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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18. 2022

허무 (虛無)

1장. 마무리.

“초밥 여사님이 상우, 너 재환이랑 무슨 일 있는 거라고 얘기 좀 해보자고 그러시더라. 원래 한 번도 그런 적 없다가 갑자기 데리러 오는 것도 이상했어. 그 밤에 거리도 멀 텐데. 지난주 토요일에 재환이가 상우 데리러 일찍 왔을 때는 남자 사장님이 재환이 저 놈, 왜 상우 입을 막으려 하냐고 그러시더라고.”


“그럼 재환이 형이 한국에서 아버지 온다고 저 나가라는 것도…”


“너 나가래? 아버지가 온다고? 걔 미쳤나 봐. 아니 무슨 아버지가 온다고 그래. 그 나이 드신 분이 여기까지 어떻게 오니? 하긴… 지가 상우 돈 훔쳐놓고 같이 살긴 힘들겠지. 어휴… 걔 진짜 어떡하니? 그래서 한국 가는 거야? 방 때문에 그런 거면 방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살아. 그러면 1년 채울 수 있잖아. 워홀 평생에 한 번밖에 못 오는데 1년 다 있고 싶을 거 아냐.”


“아뇨. 저 진짜… 와…”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웃음만 나왔다. 수개월 전, 나는 초밥 여사님 차 안에서 내 패를 깠어야 했다. 여자 사장님도 그 뒤로 아무 말씀 없으셨다. 그저 간간이 한숨을 쉬시며 ‘그래.’ ‘그렇겠지.’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내일 재환이 없을 때 다시 얘기하자. 지금 재환이 아마 안에 있을 거야.”


어느새 차는 일식집 주차장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려 여자 사장님과 주방에 들어가자 이미 재환을 포함한 금요일 근무자 모두가 출근해 있었다.


평소 같은 나라면 매일 같이 바쁜 금요일, 한가하기를 바랐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행히 바람대로 시간이 어떻게 흐른지도 모르게 바빴다. 어느새 주방 청소가 끝났고 퇴근할 준비를 마친 재환과 나는 문 앞에 서서 일식집 주방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재환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갔고 뒤따르는 나를 초밥 여사님과 사장님 내외가 안쓰럽게 바라보고 계셨다. 출근하며 여자 사장님에게 뱉은 내 얘기가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잘 전달되길 바라며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주방을 나섰다.


“상우 씨, 집은 구하고 있어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재환이 물었다.


“네. 뭐…. 대충…”


“구했다고요?”


“아니, 뭐… 아직 구한 건 아니구요. 몇 개 봤는데 그냥 결정만 하면 돼요.”


“오! 몇 개나 보셨어요? 어디 쪽 보셨는데요? 이 주변에 빈 방이 있어요?”


역시… 이 근방에서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개새끼…


“아이, 뭐… 그냥… 이 주변은 아니고 박스힐 역(아밋의 카페와 인접한 역.) 주변에 몇 개 봐 뒀어요.”


“하하, 카페랑 가까워서 좋겠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구했네요? 한국인들만 있는 집이에요? 외국인이랑 같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네. 뭐….”


따위의 얘기를 하며 재환과 나는 집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여자 사장님이 해주신 재환의 얘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토요일 일식집으로 출근하자마자 남자 사장님은 내 처지를 걱정해 주셨다. 내 얘기는 아무래도 잘 전달된 듯 했다. 지난주 토요일보다 더 이르게 주방 일을 마무리 짓고 우리 넷은 다시 홀에 앉았다. 남자 사장님은 팔짱을 끼고 테이블만 쳐다보고 계셨고 여자 사장님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계셨다.


“상우야 그때 내가 너 돕는 거라고 했잖아. 바보야.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재환이가 받는 방세도 시세보다 높을걸? 얼마 받아? 이제는 얘기할 수 있지?”


초밥 여사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주에 350달러 내는데 비싼 건가요?”


“거봐! 시세보다 높다니까? 그럴까 봐 물어본 거야. 거기 그렇게 비싼 방 아니야. 그냥 주택이지? 그런데 무슨 350달러를 받아 처먹어. 한주에… 비싸도 250달러 정도면 살 수 있어. 이 동네.”


