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제주의 봄, 길 잃음 주의

[제주, 여행에서 삶으로]

by 배태훈

산방산 앞

노란 유채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은 추억.

제대(제주대학교) 가는 길에서

왕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던 일.

뒷산에 올라

달래와 고사리를 찾아

헤매던 일들.

아름다운 제주를 떠나 온 지금

제주의 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벚꽃 터널.JPG 애월읍 장전리에 있는 벚꽃터널

봄은 제주 여행의 최적기!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이지만,

꽃 피는 봄이 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다.


제주의 봄을 찾아

구석구석 다니던 중

우리 가족은 이상한 풍경을

하나 발견했다.


이른 아침,

유명 관광지도 아닌

한적한 시골 동네 길가에

자동차들이

십여 대씩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 학교 갈 시간쯤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싹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건 또 뭐지?’


알고 보니,

봄철 제주 각 산지에

퍼져있는 고사리를

채취하는 발길들이란다.


‘맞아.’


육지에 살 때

시장에서 가끔

제주 고사리라고 자랑하던,

몸값이 제법 나갔던 녀석들이

바로 여기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도 그 유명한 제주 고사리를 찾아 나서 볼까나?’


그날부터 슬슬

뒷산 산기슭을 돌아다녀보았다.


여기저기

고사리를 찾아다니는 맛이

색달랐다.


작은 손 모양(고사리 손 같다고 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았다!)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고사리.jpg


바닥만 보고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리거나

뱀에 물리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봄철에

고사리가 있을 만한 곳에는

‘길 잃음 주의!’,

‘뱀 주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모른 채

앞만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고사리를 꺾으러

산속으로 다니다 보니

산에는 달래며 머위며 두릅까지

정말 먹거리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에 한두 시간 운동 삼아 돌아다니면

그날 저녁엔

달래 간장 비빔밥,

달래된장국,

머위잎 쌈밥 등을

맛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미각을 사로잡은 건

‘고사리 라면’이었다.


고사리가 비싼 탓에

직접 고사리를 꺾지 않고서는

생각해 볼 수도 없었던

고사리 라면은

구수한 고사리와 라면이

마법을 부리듯

환상적인 맛을 내뿜었다.


봄날의 제주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던

어느 날.


그날도 언제나처럼

우리는 뒷산 언저리를

슬슬 오르고 있었다.


수풀 길을 헤치면서

고사리를 찾고 있었다.


앞에서 수풀을 헤치던 아내 옆에서

갑자기 ‘푸드덕~’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꿩이었다.


인적이 없는 조용한 숲길에서

어찌나 놀랐던지

아내는 ‘꺅~’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러고는 이내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황급히 발길을 돌렸고,

놀란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가려다가

갑자기 그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다시 그 자리로 가보았다.


꿩이 날아간 자리에

꿩알이 있었다.

무려 14개씩이나.

꿩이 알을 품고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간 것이었다.



꿩알.jpg


조용히 알을 품고 있다가

봉변(?)을 당한 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제주도 현지 분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꿩은 알을 품고 있다가

한 번 천적에게 들키면

알을 버리고 도망가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 꿩이 비정한 것 같기도 하고

꿩알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집 근처에서 운전하고 다니다가

갑자기 길을 건너는 꿩들을 보면서

놀랐던 일도 생각난다.

꿩 때문에 놀라 주저앉았던 아내는

어느새 그런 일들이 익숙해졌는지

‘푸드덕’ 소리를 들으면,

대수롭지 않게 ‘아~ 꿩이네’ 하고

지나갔다.


노란 유채 꽃은

제주도 봄을 생각나게 한다.

가는 곳마다

노란 풍경을 펼치는 유채꽃은

벚꽃과 함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우리가 제주도 길가에서 보던

노란 꽃이

모두 유채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집 주변에도

노란 유채 꽃이 피었기에

집주인에게

제주도는 길가에도 유채 꽃이 피느냐고 했더니

길가에 있는 노란 꽃은

대부분

갓 꽃이라고 말하셨다.


직접 유채와 갓을 비교하면서

그 차이점들을 말씀하시는데,

정말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제주도에서 직접 살지 않았다면,

지금도 제주도의 노란 꽃들은

다 유채로 알고

갓 꽃 앞에서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고

제목은 ‘유채꽃 앞에서’라고 했겠지.


갓꽃.JPG 길가에 핀 갓꽃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그런들 어떠하리~.

아름다운 꽃 앞에서

행복했으면 그걸로 됐지.


생소했던 것이 점점 익숙해져 가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때론 낯설어지는 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이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면

절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을 신기한 에피소드(?)였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들이

새삼 생각나는 계절이다.


* 이 글은

<가이드포스트>에

2017년 1월호부터

'실컷 놀다 오자'라는 꼭지로

연재가 되고 있다.

keyword
이전 03화03 시골학교,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