한 광경을 봤다.
하얗게 눈 덮인 목장에서
사람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는
눈썰매장이 따로 없다.
경사로가 있는 곳이라며
훌륭한 눈썰매장이 되기 때문이다.
썰매 타기에
좋은 곳마다
썰매를 대여하고
따뜻한 어묵 국물을 파는 차들만 있는
입장료가 없는 자연 눈썰매장.
나중에
도민들에게 들으니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플라스틱 썰매 하나씩은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우리도 눈썰매 타요!”
아이들의 몸이 들썩 거렸다.
우리 가족은
곧바로 눈썰매를 타는 대열에 합류했다.
안전요원도 없고
특별히 정해진 코스도 없는 눈썰매장.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다.
타는 곳, 걸어 다니는 곳만 정해지고
나머지는 마음대로였다.
우리는 썰매에
몸을 실었다.
하얀 들판을 가로지르는 그 기분은
여느 눈썰매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목장.
가슴이 뻥 뚫렸다.
썰매를 탄 아이들은 연신 엄지 척(!)을 했다.
“아빠, 여기 짱이에요!”
우리도 아이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가끔 코스를 잘못 잡아서
말똥을 지나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눈썰매장이
말을 키우는 목장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많았지만,
목장이 넓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없었다.
몇 번을 탔는지도 모를 만큼
썰매를 들고 수없이 오르고 탔다.
육지의 눈썰매장에서는
썰매를 타는 시간보다
썰매를 들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
그날
제주도 엄마들의 카페(인터넷)에는
눈썰매장 이야기로 가득했다.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사람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썰매를 들고 갔는데,
눈이 녹아서 못 탔다는
아쉬운 이야기도 있었다.
‘개장시간도 폐장시간도 없는 눈썰매장.
오로지
햇빛과 온도가 허락하는 시간을
잘 맞춰서 가야 누릴 수 있는 곳,
이런 것이 바로 제주의 맛이구나.’
제주의 겨울을 지내면서
따뜻한 남쪽나라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온몸으로 배웠다.
* 이 글은
<가이드포스트>에
2017년 1월호부터
'실컷 놀다 오자'라는 꼭지로
연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