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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란 이름의 빌런 : 마무리.

by 상우

초등학교 편부터 중학교 편까지 오롯이 선생님들께서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이고 부당한 것을 강요한 것처럼 적었지만 분명 그것이 완벽히 사실은 아닐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며 기억들이 편파적으로 왜곡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 시절 상우는 또래들과 같은 평범한 개체는 아니었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나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새꺄, 선생님들이 너때문에 엄청 힘드셨을거여. 너 그거 알어?”


어머니 말씀을 듣고 장난스레 반박하기는 하지만 상당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화들이 있다.

어느 날인가 백 선생님의 체육시간이 끝나고 같은 반 친구들과 교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내가 아무나 들으라는 듯 말했다.


“백 선생(사실 선생님의 본명을 말했다. 쓸 수 없어 선생으로 대체한다.) 존나 짜증나지않냐?”


체육복을 안입고 왔었던지, 교실에서 늦게 나왔던지. 분명 체육시간에 어떤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백 선생님께서는 내 오른쪽으로 나를 앞질러 가셨다. 계단을 오르던 반 친구들이 아무도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옆에서 나를 앞지르셨으니 분명히 들으셨을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별말씀 없으시니 오히려 더 무서웠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나는 백 선생님께 이 일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 1일차,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만족할 만한 점수가 안 나왔다고 시험지를 다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종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수년간 나란 인간을 겪어온 친구들은 ‘저 새끼 또 지랄이네.’하고 말았을 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 오시기 전에 나는 교실을 떠났다.


이날 하필이면 학부모 시험 감독관으로 우리 어머니께서 참석하셨었다. 큰 아들의 종례시간이라도 지켜볼 겸 또 하교하는 큰 아들을 차에 태워 같이 가실 겸, 어머니께서는 교실로 들어와 나를 찾았으나 나는 이미 집에 도착한 후였다. 집에서 다음날 시험과목 공부를 하고 있다가 학교에서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장 학교로 돌아와. 와서 종례 받고 가.”


담임선생님께서는 굳이 나를 기다려가며 종례를 미루실 분이 아니셨다. 결국 가지 않았다.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해 수업을 참관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을 시연할 반으로 우리 반을 선정하셨다. 반 전체가 남았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프로젝터가 있는 과학실로 책상을 옮기라는 말씀을 하셨다. 책상이 옮겨진 모양을 보고 난 후, 맘에 들지 않으셨는지 다시 교실로 무거운 과학실 책상을 옮기라 지시하셨다. 그것도 맘에 안 드셨는지 전부 원상복귀 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날도 시험 기간이었고 다음 시험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내가 굳이 남아서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반 친구들이 책상과 의자를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때 난 복도 창가에 기대어 멀뚱히 중노동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과 의자들이 다시 원상 복귀되었다. 자리에 앉은 친구들 앞에서 장학사에게 시연할 수업을 연습하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불만이 가득한 나를 달래보고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우야, 학교가 평가를 잘 받아야 너도 잘 되는 것 아니겠어?”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학교가 잘 되는게 뭐가 중요해요. 저는 저만 잘되면 돼요.”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나 안 해.’라고 말씀하시며 들고 계시던 분필을 칠판에 집어던지셨다. 그리고 교실을 떠나셨다. 친구들은 한참 동안 다시 돌아오실 선생님을 기다렸으나 기약이 없자 하나, 둘 일어나 학원이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 이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께선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리고 내일 등교하자마자 선생님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빌고 용서받아 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당신께서 직접 교무실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것이라 말씀하셨다. 아찔했다. 자존심때문에 안한다고 고집 피우면 어머니께선 진짜로 선생님을 찾아가 무릎 꿇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무실 중앙에서 어머니가 어머니보다 한참 젊은 선생님을 앞에 두고 무릎 꿇고 계신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결국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죄송하다고 입을 열면서도 속으로는 ‘당신도 높은 사람들 눈에 들어 보려고 우리 이용한 거잖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화들로 미루어 보건대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상당히 다루기 까다로운 아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싸가지도 없었고. 어머니께서는 소싯적 주산학원을 운영하셨다. 그런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기쎈놈 하나만 잡으면 다른 애들 분위기는 저절로 잡혀. 그러니까 네가 타깃이 됐던거여.”


또래들 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나름 성적도 좋았다. 학생회장이다. 그러니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이놈 하나만 잡으면 학년 분위기는 절로 잡힌다.’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란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들 생각처럼 친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분위기를 형성하고 정말 강하고 인기 많은 친구들은 따로 있었다. 나는 그 축에도 못 드는, 당장 내 앞의 해야 할 일만 바라보는 아이였다. 친구들과 똑같이 떠들어도 나를 대표로 혼내시고 같이 매를 맞더라도 나는 한대 더 맞는 것이 서러웠다. 그러다 보니 자꾸 엇나가게 되었다. 는 변명을 조심스레 해본다.


이제는 그저 악연이리라 생각하련다. 이런 이유로 내게는 은사님이라 부를만한 분이 단 한 분도 안 계시다. ‘가져본 적이 없어서 아쉽지 않다.’라는 말이 있듯 내게도 은사님이란 애초에 계셨던 적이 없으니 이제 와 새삼스레 아쉬울 것도 없다.


동창들 중 몇몇은 아직도 선생님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가끔 시간 맞으면 게임도 한두 판 하는 것 같던데 이 녀석들이 결혼할 때 어쩌면 식장에서 선생님들을 뵐 수도 있을 테다. 상호간에 안 좋은 기억만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호들갑 떨며 반가워할 필요는 없으리라. 예의상 “안녕하세요.”라고 덤덤하게 한 마디 던지고 자리 뜨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쪽에서 못 알아봐 주면 더 좋고. 모른척할 것이라면 연기 좀 잘 해주시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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