재환과 방을 계약하기 전,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와 멜버른 중심부에 있는 아파트에서 약 이 주간 세를 산 적이 있었다. 재환과 방을 계약하던 날, 그가 제시한 방 세가 아파트에서 지불하던 세보다 50달러 정도 저렴하길래 덜컥 계약을 했다.


“이 바보야, 멜버른 중심부보다는 당연히 저렴하겠지. 여기는 외곽인데. 그래도 350달러면 엄청 비싼 거야. 우리 집도 200달러밖에 안 받아.”


초밥 여사님이 탄식했다.


“어휴… 재환이 얘를 진짜 어떻게 해야 돼. 상우, 재환이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간 워홀러 한둘이 아니야. 아니 그 집에서 어떻게 버텼어? 다른 일은 없었어?”


두 분의 얘기를 듣자 하니 재환은 그의 못된 손버릇을 제외하고도 한국인 워홀러들에게 집주인의 권력을 휘둘러 내쫓은 이력이 많았다. 주된 수법은 디포짓(계약금) 갈취였는데 호주에서 워홀러들은 방을 계약할 때 계약금 명목으로  집주인에게 2주 치 방세를 미리 준다. 세입자가 나갈 때 방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돌려주기 마련이지만 재환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그것을 수시로 가로챘다. 결국 재환의 집에서 쫓겨난 한국인 워홀러들은 대부분 지금의 나처럼 호주를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희생양은 모두 한국인이었다는 것. 그런 새끼가 김치 공장에서 잘리며 내게 ‘한국인을 조심하라 말했다.’ 목 뒤로 오돌토돌 소름이 돋았다.


“사장님 저 한국 가는 거 재환이 형한테 말씀하셨나요?”


“아니, 안 했지. 재환이는 물어보지도 않던데?”


“저 여기 그만두는 거는요? 그것도 말씀 안 하셨어요?”


“응. 아직 안 했어. 왜? 안 했으면 좋겠어?”


“네.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재환이 형 모르게 가야 할 것 같아요. 한국.”


“그래 알겠어. 얘기 안 할게.”


“자, 이제 그만. 재환이 올 시간 됐으니까 다들 여기서 인사하자. 상우야, 그동안 고생했다. 한국 가서 잘 되려고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자.”


테이블만 쳐다보시며 가만히 듣고 계시던 남자 사장님이 시간을 확인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상우, 이거 주급이랑은 별개로 내가 조금 더 넣은 거니까 잘 가지고 한국 조심히가.”


자리에서 일어난 내게 여자 사장님이 봉투를 건네셨다.


“아니에요. 뭐 이런 걸 주세요. 저 괜찮아요. 다 털린 것도 아닌데요.”


“상우야 받아둬라. 그동안 잘해줬고 고마워서 주는 거니까 가지고 한국 조심히가.”


남자 사장님은 툭 던지듯 말씀하시고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봉투를 받아 쭈뼛쭈뼛 가방에 넣고 여자 사장님에게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초밥 여사님은 밥 한 번 사주고 싶으시다며 내게 핸드폰 번호를 물으셨다. 핸드폰 번호를 찍어 드리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던 찰나, 주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재환이 ‘상우 씨 갑시다!’라고 소리쳤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근무였다는 것을 재환이 모르게 사장님 부부와 초밥 여사님에게 다음 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하고 주방을 나왔다.


“형, 저 월요일에… 그러니까 내일모레 이사하려고요."


재환의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삼국지 얘기를 열심히 떠들던 재환의 말을 끊고 내가 선수를 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짐 싸 들고 나오고 싶었지만 떠나는 방을 정리해야 하고 냉장고도 비워야 한다. 그래야만 디포짓을 문제없이 받아낼 수 있다. 재환은 시간이 일주일이나 남았음에도 내가 방을 비우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터, 지금부터는 말을 잘해야 한다.


“아, 그래요? 왜 이렇게 빨리 가요?”


“그쪽에서 방이 좀 빨리 비워졌다고 바로 와도 된다고 해서요. 그냥 빨리 이사하려고요."


“그럼 월요일에 카페 출근 안 해요?”


“카페는 스케줄 바꿨어요. 빨리 이사하는 게 형 맘이 편할 것 같아서요.”


“아뇨? 저는 상우 씨 2주 다 있어도 상관없어요.”


