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우 Oct 22. 2023

왜 인간은 똥 때문에 수치스러워야 하는가 -3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만 가지 독에도 침범 당하지 않는다. 즉, 어떤 독에도 죽지 않는 이를 두고 우리는 만불독침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느닷없이 브런치에 웹소설을 연재하고자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말을 적은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 만불독침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수련을 거듭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기 위함이다. 바로 1인 가구 남성들이 그렇다. 일례로 그들의 찬장을 뒤져보면 유통기한이 연단위로 지난 조미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냉동실에 언제 넣어둔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음식을 데워 먹으며 살고 있고 나만 보더라도 희뿌연 곰팡이가 핀 김치를 보고 음, 어머니께서 주신 김치가 비로소 다 익었구나. 하고 먹고는 했다. 이미 경지에 이른 자 또한 희소하지만 존재한다. 기안 84 작가님이 그렇다. 결론부터 적자면 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때는 2020년 가정의 달. 한사코 거절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자취방으로 향하는 내 손에 날계란 한 판과 깨졌지만 먹을 수는 있는 날계란 담은 통을 들려 보내셨다. 깨진 것부터 먹어!라고 소리치시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나는 서울로 향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계란들을 정리하는데 하필 상태가 좋지 않은 계란들을 담은 통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귀찮은 마음에 그냥 두었고 잊었다.


같은 달 친척 누나의 소개로 내게 천사가 찾아왔다. 한 달 후 우리는 서로를 자기라 칭했다. 그리고 또 한 달 후 나는 주화입마에 빠졌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어느 토요일, 데이트 도중 나의 천사가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떠버린 나는 친구를 만나 광어 회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였다.



이튿날 해장을 위해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올려두고 언제 가져온 지도 모를 곰팡이 핀 김치를 위에만 살짝 걷어내 접시에 담았다. 물이 끓어 면을 넣고 스프를 넣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못내 아쉬워 냉장고 안을 뒤지던 중 두 달 전 어머니께서 내 손에 들려 보내신 깨진 날계란을 담은 통이 보였다.


얏타!


통을 열고 깨진 계란 중 하나를 집어 끓고 있는 라면 위에 조준하고 완전히 깨뜨렸다. 떨어지는 계란이 보였다. 빨간색 흰자, 노란색 노른자, 그리고 특유의 걸쭉함. 완벽핟잠깐, 빨간색 흰자? 빨간색?


떨어진 계란은 면발 속으로 숨어들었다. 꺼내려고 헤집어 봤으나 오히려 풀어져 흩어졌다. 신기하게도 빨갛던 계란 흰자는 익어가며 본연의 흰색을 되찾았다. 모양새가 이렇다 보니 입맛이 돌았다. 쓰린 속은 라면을 넣어달라 채근 대었다. 가만있어 보자. 흰자도 제 모습을 찾았고 향에도 문제가 없다. 살모넬라균도 노로바이러스도 가열하면 죽는다. 설사 입자 몇 개가 살아남았다 해도 내게는 생 굴 먹고 얻은 면역력이 있다. 면역력의 지속기간은 통상 삼 개월 정도라지만 그건 일반인들 얘기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 년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증상은 저녁부터 시작됐다. 다행히 생 굴로 단련된 덕인지 위로는 게우지 않고 아래로만 쏟았다. 그런데 이 증상이 일 년이나 이어졌다. 그 탓에 천사와의 데이트는 단조로워졌다. 성수나 종로 같이 매장 내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 많은 지역은 무조건 피했고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을 찾을 수 없는 산책로는 걸을 수 없었다. 가방 안에는 항시 휴지를 넣어 다녔다. 계속되는 불편함에 결국 자존심을 꺾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심리적인 것 같다며 내게 안정제를 처방하셨다. 그러나 복용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내시경도 해봤지만 위장에 문제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 여름날. 변의 모양이 원래대로 돌아온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실한 고구마 같던 그 녀석이 어찌나 반갑던지. 후로는 매일 아침마다 실한 고구마를 뽑아내고 있다. 아, 궁금해하실까 봐 적자면 굴은 아직도 입에 대지 않지만 계란은 잘 먹는다.


똥 얘기 끝!

이전 09화 왜 인간은 똥 때문에 수치스러워야 하는가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