“형, 근데 디포짓은 나가는 날 받을 수 있는 거죠?”


“아이, 그럼요. 나가는 날에 방 확인하고 드릴 거예요.”


재환이 다른 워홀러들의 디포짓을 이런저런 핑계로 가로챈 것처럼 내 디포짓도 가로채지는 않을까, 혹은 내가 한국 가는 것을 눈치채고 어차피 볼일 없는 거 더 못된 짓을 하려고 들진 않을까. 걱정됐다.


집에 도착해 빠르게 샤워를 하고 방에 틀어 박혔다. 그를 마주하기가 영 껄끄러워 담배도 참아가며 방을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무색하게 재환이 먼저 방문을 두드렸다.


“상우 씨, 자요?”


“아뇨. 들어오세요.”


재환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제가 방금 낮에 일하는 곳 사장님께 여쭤봤는데 내일모레 상우 씨 이사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이상 그의 호의가 호의로 느껴지지 않았다. 김치 공장에서 잘리고 다른 회사에 갓 입사한 말단 사원이 겁도 없이 이런 늦은 시간에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가며, 또 출근 시간까지 미뤄가며 내 이사를 도울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일식집 남자 사장님의 말 그대로 나를 곁에 두고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내 이사를 돕는다는 것은 나의 탈출 시나리오에 적혀있지 않았다.


“어… 괜찮은데… 그날, 출근하셔야 하지 않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괜찮아요.”


그의 감시에서 조금이라도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거절했으나,


“아이, 아니죠. 저도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 오신다는 거 미리 얘기 안 한 게 걸리더라고요. 도와 드려야죠.”


끈질기다.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는다. 사람의 피를 말리는 거머리 같다.


“하… 진짜 괜찮은데… 그럼… 역까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차피 짐도 많이 없어서요.”


“네. 그러면… 이사 가는 곳이 박스힐 역(아밋의 카페와 인접한 역.)이라고 하셨죠? 거기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아뇨, 아뇨, 아뇨. 그냥 블랙번 역(재환의 집과 인접한 역.)까지만 데려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아는 분이 도와준다고 하셔서요.”


“어?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블랙번 역까지만이라도 태워 드릴게요. 주무세요.”


재환의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블랙번 역까지는 20분, 운전을 해서 가면 그 절반인 10분이 소요된다. 심지어 호주의 대중교통은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고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가 의심할 여지를 줄 수 있다. 무조건 거절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재환이 뒤 돌아 나가며 방문을 닫는다.


“아, 상우 씨!”


거의 닫혔던 방 문을 다시 벌컥 열고 나를 부르는 재환.


“그런데요, 상우 씨가 이 주변에 저 말고 아는 분이 계셨어요? 누가 도와주시는데요?”


아뿔싸! 둘러 대자. 빨리! 어떻게든 그가 납득할 만한 얘기를 뱉어내자.


“아… 그게요, 예. 처음 호주 왔을 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분이신데 이번에 그분 통해서 구한 거거든요. 집을.”


“아… 그래요? 그래서 근방에 집을 빨리 구했구나. 알겠어요. 주무세요. 상우 씨.”


재환은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느릿느릿 방문을 닫았다. 어쩌면 살짝 웃고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의심받고 있다. 이런 씨발, 돈을 훔치고 나를 내쫓은 가해자는 저 놈이고 나는 피해자인데 어째서 내가 의심을 받고 있는가. 집에 있을 때에는 항상 열어뒀던 방 문을 처음으로 잠갔다. 그마저도 밖에 소리가 들릴까, 문고리를 돌린 상태로 잠금 버튼을 눌러서.




일요일. 영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태평스럽게 늦잠을 자버렸다. 이미 시간은 오후에 가까웠다. 집이 조용한 것을 보니 다행히 모두가 나간 것 같았다. 뒤뜰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한없이 화창한 날씨가 오늘따라 사뭇 역겹다. 어제 일식집에서 퇴근할 때 챙겨 온 김초밥 한 줄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밥도 먹었겠다, 움직여보자.


냉장고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사둔 저렴한 베이컨부터 고추장, 쌈장 등 모두를 일식집에서 챙겨 온 커다란 비닐에 박아 넣었다. 들여다본 비닐봉지의 안이 시뻘겋고 진득한 것이 오물과 진배없다. 냉장고에서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없어 못 먹던 것들이 비닐에 아무렇게 담기자 오물이 되었다.


8개월 동안 일만 하다가 돈 잃고 내쫓기듯 떠나는 호주의 기억도 검은 비닐봉지에 박아 넣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주의 여름을 기다리며 설레던 내 8개월간의 워킹홀리데이도 이제는 오물과 진배없다. 실패 투성이 이십구 년의 역사에 또 한 번의 실패가 각인됐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요깃거리가 아무것도 없어 재환의 집 앞에 있는 피시 앤 칩스 식당을 찾았지만 역시 문을 열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일요일에 문을 닫는 식당은 없을 것이다. 호주의 워라밸이란…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게 했던 꿀 같던 요소마저 이제는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장을 볼 때마다 찾았던 ‘콜스’(호주의 대형 마트.)로 향했다. 마트 안에 다양한 종류의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데 가격대가 높아 한 번도 들른 적 없던 카페가 있었다.

재환의 집에서 콜스로 가는 길.


카페에 도착해 햄이 들어간 크루아상과 아이스 롱 블랙(아메리카노와 같지만 더 진하다.)을 주문했다.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별 볼일 없는 똑같은 크루아상이다.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뜨거운 그것에 얼음을 넣은 듯 이미 미지근한, 말로만 아이스인 롱 블랙이다. 이까짓 것들이 뭐라고 장 볼 때마다 눈으로만 바라보며 나중을 기약했을까. 그깟 돈 몇 푼이 뭐라고. 평생 할 운동 뭐가 그리 대수라고. 어차피 이렇게 될 일. 왜 그렇게 나를 옥죄고 몰아세우며, 나중에. 나중에. 나중만 생각했을까. 평생에 한 번뿐인 워킹홀리데이 8개월을 한 편의 추억 없이 일로만 채웠다. 허무했다. 비싼 크루아상도 이미 미지근한 롱 블랙도 8개월간 짧았던 내 워킹 홀리데이도. 그 모든 것이 허무했다.




월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짐 정리를 끝내고 방 키를 반납했다. 재환은 방을 빙 둘러보고는 디포짓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사 가기 전 해야 하는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고 재환의 차에 캐리어를 실었다. 이제 10분 아니, 길어야 15분이다. 재환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재환은 역시나 역까지 가는 내내 삼국지 얘기를 떠들어 댔다. 역에 도착해 재환이 차에 실어뒀던 내 캐리어를 내렸다. 캐리어를 건네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재환이 내 캐리어를 그의 뒤로 감췄다.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재환이 빙그레 웃었다.


“아이, 형 왜 그래요. 주세요.”


제발… 그가 이별을 앞에 두고 아쉬운 마음에 치는 장난이길 바랐다.


“상우 씨, 나 궁금한 게 있어요.”


설마…


“상우 씨… 집을 언제 그렇게 보러 다니셨어요?”


심장이 멎는듯했다. 개새끼. 역시 다 알고 있었다.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히라한테 들었는데 평일에 퇴근하면 항상 집에 있었다면서요? 근데 뭐라고요? 집을 박스힐 역(아밋의 카페와 인접한 역.) 주변에 구하셨다고요?”


거머리. 피를 말리는 거머리.


“아… 카페 일찍 끝나거나 일요일 같은 쉬는 날에 보러 다녔죠.”


어설프게 둘러댔지만,


“아… 그러셨어요?”


재환이 코웃음 치며 비아냥댄다. 괜히 비웃음만 샀다.


“아, 뭐,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래서, 그래서요. 상우 씨. 그… 혹시 여기저기에 다 말했어요?”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미소가 소름이 끼쳐 입을 뗄 수 없다.


“하아… 아녜요. 잘 가시고요. 아무튼 그럼 이번 주 금요일에 일식집에서 보는 거 맞죠? 그때 봅시다?”


재환이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하며 캐리어를 건넸다. 캐리어를 받아 들고 손잡이를 꼬옥 쥐었다. 운전석에 앉아서도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그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다. 나는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뒤돌아 역으로 걸어갈 수 없었다. 그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안심하고 뒤돌 수 있을 것 같아 그저 멍하니,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차가 후진해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재환의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너머로 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1장. 아홉수 마무리.

2장.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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